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했다."
하나외환 김정은. 2006년 겨울리그부터 2014-2015시즌까지 WKBL서 11시즌을 뛰었다. 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한국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포워드. 득점왕, 베스트5 등 화려한 개인상도 밥 먹듯 받았다. 그리고 수년간 대표팀 붙박이 멤버로 뛰었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에도 기여했다.
제법 많은 커리어를 쌓은 김정은의 나이는 여전히 만 28세다. 지난 시즌 후 김정은은 하나외환과 FA 재계약을 맺었다. WKBL FA 최고금액인 3억원에 2년 계약. 김정은은 어차피 하나외환을 떠날 운명이 아니었다. 떠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직 김정은은 하나외환과 한국농구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
▲에이스의 명암
178cm에 탄탄한 체구를 자랑한다. WKBL에서 뛰는 국내선수들 중 최고수준의 파워와 수준급 운동능력을 갖고 있다. 특유의 페넌트레이션과 타점 높은 원핸드 점프슛은 위력적이다. 때문에 득점력이 좋다. 수년간 에이스로 살아왔기 때문에 책임감이 높다. 승부처에서도 강력하다. 입단 초기엔 수비력이 다소 약했지만, 최근 몇 년간 많이 향상됐다. 파워가 좋기 때문에 기본적인 1대1 수비력은 준수하다.
김정은에게도 부족한 점은 있다. 일단 3점슛 정확성에 기복이 있다. 그리고 동료를 활용하는 플레이가 능숙하지는 않다. 물론 혼자 하는 농구를 즐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몇몇 여자농구 관계자들은 "2대2 플레이에 좀 더 눈을 떠야 한다"라고 했다. 박 감독 역시 지적한 부분. 그는 "좋은 타이밍에 공을 포스트에 넣어주는 것을 잘해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다만, 이런 부분들은 과거 신세계, 하나외환의 전력과도 연관이 있다. 최근 몇 년간 김정은은 약팀 에이스로서 상대적으로 역량이 부족한 동료의 도움 없이 상대의 엄청난 견제를 받았다. 당연히 힘든 환경. 물론 그조차 이겨낼 때 완벽한 에이스다. 종합적으로 보면, 기술적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그렇게 많지 않다. 사실상 완성형 포워드다. WKBL 최고레벨의 에이스.
▲김정은이 말하는 아쉬움
결정적으로 아쉬운 점은 본인이 언급했다. 지난 1일 서울 청운동 하나외환 숙소에서 만난 김정은은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 어느 순간 농구를 하는 게 행복하지 않았다. 지난 시즌은 특히 힘들었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마음이 좋지 않은데 기술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시즌 중에도 몇 차례 털어놨던 마음고생.
여러 환경과 상황이 김정은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하나외환은 신세계 시절막판까지 김지윤 허윤자 양정옥 등 베테랑들의 팀이었다. 김정은은 연차를 쌓았지만, 중간급이었다. 하지만, 지금 김정은은 재활 중인 박은진을 제외하면 선수단 최고참. 최근 몇 년간 팀에 변화가 많았다. FA와 보상선수로 많은 선수가 팀을 떠났다. 대신 새로운 선수가 많이 영입됐다. 신지현 강이슬 김이슬 이하은 이령 등 저연차 유망주들도 대거 입단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여름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오랫동안 몸담았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멤버들과 팀에서 호흡을 맞춰볼 기회도, 시간적 여력도 부족했다. 예전과 다른 환경에 빨리 적응하지 못했다. 게다가 선배들을 따라가는 입장이 아니라 팀을 이끌어가야 할 위치. 사령탑도 조동기 전 감독에서 박 감독 체제로 바뀌었다. 김정은은 혼란스러웠다. 그는 "갑작스럽게 많이 바뀌었다. 내가 박 감독님 농구에 빨리 적응하지 못했다"라고 회상했다.
또 하나. 프로 11시즌을 보내면서, 단 한번도 우승을 해보지 못한 책임감과 자책감이 있었다. 김정은은 "돌이켜보면 개인상은 많이 받았지만, 팀 우승을 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아 자책도 많이 했다"라며 괴로워했다. 이런 복합적인 요소가 겹쳐 정신적으로 슬럼프가 왔다.
NBA와 KBL의 강인한 에이스들을 보면, 자신과 팀이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자신을 컨트롤하고 동료들을 이끈다. 승부처에서 결정적인 득점을 만들어내는 건 물론, 동료의 플레이에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칭찬한다. 때로는 벤치에서 원하는 플레이를 하지 못하는 동료를 질책하면서 팀 농구를 이끌어가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선 지난시즌 김정은은 에이스로서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팀에 미치는 영향이 큰 부분.
▲스트레스 받지 말자
1일 각종 웨이트트레이닝을 소화하는 김정은의 표정은 밝았다. 시즌 후 1개월간의 휴식기간에 힐링을 많이 했다. 시즌 막판 하나외환 구단주는 김정은에게 "정은이가 선수로서 행복하게 코트에서 뛰어줬으면 좋겠다. 많은 책임감을 후배들에게 나눠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그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라고 했다.
1개월간의 휴식기에 많은 경험을 했다. 여행도 하고, 중, 고교 시절 은사를 찾아 인사도 했다. 그가 얻은 결론은 "잘 안 되는 것에 매달리지 말자.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였다. 구단주의 말처럼, 농구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기로 했다. 머리를 비우고, 마음은 냉정하게 먹기로 했다. 팀 훈련을 소화하는 김정은은 믿음직한 에이스였다. 자신의 몫뿐 아니라 후배들을 물심양면으로 챙겼다. 완벽한 리더의 모습.
김정은은 최근 FA 계약도 맺었다. 후련한 표정이었다. 조건을 떠나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 출발하는 것에 의미를 뒀다. 그는 "규정도 그렇고, 다른 팀에 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나외환에 대한 충성심이 크다. 몇 년 전 흩어질뻔한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구단이다.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라고 했다. 에이스의 새출발. 김정은이 올 여름 진정한 에이스로서 진화의 길을 택했다.
[김정은. 사진 =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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