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내심 두려움이 있었다. 과감하게 출연을 결정했지만 뮤지컬 '쿠거'는 이주광에게 분명 도전이었다. 전작 뮤지컬 '셜록홈즈-앤더슨가의 비밀'에서 어두운 역을 맡았던 것과 달리 '쿠거'에서는 멀티맨 역으로 다양한 모습을, 그것도 센 누나들과 세게 보여줘야 했기에 이주광은 내심 두려움을 느꼈다.
뮤지컬 '쿠거'는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섹시한 어린 남성에게 끌리기 시작하는 3명의 여성들이 자신들의 행복과 성적만족감을 위해 형성한 쿠거 커뮤니티 안에서 펼쳐지는 인생과 우정, 행복, 사랑이야기를 그려내며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를 그리는 작품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년의 여배우들의 솔직한 매력이 호평을 얻고 있다.
극중 벅을 비롯해 멀티맨 역을 맡은 이주광은 '쿠거' 무대에 오르며 많이 달라져 있었다. 작품 및 인물 성격이 실제 생활에도 조금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쿠거'를 공연하고 있는 현재는 밝음 그 자체다. '쿠거'에 걸맞게 솔직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현재를 즐기고 있는 이주광을 만났다.
앞서 '셜록홈즈'에서 비극적인 역할을 맡았던 것은 이주광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쿠거' 연습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 갑자기 밝은 모습으로 변하려니 뜨거운 물에 찬물이 들어온 느낌이 들어 '내가 잘 선택한 게 맞는걸까'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작품 자체가 밝고 좋은 메시지를 갖고 있다보니 좋은 선배들과 어울리며 언제 그랬냐는듯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면서 어두운 부분들이 사라졌다. 그는 "생각이 많은 편인데 요즘에는 밝고 단순해져 결정도 한번에 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직도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내 생각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생각이 틀린 것도 아니더라고요. 어떤 선택을 해도 내 안에 중심만 놓지 않으면 무너지거나 어떻게 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고요. 대부분 어두운 작품을 하고 나면 밝은 작품을 하는 편이에요. 영향을 좀 받아서 생활 자체도 변하거든요.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할 정도예요. 콘트롤 못하는 게 부끄럽고 제 자신에게도 미안해요. '이러다 큰일나겠다'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셜록홈즈'에서 어두웠으니 '쿠거'로 밝아지고 싶었어요."
슬픈 작품은 해소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작품 성격에 따라 변하는 스타일이다보니 마냥 어두운 작품만 할 수는 없었다. 우울할 때는 자신에게 마이너스 되는 행동들까지 하니 스스로 자신을 콘트롤 해야 했다. 그게 또 다른 작품이라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기에 매번 좋은 작품을 만나고 있다.
사실 '쿠거'는 잘 아는 작품은 아니었다. 여러가지로 지쳐 있는 상태였지만 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만난 작품. 심지어 처음으로 대본을 다 읽어보지도, 음악을 듣지도 않고 선택한 작품이었다. 노우성 연출이라는 말에 바로 결정했다. 하지만 과감한 선택은 곧바로 이주광에게 좌절을 가져다줬다. 자신의 오만함을 느꼈고, 일주일간 자신을 채찍질 했다.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때는 직역본을 봐서 미국식 코미디가 너무 만화스럽더라고요. 뭔가 1차원적인 캐릭터 같았고, 디테일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연출님과 대화를 많이 했죠. 버릴건 버리되 가져갈건 가져가자는 결론을 얻었죠. 그게 바로 '양보'라는 것도 알았어요. 진짜를 얘기해야 하는 거죠. 일단 벅은 릴리와 진짜 사랑을 느껴야 하고, 다른 멀티 역은 그 장면에서 정말 잠깐이지만 강렬한 이미지가 필요했어요. 뭔가 처음엔 전전긍긍했던 것 같아요. 늘 위만 봐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내가 행복한 게 먼저라는 걸 알았어요. 늘 웃을 수 있는게 좋은거니까. 어떤 작품도 운명이라 생각하고 순응하고 행복하게 지내는게 맞는 것 같아요."
