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당신은 좋은 자식입니까? 나이가 들었을 때 당신 부모님의 모습이지 않을까요?'
이 물음을 던지는 영화가 바로 '약장수'(감독 조치언 제작 26컴퍼니 배급 대명문화공장)다. 김인권, 박철민이 출연한 '약장수'는 외로운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각종 건강식품과 생활용품을 파는 홍보관을 배경으로, 아픈 딸의 치료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홍보관에 취직한 일범(김인권)의 눈물겨운 생존기를 그린 영화다.
일범은 대리운전을 하며 딸의 병원비를 대지만 한 순간의 오해로 직장을 잃는다. 신용불량자라 직장을 구할 수 없는 그는 일용직으로 일하려 해도 특별한 기술이 없어 일을 구하지 못한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친구가 홍보관을 제안하자 일범은 "아무리 이러고 산다고 해도 할머니들한테 사기쳐서 먹고 살라는 얘기냐?"며 화를 낸다. 하지만 생활고에 내몰려 결국 홍보관의 일원이 된다.
옥님(이주실)은 친구의 손에 이끌려 홍보관을 방문한다. 검사 아들을 두고 장한 어머니상까지 탔지만 외로이 홀로 산다. 친구의 손녀를 봐줄 때가 그마나 웃음 짓는 시간이다. 이런 그는 홍보관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낀다. 검사 아들은 바쁘고, 친정이 부잣집인 며느리는 자신을 무시하지만 홍보관 직원, 특히 일범은 다르다. 그래서 물건을 사게 만들려는 수작이라는 걸 알면서도 속아준다.
"자식새끼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걸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라는 옥님 친구의 대사는 이 영화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 중 하나다. 옥님이 "언제 안 바쁠 때 두 시간만 애미랑 놀아주지 않을래?"라고 말해도 아들은 쌩하니 집 밖으로 나갈 뿐이다. 홍보관 점장(박철민)이 "오전 2시간 오후 2시간 하루에 4시간씩 놀아주는 자식이 어디있냐"며 자신들의 일을 정당화해도 비난할 수가 없다. 자식은 옥님과 시간을 보내지 않지만 홍보관 직원들은 아들보다 더 살갑다.
'약장수'는 영화 속에 많은 이야기들을 녹여낸다. 소시민의 생활고, 독거노인 문제,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가볍지 않게 그려내지만 너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탓에 집중이 깨지는 건 단점이다.
두 배우의 연기 호흡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미덕이다. 김인권은 돈이 없어 아픈 딸의 병원비도 제대로 대지 못하는 아버지, 할머니들을 상대로 사기를 쳐야 한다는 괴로움에 빠진 한 남자, 가족을 위해 인간다움을 포기하는 가장의 모습까지 진정성 가득한 연기로 극을 이끌어 간다. 박철민은 웃음을 팔다가 돈 앞에서 냉혈한이 되는 홍보관 점장 철중 역을 소름끼치게 표현해 낸다.
이 영화의 백미는 일범이 얼굴에 분장을 한 채 춤을 추는 라스트 신이다. 광대가 된 김인권은 웃음 속에 슬픔을 녹여내며 자신의 진가를 톡톡히 발휘한다. 그의 묘한 표정은 영화관을 나온 후에도 한동안 머릿속을 맴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도록 만든다. 난 과연 좋은 자식인지, 앞으로의 내 모습이 옥님이 아닌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모님이 또 다른 옥님이 돼 있는 건 아닌지. 23일 개봉.
[영화 '약장수' 스틸. 사진 = 대명문화공장,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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