야구
[마이데일리 = 강산 기자] "소울 브라더(영혼의 형제)라고 하더라고. 허허."
한화 이글스 이정훈 2군 감독이 껄껄 웃었다. 본인 방식을 고집하던 외국인 타자 나이저 모건이 자신과 함께하며 좋아지는 모습을 보니 무척 흐뭇한 눈치였다. 이 감독은 "내가 할 일은 하루빨리 선수들을 오키나와로 보내는 것"이라며 겸손해했다.
이 감독은 지난 2일부터 서산에서 모건을 집중 조련했다. 모건은 지난달 25일 한화 1차 전지훈련지인 고치에 합류했으나 8일 만에 귀국 통보를 받았다. 몸이 완전히 만들어지지 않은 게 이유였다. 김성근 한화 감독은 이 감독에게 모건을 맡겼다. "체력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문과 함께.
취임식 당시 "한화 2군 선수들이 악착같다. 이정훈 감독이 그렇게 키우지 않았나 싶다"고 했던 김 감독은 이 감독을 믿고 모건을 맡겼다. 한해 농사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외국인 타자를 귀국 조치한 뒤 맞춤형 지도를 주문하는 것. 믿음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이 감독의 책임감도 컸다. 당시 이 감독은 "고치의 훈련 강도가 높아 쉽게 못 따라간 것 같다. 서산 캠프도 훈련 강도가 상당한데 부상 당하지 않도록 하면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 오키나와 2차 캠프에 합류할 수 있게 잘 만들어 보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모건은 본인 방식을 고집했다. 이 감독은 강압적으로 요구하기보다 '밀고 당기기'를 택했다. 하다 보니 잘 따라왔다. "메이저리그에서 잘했던 선수다 보니 본인 방식을 고집했다. 살살 달래서 하니까 적극적으로 따라오더라. 본인이 해보니까 알더라"는 이 감독의 설명. 그뿐만 아니라 "심판과 부딪혀서 좋을 게 없다. 한국 야구를 존중해야 한다"는 등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일본에서 확고한 위계질서 속 공동체를 중시하는 동양식 예절을 배운 모건도 이내 이 감독의 뜻을 알아차렸다.
동기부여도 잊지 않았다. 티배팅 훈련을 하기 전 "10분만 치자"고 해놓고, 40분 동안 계속 공을 던져줬다. 모건이 '왜 계속 던지느냐'고 하면 "너무 잘 쳐서 시간 가는줄 몰랐다"며 기를 살려줬다. 훈련을 마치고 직접 소고기를 사주기도 했다. 모건은 이 감독에게 "소울 브라더"라 부르며 충성을 다짐했다. 이 감독은 "잘 먹더라. 처음에는 아베 오사무 타격코치와 함께 갔는데 고깃값이 47만 5천원 나왔고, 2번째는 둘이 28만원 나왔다"며 껄껄 웃었다.
15일 오후 한화 2군 선수단이 전지훈련 출국을 위해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건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고치에서 본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서산에서 보낸 2주는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다. 처음 만난 선수들도 있었고, 시골 풍경을 보면서 야구에만 집중했다"며 활짝 웃었다. 지난해 주장을 맡았던 고동진과는 주먹을 부딪히며 친분을 과시하기도. 고동진은 "모건이 빠른 적응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훈련을 즐기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모건은 서산에서 신인 투수 김범수, 그리고 이 감독과 함께 9이닝 라이브배팅도 소화했다. 이 감독은 변화구를 던져주며 모건의 타격감을 점검했다. 몸쪽 직구만 130개를 쳤고, 커브와 슬라이더 등 변화구에 대처하는 연습도 빼놓지 않았다. 이 감독은 "몸 상태는 70% 정도인데 선구안이 되더라"며 "일본에서 2할 9푼대 쳤으면 한국에서는 더 잘할 것이다. 하루빨리 잘 만들어서 오키나와로 보내는 게 내 임무"라고 말했다.
모건은 "시간적 여유를 갖고 컨디셔닝에 집중했다. 몸 상태도 전보다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제는 한국말도 곧잘 따라한다. 식당에서도 "여기요"라며 정중하게 직원을 부른다고. 모건은 "듣고 따라하면서 배우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언어 습득은 한국 야구 적응을 위해 분명 필요한 부분. 그는 일본에서도 수훈선수 인터뷰 때 거침없이 일본어를 구사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빠른 적응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모건은 고치에서 가진 인터뷰서 "한 시즌은 100m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이다. 페이스를 너무 빨리 끌어올리면 중반 이후 떨어진다. 천천히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산 합류 초반에도 본인 방식을 고집하며 "정규시즌에 맞출 테니 두고 보라"고 했던 모건이다.
하지만 이 감독의 밀고 당기기 전략에 백기를 들었다. 이 감독도 "자기가 해보니까 알거든"이라며 웃었다. 이제 본격 훈련이다. 모건이 잠시나마 강훈련을 경험했던 바로 그곳, 고치로 향한다. 이 감독은 "고치에 가면 쉬지 않고 돌릴 것이다"고 예고했다. 모건은 "고치에서 오키나와로 가느냐 마느냐는 감독님 선택이다. 나는 야구에만 집중하면서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하겠다"고 책임감을 보였다. '영혼의 형제' 이 감독과 모건의 의기투합,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나이저 모건(왼쪽)과 이정훈 감독이 'T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강산 기자]
강산 기자 posterbo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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