초반 어려움을 겪었지만 워낙 작품마다 다른 성격, 일명 '팔자 사나운 파란만장한 캐릭터'들을 연기해온지라 다양한 역할을 금세 익힐 수 있었다. '쿠거'에서 워낙 다른 성격의 역을 멀티로 맡다 보니 '쿠거'에 출연한 남자 배우가 한 명이 아니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짧은 시간 안에 다른 인물로 보였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인물들 중 어려운게 다 없어졌어요. 융화가 된 것 같아요. 누나들의 도움이 컸죠. 첫인상은 세도 다 좋은 분들이에요. 사실 사람들이 안부 문자를 보내기도 했어요.(웃음) '살아있냐'고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를 하고.. 누나들이 뭔가 세다고 느껴져서 어떤 무협지로 생각하 것 같아요.(웃음) 사실 저도 마음의 준비는 했었는데 전혀 무섭거나 하지 않더라고요."
박해미 김선경 최혁주 김혜연 김희원 임은영, 뮤지컬계 기 센 누나들 사이에서 어려움은 없었을까 했지만 이주광은 "여자들은 다 똑같다고 느꼈다"고 반박했다. 연륜 있고 기 센 누나들이기에 자신이 맞춰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맞춰주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누나들이었다는 것. 상대방의 기를 살려주는 확실한 연륜이 느껴졌다. 센 수위를 소화하는 것도 선배 누나들의 도움이 컸다.
"사실 생각보다 수위가 세진 않아요. 연습할 때는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센 수위의 공연을 만들겠다'고 해서 '어느정도일까' 궁금하고 내심 두려움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재밌게 보러 왔다가 더럽게 봤다고 얘기하면 안 되잖아요. 섹시하고 야한건 상상할 때 더 야한 것 같아요. 상상하고 살짝 맛 봤을 때 가장 야하고 직접 보면 환상이 깨지죠. 그래서 수위를 조절하게 됐는데 그런 부분이 아주 귀엽고 재미있게 나왔어요. 누나들과 연습하면서 조금씩 과일을 깎듯 수위를 내려갔어요. 서로 부끄러운 부분은 말하고 받아들여주고 하면서 정리해 나갔죠."
오히려 수위를 낮추니 보기는 편해졌다. 관객들이 눈을 어디에 둬야 하나 할 정도의 민망한 장면도 없다. 조금 민망할 수 있는 장면도 순식간에 지나가고 바로 웃음을 주기에 관객들이 받아들이는데 불편함이 없다. 오히려 무대 위 인물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는 관객들도 많다. 그러니 객석 반응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소극장의 묘미도 바로 바로 느껴지는 반응, 소통을 통해 느낀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특히 보수적이잖아요. 뭔가 무대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 상황을 보여주면서 '너희라면 어떤 성격의 누구처럼 하겠어?'라고 질문을 던져주기도 하죠. 그러면서 재미도 있고, 교육의 효과도 있는 것 같아요. '쿠거'라는 단어가 호감 가는 뉘앙스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뭔가 우리 작품과 만나서 귀여워진 것 같아요. '쿠겅~'이라고 하죠.(웃음) 뭔가 진득진득한 야한 것들이 총집합 할 것 같은데 막상 보면 귀엽잖아요. 19세 이상 관람가라 긴장하고 봤다가 마음이 열리죠."
이주광은 '쿠거'를 '쿠겅~'이라고 표현했다. 섹시한 것에만 치중하지 않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귀엽게 그리기 때문이란다. 꼭 중년의 여성이 아니더라도 만족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다뤘다는 것에 자부심도 크다. 남자의 입장에서 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과거 6살 연상 여자친구를 사귀었을 때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성숙해진 지금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여자로 살면서 나이가 많든 적든, 조금이라도 위축 됐었거나 조금이라도 어딘가에 갇혀 있다고 느끼거나 또 다른 환경의 어떤 무언가를 경험해 보시려고 하는 분들에게 '쿠거'를 추천해요. 힘을 얻기도, 위로를 받기도,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기도 할 거예요. 극중 'Say Yes'라는 넘버만 들어도 뭔가 강한게 느껴져요. 인생은 어떻게 버티느냐, 잘 버티느냐, 무너지느냐의 차이 같아요. 'Say Yes'는 '다 드루와~' 하는 느낌과 의미가 있어요.(웃음) 상처 받아도 'Say Yes', 뭘 해도 'Say Yes', 언제나 'Say Yes!'"
뮤지컬 '쿠거'. 오는 7월 26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공연시간 90분. 문의 1588-5212.
[뮤지컬 '쿠거' 이주광, 공연 이미지. 사진 = 쇼플레이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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