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도쿄(일본) 허설희 기자] 장르마다 대중을 건드리는 특별함이 있다. 기본 콘텐츠가 같을지라도 만화를 통해, 영화를 통해, 뮤지컬을 통해 발현되는 특별함은 제각각이다.
저마다 다른 특별함으로 인해 뮤지컬 '데스노트'도 또 다른 기대감을 갖게 한다. 원작의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영화로 또 다른 콘텐츠를 창출해낸 '데스노트'가 무대에서,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만났을 때 어떤 에너지를 전할지 기대를 모았다.
2003년부터 슈에이샤 '주간소년 점프'에 연재된 만화 '데스노트'(원작 오바 츠구미, 만화 오바타 타케시)를 원작으로 씨제스엔터테인먼트가 공연 제작 자회사 씨제스컬쳐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뮤지컬 제작에 나선 작품. 일본 굴지의 엔터테인먼트회사 호리프로(Horipro Inc.)와 함께 성공적인 초연을 위해 힘을 합쳤다.
그야말로 온 힘을 쏟아 부었다. 일본 공연계를 대표하는 거장 쿠리야마 타미야가 연출로 나섰고, '지킬앤하이드', '몬테크리스토' 등으로 한국 관객에게 사랑 받는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보니 앤 클라이드' 이반 멘첼과 '몬테크리스토', '카르멘' 잭 머피가 각각 각본과 작사 작업에 참여했다.
탄탄한 원작을 중심으로 무대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뮤지컬 '데스노트'를 일본에서 미리 만났다. 오는 6월 한국 관객들을 만나기 전 일본에서 베일을 벗은 '데스노트'는 원작의 매력은 살리고 무대의 특성을 살려 이후 한국 공연 역시 기대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막이 오르고 눈에 띄는 것은 별다른 장치 없는 깔끔한 무대다. '지루함'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다 보니 무대조차 무료하게 느껴질 정도로 필요 없는 장치들은 과감히 버렸다. 삭막하게 느껴질 정도의 깔끔한 무대는 마치 '데스노트'의 첫 페이지를 상징하는 듯 하다.
대신 뒷편의 영상과 중앙 장치, 회전 무대가 돋보인다. 무대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영상을 통해 보완했다. 노트가 떨어지고 데스노트에 이름이 적히는 등의 장면이 영상으로 전해지면서 관객들의 집중도를 높인다.
거추장스럽지 않은 중앙 장치는 배경은 물론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며 최소한의 장치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게 한다. 회전무대 및 높낮이가 변하는 무대 또한 공간 자체로써의 표현을 통해 단순함 속에 깊이 있는 표현을 가능케 한다.
별다른 장치 없는 삭막한 무대가 거슬리지 않는 것은 드라마적 요소와 음악적 풍성함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연극적인 요소가 다분한 '데스노트'는 방대한 양이지만 원작의 핵심적인 포인트를 잘 뽑아 이야기 흐름에 방해를 주지 않는다. 주제 의식이 뚜렷하고, 그 안에서 하고자 하는 말들이 빙빙 돌려 표현되지 않는다.
부조리함으로 오히려 퇴화돼버린 현대 사회에서 선과 악을 논하는 이들, 병들어버린 사회에서 정의와 범죄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의 팽팽한 대립과 변화가 관객들에게 직설적으로 전해진다. 각 인물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머리를 굴리지만 사실은 사신들 손바닥 위에 놀아나는 힘 없는 인간들일 뿐이라는 사실이 속도감 있는 전개 속에 그려진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지만 연극적 요소가 강해 대중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대사가 많지만 이는 이해를 돕기 위함이고 그 안에 말하고자 하는 바가 확고하기 때문에 부담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물들이 퍼붓는 방대한 대사로 인해 이후 인물들의 결말이 더욱 허무하게 느껴지며 작품 자체의 주제 의식이 더 깊숙히 와닿는다.
단순한 무대와 쫀쫀한 연극적 요소를 부족하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게 하는 힘은 넘버에 있다. 프랭크 와일드혼은 대중화를 신경 쓰는 동시에 '데스노트' 특유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과감한 실험을 시도했다. 데스노트, 사신 등 판타지적 요소가 음악의 풍성함으로 극대화된다.
일단 넘버의 장르가 풍성하다. 록발라드, 클래식은 물론 통통 튀는 아이돌가수 넘버까지 구성돼 있다. 가요적인 넘버들이 편하게 다가오고 어렵지 않은 멜로디가 귀를 사로 잡는다. 쉬우면서도 풍성함이 느껴지는 음악이 '데스노트'의 퀄리티를 높인다.
원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1막과 2막에서 적당하게 나뉘었다. 1막에서는 라이토와 류크의 이야기, 미사가 노트를 주은 뒤 펼쳐지는 2막에서는 본격적으로 라이토와 엘의 대결이 그려진다.
전체적으로 류크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사신이 인간계를 쥐락펴락 하듯 실제 뮤지컬에서도 사신 류크가 중심을 잡는다. 무거운 극 분위기에 조금씩 웃음을 주며 긴장감을 푸는 것도 류크다. 이와 함께 라이토와 엘의 날선 대립은 무대 위 에너지를 꽉 채우며 공기마저 뜨겁게 만든다.
한국판 '데스노트'에 기대감이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광호, 김준수 두 뮤지컬 스타의 무대 위 대결이 인물 표현을 극대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부조리함으로 오히려 퇴화돼버린 현대 사회 속 인간들의 내면은 물론 이를 폭발시키는 가창력이 기대된다.
능글맞으면서도 작품의 메시지를 전하는 류크 역의 강홍석을 비롯 미사 역 정선아, 렘 역 박혜나 역시 캐릭터에 딱 맞는다. 특히 미사라는 인물은 한국판에서 한국 정서에 맞게 조금씩 변화를 줄 예정이기 때문에 부담 없이 극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데스노트' 한국 공연은 6월 20일부터 8월 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데스노트' 공연 이미지. 뮤지컬 '데스노트' 포스터 홍광호 김준수. 사진 = ⓒTsugumi Ohba, Takeshi Obata/Shueisha Original Production by Horipro Inc., 씨제스컬쳐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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