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뮤지컬배우 마이클 리의 최근 2년은 그의 인생 만큼 참 다이내믹했다.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다 2년여간 한국 무대에 집중한 만큼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고, 그에 걸맞은 다채로운 매력으로 관객들을 사로 잡았다.
팬층 역시 단숨에 두터워졌다. 실력이 기반이 되니 당연했다. 마이클 리 특유의 매력도 팬들의 지지를 얻기 충분했다. 따뜻하면서도 묵직한, 편안하면서도 강단 있는 그의 모습이 각 작품, 인물에 잘 녹아들었다. 또 편한 길을 가지 않고 매번 도전하는 마이클 리 모습 역시 관객들을 더욱 끌어 당겼다.
바빴던 지난 2년간의 한국 활동에서 마이클 리가 재연 무대에 오른 유일한 작품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하 '지크수'). 시기적으로 잘 맞기도 했지만 이지나 연출에 대한 신뢰, 작품 자체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언제라도 '지크수' 무대에는 설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 브로드웨이 컴백 직전 작품이 '지크수'라는 것도 의미가 있다.
뮤지컬 '지크수'는 지저스가 죽기 7일간의 스토리를 다룬 작품. 드라마데스크상 수상을 비롯해 전세계 유수의 시상식을 휩쓸며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 받고 있다. 2013년에 이어 지저스 역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 마이클 리는 "돌아올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고 운을 뗐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이 작품으로 다시 돌아올 때 연기하기가 더 쉬울 줄 알았어요. 이전에 공연을 해봤기 때문에 어떻게 연출이 되고 공연이 되는지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역시 다시 시작하니까 어렵더라고요. 좀 더 디테일하게 다루다보니 어려워진 것 같아요. 그래도 '지크수'를 한지 2년이 딱 지났고 한국에 와서 지낸 시간도 딱 2년이 지났잖아요.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난 시간도 2년이 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한 것이 많으니까 캐릭터 자체도 많은 것을 찾아낼 수 있고 다른 부분을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시 돌아온 만큼 지저스 역을 위해 세부적인 부분을 더욱 신경 썼다. 지난 공연에서 이지나 연출은 신처럼 보여야 하니 소용돌이 치는 장면에서도 정적이고 고요한 이미지를 마이클리 본인과 연결지어 내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공연에서 마이클 리는 이같은 부분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할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게 할 것인지 집중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그림을 세부적으로 그려내는 부분과 함께 체력적인 부분도 더 신경 쓸 수 있었다.
"'지크수'는 체력적으로 좀 더 준비해야 돼요. 리허설 시작하기 7개월 전쯤 공연을 하기로 확정 지은 후부터는 힘을 비축하기 위해 체력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지크수'는 매 공연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소모되는 게 굉장히 커요. 이번에도 쉬워지진 않더라고요. 익숙해지긴 했지만 어려워요. '겟세마네'를 부르기 전에도 긴장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하지만 그 긴장감조차도 연기를 하면서 풀어요. 당시 지저스가 느꼈을 긴장감도 비슷했을 거기 때문에 그 긴장감을 이용하려고 노력해요."
기존 유다 한지상과 새로운 유다 최재림, 윤형렬과의 만남도 뜻깊다. "관객들이나 배우로서나 비교는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세 사람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어렵게 운을 뗀 마이클리는 진중한 모습으로 세 유다를 한 명씩 떠올렸다.
"한지상과 같이 연기하게 돼서 정말 좋아요. 한지상의 연기 스타일과는 익숙해져서 편하게 됐죠. 그가 좋은 배우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한지상과 공연할 때는 마음을 열고 모든걸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임해야 된다는 마음이에요. 똑같은 연기를 한적이 없거든요. 매번 다른 표현을 해주고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그도 매번 다른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아요. 호흡이 잘 맞죠. 익숙하고 잘 해왔기 때문에 호흡을 잘 맞추고 흐름에 맞게 연기를 할 수 있었어요."
