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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쥬라기’ 시리즈에서 인종차별은 영화 속에 늘 내재돼왔다. 1993년 ‘쥬라기공원’에서 최후의 생존자는 세 명의 과학자와 두 명의 아이였다. 물론, 모두 백인이다. 2편에서도 많은 황인종과 흑인이 죽는다. 백인 주인공이 살아남고, 그 외의 유색인종이 공룡의 습격에 죽음을 맞이하는 포맷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쥬라기 월드’ 역시 시리즈의 전통(?)을 잇고 있다. 쥬라기 월드의 마스라니 회장은 인도인이다. 이르파 칸이 맡았는데, 그는 쓸데없이 용감한 인물로 등장한다. 마스라니는 전문가도 아니면서 직접 헬기를 몰다가 비극을 맞이한다.
마스라니는 “좀더 사나운 공룡을 만들라”고 과학자들에게 지시한다. 1편에도 등장했던 닥터 우(B.D. 웡)는 회장의 지시에 따라 장난 삼아 살생을 일삼는 인도미누스 렉스를 만든다. B.D. 웡은 중국계 미국인이다. 신흥 부국으로 떠오르는 인도인이 쥬라기 월드를 사들이고, 역시 세계 강대국이 된 중국인의 피를 갖고 있는 중국계 미국인이 첨단 유전공학으로 변종까지 만들어내는 과학자로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마스라니는 탐욕으로 얼룩진 인물이고, 닥터 우는 음모에 연루된 과학자이다. 이 모든 재앙이 인도인과 중국계 미국인의 ‘비윤리적 행위’로 인해 야기됐다는 것이 ‘쥬라기 월드’가 설계한 기본 세팅이다.
인도인과 중국계 미국인을 악역으로 설정했다고 해서 이 영화에 인종차별의 혐의가 있다고 지적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다. 백인 남자를 모두 영웅으로 묘사하는 것도 아니니까. 백인 남자 모턴(빈센트 도노프리오)은 렉터를 군사무기로 이용하겠다는 노골적인 야욕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인종간 균형을 맞췄다고 봐야할까.
처음 인도미누스 렉스가 탈출한 뒤 출동한 경비원들을 보라. 모두 아시아계 아니면 남미계이다. 백인은 단 한 명도 없다. 물론, 모두 죽는다. 공룡과 사투를 벌이고 살아남는 주요 인물은 모두 백인이다.
‘쥬라기 월드’의 인종 분포도를 보며, 할리우드의 ‘제도적 인종주의(Institutional Racism)’가 떠올랐다. 제도적 인종주의란, “현존의 소수집단을 배제하거나 그들을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하는 커다란 조직의 무의식적인 관행”을 일컫는다.
할리우드의 인종차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영국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3년 사이에 개봉된 주요 작품에 등장하는 배역 중 백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75%에 달한다. 흑인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는 17%다.
최근 아담 샌들러 제작의 ‘더 리디킬러스 식스’는 원주민 비하로 논란에 휩싸였고, ‘알로하’는 하와이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백인들의 세상’으로 왜곡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제도적 인종주의는 반 유색인종 정서와 관행에 바탕을 두고 개인적·제도적 차원에서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사회에 퍼져 나간다. ‘더 리디킬러스 식스’ ‘알로하’가 노골적이었다면, ‘쥬라기 월드’는 은밀했다. 공룡에 한눈을 파는 사이에 인종주의는 관객의 무의식을 파고든다.
[사진 제공 = UPI코리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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