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신소원 기자] "배우는 대중들과 계속 부딪히면서 발전을 해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배우 주지훈(34)의 말투에는 강단이 있다. 자신이 몇 개월동안 노력해 만든 결과물을 기자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언론시사회에서는 "떨린다"라고 말하면서도 연신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또 인터뷰 자리에서는 능수능란 여유롭게 대화를 이어간다.
특유의 성격이기도 하겠지만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나오는 부분이다. 영화 '간신'(감독 민규동)에서 간신 임숭재 역을 맡은 주지훈은 그동안의 연기에서 한층 더 나아가 굵직한 존재감을 보였고 '재발견'이라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준비된 배우였고, 낯설게 그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그동안 그를 잘 몰라서다.
▲ "'간신' 임숭재,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작업"
주지훈은 극중 조선 최악의 폭군 연산군(김강우)을 쥐락펴락했던 희대의 간신 임숭재 역을 맡았다. 기존 왕이 중심이 됐던 사극과 달리 그를 중심으로 빠르게 사건이 전개된다.
기존 영화촬영에 비해 2배 이상을 촬영, 많은 장면들이 삭제돼 아쉬웠다는 그는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전체적으로 힘들었다"고 밝혔다. 극중 임숭재는 연산군, 백정의 딸 단희(임지연), 기생 설중매(이유영), 장녹수(차지연) 등 다양한 캐릭터들과 관계 설정을 갖는 다리 역할을 담당한다.
"보통 간신 캐릭터는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화자로 활용되는 인물이죠.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가 중심이고 권력자(연산군)가 화자가 됐어요. 작품이 하나의 감정선을 따라 가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적 기법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라서 감정적으로 힘들었어요. 배우의 욕심도 있지만 감독이 지시하는 것도 있으니까 서로의 간극을 메우는 작업이 필요했죠."
그는 이번 작품에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중저음의 연기톤을 보여 연산군에게는 총애를, 1만 미녀들 중 뽑힌 운평들에게는 위엄있는 대감으로서의 모습을 그려냈다. 뮤지컬에서는 줄곧 중후한 연기톤을 선보여왔지만 장소·기회의 한계가 있었고 이번 영화에서 포텐을 터트렸다.
"뮤지컬을 하면서 많이 해온 톤인데 대중들이 잘 모르더라고요. 이제야 처음 한 것처럼 비쳐져서 스스로 놀랐어요. 현대극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톤이니까 그렇게 보일 수는 있죠. 긴 대사를 설명하되 지루하지 않게 하다보니까 힘이 실려서 톤이 굵어졌던 것 같아요."
작품을 보다보면, 김강우와 연기 대결을 하는 듯 불꽃이 튄다. 연기 칭찬을 하자 "그렇게 연기를 안했는데 민규동 감독이 그렇게 붙였다"라며 쑥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극중 연산군과 칼싸움을 하는 장면에 대해 퀴어(동성애) 장르를 떠올렸다는 그는 충(忠)에 대한 애틋함을사랑의 넓은 의미로 표현했다.
▲ 민규동 감독의 뮤즈 "세월이 주는 신뢰있었다"
주지훈은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키친'(2009) 등을 통해 민규동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민규동의 뮤즈라 불려도 충분한 주지훈은 이번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이유가 없이 민규동 감독이라 택했다"고 말했다.
"세월이 주는 신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보지 않고 작품을 하겠다고 했는데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제가 납득하지 못하는 캐릭터는 연기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는데, 궤변이긴 하지만 이번 작품을 택한 것에는 이유가 없었어요. 대본을 보면서도 이미 호감을 갖고 본거죠."
배우가 하는 것을 많이 차용하는 감독이 있고 그 배우가 갖고 있는데 잘 안 쓰여지는 부분들을 끌어내주는 감독이 있는데, 민규동 감독은 후자다. 민 감독은 배우들의 장점을 잘 파악해 적재적소에 잘 쓰이도록 잠재능력을 잘 이끌어주는 연출자다.
해왔던게 있어 별다른 디렉션이 없었겠다고 말하자, 그는 "모든 작품을 통틀어 디테일한 디렉션이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사극 장르에 감정적 소모가 많았던 이번 작품에서 민규동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도 주지훈에게 많은 것들을 요구했고, 상의를 해가며 임숭재를 조각했다.
앞서 민규동 감독이 그를 가리켜 '마음으로 낳은 자식같은 느낌'이라고 표현, 이에 대해 그는 "친분이 있어서인지 출연료를 신인 때보다 더 낮게 주더라"고 말해 독특한 관계를 보였다. "당근없이 채찍질만 하던 시대는 갔다"라며 민규동 감독과 함께 작품 홍보를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 "'간신', 결국 재미있게 봐야하는 작품"
주로 현대극에 출연해왔던 주지훈은 '간신'을 통해 연기변신이라는 호평을 얻고 있다. 그는 "현대극보다 아무래도 사극이 신경 쓸 것도 많고 힘들다"고 말하며 사극 키스신에서의 남모를 고충을 밝히기도 했다. 키스신 한 번이면 수염 분장을 다시 붙여야 한다고.
'간신'은 높은 기대만큼이나, 언론시사회 이후 '파격'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라왔다. 감춰진 연산군의 진실과 당대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민규동 감독의 의지가 드러난 결과다.
"개인적인 고민인데, 제가 하는 일이 대중문화예술이잖아요. 대중과 함께 가야하는데 직업적으로는 배우를 하다보니까 다양한 영화, 책, 공연들을 봐요. 여러 나라의 것들을 보다보니 사실상 수위가 가늠이 되지 않더라고요. 많이 야했나요?"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해서 수위가 세야만하고 그래야 좋은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라며 배우로서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경계했다. 그는 '몽상가들'과 '트랜스포머'를 예로 들며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모두 좋아한다고 밝혔다. 신이 난 표정으로 '트랜스포머' 속 로보트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는 마치 아이로 돌아간 듯 해맑았다.
그는 관객들이 '간신'을 어떻게 봐주길 원하는지 묻자 "다른 것보다, 결국 재미있게 봐줬으면 한다"라며 극이 가진 본래의 목적을 전했다.
"'간신'은 분명히 상업영화고 흥미를 유발하는 여러 시퀀스를 사용했어요. 감독님이 어떤 생각을 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관객수가 나왔으면 해요. 그만큼 배우, 스태프들이 추운 날씨에 열심히 만들었어요. 저희끼리 파티를 하려고 만든 작품이 아니니까요.(웃음) 부디 많은 분들이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주지훈.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신소원 기자 hope-ss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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