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100% 잘 한다고 만족할 수는 없어도 배우에겐 개인적으로 뿌듯한 작품이 있다.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가 의미 있고, 배우가 흘린 땀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그런 작품. 뮤지컬배우 임강희에게 뮤지컬 '로기수'가 그렇다.
임강희가 출연중인 뮤지컬 '로기수'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종전 후 이익을 챙기기 바쁜 미군과 수용소 내 이념 전쟁이 극에 달한 포로들 사이에서 탭댄스에 빠진 북한군 포로 소년 로기수가 꿈과 희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비장한 댄스와 빈티지한 음악으로 풍성하게 그린다.
극중 임강희는 어린 시절 가수를 꿈꿨지만 떠돌이로 살다 수용소로 흘러 들어온 민복심 역을 맡아 열연중이다. 그는 "정말 재미있게 공연하고 있다. 100% 잘 한다고 만족하고 있지는 않는데 그냥 하고나면 행복하다"고 밝혔다.
"작품의 의미가 정말 좋잖아요. 좋은 의미를 관객들에게 전하는 공연을 한다는 것만으로 배우들도 자부심이 있어요. 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자극 받고 그런 게 있는 거죠. 처음 시작은 진짜 힘들었어요. 연습실 가면 다른 배우들이 저보고 '맨날 멍 때리고 있다'고 했어요. 완전 멘붕 돼서 탭 배우고 연습하고 그랬는데 오히려 공연을 하니까 정신이 돌아오면서 몸에도 익고 재밌어졌어요."
임강희에게 멘붕이 올만 했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뜨' 지방 공연과 연습을 병행하니 정신도 없고 스케줄 조정도 쉽지 않았다. 특히 '로기수'는 할 게 정말 많은 작품. 탭댄스는 물론이고 드라마, 넘버 그 무엇 하나 쉬운게 없었다. 단체신도 많아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전체적으로 흔들리기 일쑤였다. 여유를 부릴 시간도 없었다. 다들 연습에만 매진했다.
"그래도 춤은 다 따라하는 편인데 제가 이렇게 '몸바보', '발바보'일 줄이야.. 탭은 한순간에 훅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춤을 잘 춘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에요. 다 몸을 못 쓰는 배우들이 아닌데 탭 슈즈를 던지려 했다니까요.(웃음) 마음대로 안 되니까. 어떻게 저렇게 발이 움직이지? '따닥!' 하는데 너무 오래 걸렸어요. 일정하게 발을 맞추고 발로 뭔가를 한다는 게 어렵더라고요. 평상시 쓰던 근육이 아니라 더 그랬죠. 지금도 솔직히 100% 다 하진 못해요."
쉬운 춤이 아니었기에 임강희는 시도 때도 없이 연습했다. 한동안 버스 정류장에서도 혼자 신발을 신고 계속 연습해 모르는 사람들이 쳐다봤을 정도. '마리 앙투아네뜨' 지방 공연을 할 때도 한시간 일찍 가서 혼자 연습하기도 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좋은 스트레스가 있었어요. 잘 하고 싶어서 받는 스트레스였던 거죠. 하루를 빠지면 진짜 타격이 컸어요. 연습을 하루 빠지면 일주일치가 밀리더라고요.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다칠 위기도 많았는데 팀 분위기가 좋은 게 몸 사리는 배우가 없어서 다들 긍정적으로 넘어갔어요. 한 명이 그런다고 되는 게 아닌데 모두 좋은 에너지로 팀 분위기가 흘러가니까 진짜 몸이 힘들어도 서로 불평이 없었어요."
같이 땀을 흘린다는 게 무시할 수 없는 끈끈함을 만들어줬다. '땀은 속이지 않는다'를 절실히 느꼈다. 끈끈한 정을 넘어 땀으로 섞인 우정을 느꼈다. 서로 경쟁 의식이 있을 수 있건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서로 퍼주고 나누는 게 편했다. 말 하지 않아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특히 함께 민복심 역을 연기하는 이지숙에 대한 고마움은 더 크다.