그렇다면 최재림, 윤형렬은 어떨까. 마이클 리는 "정말 즐거운 작업을 하고 있다"며 "두 배우 모두 정말 파워풀한 성량을 갖고 있고 육체적으로도 아우라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장점을 가진 배우들이라 맞춰 가면서 많은 것을 배워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재림, 윤형렬도 특별한 배우예요. 한국 뮤지컬 산업에서 더블, 트리플 캐스팅이 가져다 주는 장점인 것 같아요. 원캐스팅으로 가는 공연 조차도 같은 공연이 되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멀티플 캐스팅으로 가면서 연기를 하는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고 배우, 상대방이 달라져 많은 변화가 생기죠. 이번엔 앙상블에 캐스팅된 분들 역시 리허설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참 대단한 분들이다'고 느꼈어요. 개개인마다 맡은 배역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고 고민한 것 같아요. 한사람 한사람과 다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 같아요. 공연에서 보여주는 앙상블들의 힘에 의한 감동이 크다는걸 알 수 있을 거예요. 노력을 많이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저 마이클리를 포함한 모든 배역들이 주, 조연이 아닌 전체로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분명 2년 전 한국 무대에 설 때는 언어 장벽도 있었고, 힘든 점도 있었다. 하지만 2년간 한국에서 활동하며 적응을 마친 마이클리는 이제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겼다. "첫번째로 성취하고 싶은건 전세계 관객들에게 한국에서 2년동안 얼마나 성장과 발전을 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힌 그는 "한국에서 발전하고 그만큼 빛날 수 있다는걸 보여준다면 한국 산업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도 증명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연기하는 것 자체로서는 걱정하는게 없는게 연기는 어떤 문화든, 어떤 배경이든 다 비슷하게 통용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한국어라는 언어 자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에서 연기하는 것보다는 몇 배는 노력해야 해서 더 어려웠죠. 그래도 한국어로 연기하면서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어요. 더 잘 귀담아 들을 수 있도록 해줬고, 다른 사람들의 연기에도 더 잘 반응할 수 있는 것도 배웠죠. 더 강하고 단단한 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언제나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정한 목표 같은건 없지만 지속적인 목표는 매 공연마다 진솔된 모습을 보여드리자는 거예요."
정신없이 2년을 달려온 마이클리는 '지크수' 이후 다시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로 컴백한다. 한국계 미국인인 만큼 언어에 장벽이 없어 브로드웨이 활약이 더욱 수월했던 그의 브로드웨이 차기작은 뮤지컬 '엘리전스'.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에 대한 편견과 억압 속에서 피어난 깊은 가족애, 사랑, 인권을 다룬 작품에서 마이클리는 미국 대학원생으로 출연해 뛰어난 머리, 리더십, 타고난 정의감으로 자유를 위한 반란을 이끄는 리더 프랭키 역을 연기한다.
한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다 다시 브로드웨이로 간다는 것은 나름의 고민을 갖게 했다. 한국에서 일이 잘 되고 있었던 만큼 브로드웨이로 간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조차도 많이 힘들었고 한국 팬들이 보여준 관심과 사랑 때문에도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초반부터 참여해 의미가 큰 작품이기에 마지막까지 잘 끝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시 브로드웨이행을 택했다. 하지만 마이클리는 "한국은 나의 집이다. 늦지 않게 돌아오겠다. 기다려달라"며 한국 팬들을 안심시켰다.
"2년 후 브로드웨이로 복귀하겠다고 계획한건 전혀 아니에요. 예상치 못했던 일이 급하게 진행됐죠. 2012년 '엘리전스'가 처음 무대에 오르고 다들 브로드웨이에 바로 진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정말 큰 성공을 거뒀죠. 근데 계획이 지연되면서 모든 배우들이 포기하는 시점에 이르렀어요. 그러다 예상치 못하게 다시 올려지게 됐죠. 2011년 첫번째 리딩 때 다른 역할로 참여했었어요. 공연 자체가 워낙 의미 있고 중요해요. 작품에 참여한지 5년이 지났고 작품이 갖고 있는 주제 역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표현해보고자 하는 마음에 급하지만 바로 가게 됐어요."
