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2’)의 동력은 ‘창조주-피조물의 대립’이다. 이 구도는 인간이 창조한 괴물의 이야기를 그린 과학소설의 고전 ‘프랑켄슈타인’(M.W.셸리 지음)이 1811년 출간된 이래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했다.
영화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립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이다. 인간의 비인간성과 비인간의 인간성을 그린 이 작품은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린 걸작으로 평가 받았다.
인간이 조물주의 영역을 넘보는 순간, 파멸이 찾아온다. ‘어벤져스2’ 역시 그 파멸의 궤적을 밑바탕으로 삼았다.
‘어벤져스2’의 울트론은 프랑켄슈타인과 ‘다크 나이트’의 조커를 합쳐놓은 듯한 캐릭터다. 인간이 창조주가 되어 제어할 수 없는 피조물을 만든다는 점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닮았고, 그 피조물이 인류 절멸의 대혼돈을 노린다는 점에서 조커를 떠올리게 한다.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평화유지프로그램을 개발하다가 울트론을 만든다. 토니 스타크는 울트론의 아버지다. 아버지와 아들은 갈등을 겪게 마련이고, 이것은 살부의식으로 드러난다(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셰익스피어의 ‘햄릿’,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떠올려보라). 살부의식은 이 영화의 중요한 축이다. 울트론이 만든 ‘비전’ 역시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선한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고, 악한 의도 역시 반드시 나쁜 결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자가 토니 스타크와 울트론의 관계라면, 후자는 울트론과 비전의 관계다.
예술계에서 즐겨 다뤄온 살부의식의 모티브에 따라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을 만든 창조주의 동생과 신부를 죽이고, 북극에서 창조주를 죽게 했다. 울트론은 한 발 더 나아가 인류 전체의 절멸을 획책한다. 여기서 울트론은 프랑켄슈타인의 복수심을 넘어서 조커의 대혼돈으로 나아간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고 히스 레저)는 무질서와 혼돈을 행동원리로 삼는 악당이다. 그가 무서운 것은 악을 행하는데 아무런 이유가 없고, 그 대상 조차 우연에 맡기기 때문이다.
조스 웨던 감독이 “저에게 울트론은 완벽하게 이상하고 걷잡을 수 없고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다른 사람처럼 잘 알지 못하는 그런 존재”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울트론은 자신을 피조물에서 인간으로 인식하는 순간부터 광기를 뿜어낸다. 결국, 악은 인간이 만든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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