"(이)지숙이가 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연습을 먼저 다 하고 절 가르쳐주는게 힘들었을텐데 좋은 에너지를 줬죠. 지숙이 때문에 전 공연을 올릴 수 있었어요. 진짜 고마워요. 지숙이한테 진짜 놀랐던 건 조절을 정말 잘 한다는 거였어요. 전 앙상블로 나가도 임강희로서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지 너무 열심히 해서 스트레스를 받았거든요. 근데 지숙이는 민복심일 땐 민복심, 앙상블일 때는 앙상블로 조절을 잘 하더라고요. 그런걸 보면서 쓸데 없는 욕심들을 하나 하나 버리니까 '나 진짜 무식했구나' 하고 느끼면서 많이 배웠어요."
일을 좀 쉬려 하던 찰나 '로기수' 대본을 보고 바로 하겠다고 결정한 임강희는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 몸이 힘든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신경 써야 하는 공연은 오랜만이었기 때문에 배우로서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배우로서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건 항상 느끼는데 오랜만에 연기, 춤, 노래 다 하는 작품을 만나니 뮤지컬배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밝힌 임강희는 "'이 작품에 내가 들어온 이유가 있구나'가 너무 분명해지면서 많은걸 배우고 있다"고 여러번 강조했다.
"저는 사실 사람들을 잘 대하고 다같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데 여기 와서 그런걸 배워요. 배우들의 인성을 배우게 되는 거죠. 좋은 배우가 되려면 좋은 사람이 된다고 항상 생각해 왔는데 '로기수' 배우들을 보면서 그런 부분들을 더 확실하게 느꼈죠. 또 작품 자체가 좋잖아요. 다른 배우들도 와서 보고 참 좋아해요. 동생한테도 '그 작품 되게 좋다며?'라고 전화가 오기도 한대요. 기분이 좋죠."
주위의 호평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임강희 본인도 부모님 반대로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지 못하고 성악과에 진학했다가 다시 진로를 바꿔 뮤지컬배우의 길을 걷게됐기 때문에 민복심 마음이 더 이해된다. 임강희는 민복심에 대해 "사실 착한 애는 아니다. 굉장히 이기적인 아이"라고 했지만 "그런데도 이해가 간다"고 덧붙였다.
"사실 복심이 전사가 센 부분들이 많았는데 조금 가벼워졌어요. 근데 전 그 전까지의 복심이도 이해가 갔어요. 그런 힘든 삶임에도 불구하고 꿈을 갖고 있다는 게 저희 배우들이랑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이 길은 몇 번을 생각해야 해요. 1년에 두세번은 그만둬야 하나 생각하죠. '이게 뭐 하는 짓이지' 하다가도 결국에는 꿈이기 때문에 놓지 못해요. 그래서 복심이가 너무나 이해가 가고 힘든 와중에도 꿈을 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로기수한테 전하는 것 그 자체가 멋있어요."
민복심은 로기수에게 꿈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역할인 동시에 관객들에게도 꿈의 소중함을 전한다. 실제로 '로기수'를 보고난 뒤 그만 뒀던 춤을 다시 시작해 고마운 마음을 전한 관객도 있다. 그럴 때 배우로서 참 감사하다.
연기를 잘 하고 싶다는 꿈도 그래서 더 커진다. 2년을 쉼 없이 달려와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느끼기 때문에 더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연극을 하며 연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도 더 커졌다. '로기수'를 통해 행복함이 많이 채워지고 있는 만큼 '로기수' 다음 작품이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더 확고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요즘엔 나이가 있으니까 진짜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데 시야가 넓어짐을 느껴요. 이전에는 너무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아요. 지금은 행복한 삶에 대해 생각해요. 진짜 행복한 게 뭔지 생각하면서 지금 삶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죠. 배우들 중엔 끊임 없이 노력하고 공부하면서 잘 살아내는 분들이 있어요. 저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잘 살아내는, 좋은 기운을 가진 배우요. 그게 관객들에게 전해지면 좋겠어요. 좋은 의미를 전하고 싶어요. '로기수'는 정말 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거라 그런 마음이 잘 전달돼서 좋아요."
5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공연시간 150분. 아이엠컬처 02)541-2929
[뮤지컬 '로기수' 임강희, 공연 이미지. 사진 = 스토리피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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