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연예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아무도 신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신은 우리들 속에 있느니라…”-‘요한의 첫 번째 편지’ 중에서.
서울 신대방역 인근에 위치한 차이에듀케이션. 이곳은 인문학 봉사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는 교육회사다. 1층 차이카페에서 ‘인문학 전도사’ 이지성(41) 작가를 만났다. 표정이 밝았다. 그는차유람과의 결혼과 인문학 봉사의 꿈을 들려줬다.
“차유람 씨가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요. 서점에서 제가 쓴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읽고 호감을 가졌나봐요. 트위터를 시작한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는데, 저를 팔로우 해서 맞팔을 했죠.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어요.”
이지성 작가는 운동 선수에게 별 관심이 없다. 메시가 누군지도 모른다. 호날두(포르투갈)과 호나우두(브라질)를 헷갈린다. 당구장은 딱 두 번 가봤다. 당구 선수에게 관심을 갖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트위터로 서로 안부를 주고 받다가 친밀해졌다. 나이에 비해 성숙함이 묻어났다. 용기를 내서 먼저 만나자고 연락했다.
“첫 만남 때 40분을 늦었어요(하하).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나갔죠. 큰 기대를 안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에게 따뜻함을 느꼈어요. 온화하다고 할까요. 좋은 감정을 갖게 된 거죠.”
처음 만나는 대부분의 남녀가 그렇듯, 둘 다 적극적이지 못했다. 차유람은 세계 최고의 당구선수가 되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2~3차례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 게 전부였다. 그리고 헤어졌다. 사귀지도 않고 헤어지는 상황이었다. 서로 팔로우도 끊었다.
몇 달이 흐른 뒤, 꿈을 꿨다. 꿈은 대개 무의식의 발현이다. 그는 누군가를 욕망하는 상태에서 꾸는 꿈은 개꿈으로 생각하고 깨고 나면 바로 잊어버린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때 차유람을 까맣게 잊고 지내던 참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꿈에 차유람이 나타났다. 하나님의 계시인가 싶었다. 전혀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나온 꿈은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유람 트위터에 가서 다시 팔로우를 신청하고 만났다.
두 번째 만났을 때, 결혼하게 될 운명임을 깨달았다. 한국 남자가 그렇듯, 쉽게 속내를 드러내진 못했다. 또 다시 2~3차례 만나다가 헤어졌다. 이번에도 사귀지 않고 헤어지는 상황이었다.
사실, 이지성 작가는 극단적 ‘사랑 불신론자’였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4억원의 빚보증이 생겼다. 23살 때의 일이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군에서 제대했을 무렵에는 20억원이 넘어섰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피눈물을 흘렸다. 주저앉지 않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한 달에 20원으로 산 적도 있었다. 주변에선 ‘병신’ 소리를 들었다. 왜 안정된 교사의 삶을 살지 않고, 전망이 없는 작가의 길로 들어섰느냐는 비아냥이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갖던 여자들도 빚의 규모를 알면 떠났다. 조건을 따지는 사랑이 싫었다.
“여자에게 대시해 본 적이 거의 없어요. 어차피 제 빚을 알게 되면 떠날 테니까요. 저는 지하 깊은 곳에서 신음하며 살았습니다. 빚이 많다고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했어요. 인간에 대한 신뢰감이 바닥이었어요. 짓밟히는 삶을 살아온거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후에 빚을 청산했다. 다 갚은 줄 알았더니, 부모님이 아직 갚아야할 곳이 있다며 아들에게 숨긴 빚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3박4일간 전국을 돌며 ‘채무여행’을 떠났다. 모든 빚을 다 갚았다. 삶의 바닥에서 쓰러지지 않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버텼던 시간은 그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남았다.
세 번째 만났을 때, 운명은 더욱 가까이 와 있었다. 서로 결혼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완전히 깨달았다. 그러나 이 즈음에도 2~3번 만나다가 헤어졌다. 집안 반대가 극심했다. 둘이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떠날까라는 생각도 했다. 결국 차유람은 이지성 작가를 완전히 잊고 선수로서의 책임을 다해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서로 완전히 잊자고 했다.
“차유람 씨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까지 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만일 2년 뒤에도 서로 솔로이고, 우연히 또 만나게 되면 그땐 결혼하자는 말을 마지막 전화로 남기고, 저를 떠났습니다. 그때 저는 거대한 슬픔을 느꼈어요. 차유람 씨와 처음 헤어졌을 때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마음을 정리했거든요. 이번에도 갠지스강 앞에서 살려고 했어요.”
2편에서 계속.
[사진 위 이지성, 차유람 커플. 사진 아래 해외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차유람. 제공 = 차이에듀케이션]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