마이클 리 본인이 한국계 미국인이기 때문에 인종 차별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엘리전스'는 더 큰 의미가 있다. 재미교포 2세인 마이클 리는 어린 시절 김치보다 햄버거를 먹으면서 자란 미국인이지만 미국인들은 그를 외국인으로 받아들이고 쳐다봤다. 외향적인 모습으로 편견을 갖는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는 작품 '엘리전스'가 마이클리에게 더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이유다.
"공연에 참여했던 제작자 분들도 필리핀계 미국인, 중국계 미국인 등이에요. 주연배우 중 한명은 그런 인종 차별을 경험했던 세대이기도 하죠. 다들 출신이 다르지만 어쨌든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들이에요. 미국이 참 오랜 시간동안 많은 문화가 융합된 공간이고 많이 어우러진 시기를 지나 왔지만 여전히 백인이 미국인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이 작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를 사랑하는 한국 팬들은 그가 잠시 한국 무대를 떠나는 것이 아쉽지만 브로드웨이에서 활약하는 그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마이클리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브로드웨이에 복귀하며 더 책임감을 갖게 되는 이유다. "지난 2년간 한국 무대에 서서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그 점에 있어서는 많이 배운점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경험도 많이 했고 역량도 펼칠 수 있었고 실패를 했던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부분에서 많은걸 경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최근 한국 배우들의 브로드웨이 진출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마이클리에게 해외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배우들을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마이클리는 질문을 받자마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워낙 동료 배우들과 잘 지내는 그이기에 누구 하나를 꼽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 하지만 자신이 난감하다고 해서 그 어떤 질문도 그냥 넘기는 법이 없는 자상한 마이클 리이기에 그는 다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남자 중엔 양준모와 조승우요. 양준모 씨 이미 일본에서 '레미제라블'을 하고 있어서 충분히 진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같이 작업해보진 않았지만 조승우 씨를 꼽고 싶어요. 정말 많은 분들이 있지만 두 분을 말씀 드릴게요. 조승우 씨는 무대에서 보여지는 카리스마가 있어요. 정말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모습이 관객들로 하여금 계속 지켜보게 만드는 것 같아요. 조승우 씨는 의심할 것 없이 스타잖아요. 근데 무대 위에서는 조승우라는 사람은 어느새 없어지고 그 캐릭터만 보여요. 그가 갖고 있는 능력이고 경쟁력이죠. 여자 중에선 차지연이요. 같이 '더 데빌, '서편제'를 했는데 노래든 연기든 그녀가 갖고 있든 용기든 여러 면에서 봤을 때 브로드웨이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이클 리는 한국을 자신의 또 다른 터전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한국 무대의 소중함을 알았고, 자신의 성장을 느낄 수 있었다. 언어적 장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더 노력해 열심히 보완하겠다는 약속을 하고싶은 것도 한국 무대에 계속 오르겠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 중에 교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떤 마이클 리는 인터뷰 내내 모든 것이 자신에게 '행운'이라고 했다. 한국 무대, 브로드웨이, 모든 팬들, 인터뷰 하는 순간까지도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했다.
"한국 팬들은 유대감 갖는 부분이 많아 좋아요. 모든 것이 제게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죠. 배우라는 직업은 제게 가장 좋은 직업이에요. 저보다 훨씬 더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들에게 많이 배울 수 있잖아요. 지금 순간만 보더라도 굉장한 행운이에요. 올해 데뷔 20주년이 됐는데 믿기지가 않아요. 1995년 '미스 사이공' 무대가 아직도 어제처럼 기억이 나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요. '미스 사이공' 이후 제가 내렸던 결정, 참여했던 작품 등으로 인해 이 자리에 있는 건데 믿기지가 않아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참 흥미로워요. 20년 전 제가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20년 뒤 제가 어떨지 상상하긴 어려워요. 해내고 싶은 꿈들은 있긴 하지만 어떨 때는 그것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해내기도 하기 때문에 지켜봐야 해요. 어떤 일이 일어나든 다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오는 9월 13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 공연시간 135분. 문의 1577-3363(클립서비스)
[뮤지컬배우 마이클리. 사진 = 클립서비스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