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관객들에게 '믿고 보는 배우'로 통하면서도 배우 강필석은 단 한순간도 작품이 쉬웠던적이 없다. 어렵게 파고들고, 그 과정에서 작품과 인물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그로 인해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강필석은 그렇게 또 하나의 완벽한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현재 그가 파고들고 있는 작품은 연극 '프라이드'. 영국의 배우 겸 극작가 알렉시 캠벨(Alexi Kaye Campbell)의 대표작으로 1958년과 2015년을 살아가는 동명의 인물 필립·올리버·실비아를 통해 사랑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사회적 통념과 내면의 목소리 사이에서 고뇌하는 필립 역을 맡은 강필석은 최근 연극 '스피킹 인 텅스' 공연을 마친 뒤 '프라이드'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마치 고3 같다"고 밝힐 정도로 집중하고 있다.
공연과 연습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특히 '스피킹 인 텅스'는 좋은 작품이었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형식이 난해하고 캐릭터도 만만치 않아 힘들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다음 작품인 '프라이드'를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하지만 웬걸, 역시나 쉬운 것은 없었다.
"'스피킹 인 텅스'는 형식 자체가 어려웠어요. 대화를 하고 있는데 온 신경은 다른 쪽으로 가있으니까. 그래도 배우로선 좋았어요. 계속 연기를 하는게 사실 과잉이니까 다른 것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데 연기를 하면 상황에 빠져서 약간 다른 것들을 인식 못하는 상황들이 보여지거든요. 그런 면에서 '스핑킹 인 텅스'를 통해 집중도를 얻게 됐죠. 지금 '프라이드' 연습에만 몰두하고 있는데 아직도 캐릭터와 싸우고 있어요. 안으로 들어가 '왜 이렇게 되는 거지?' 많이 얘기를 나누고 있어요."
강필석은 지난해 '프라이드' 초연 당시에도 출연 제의를 받았지만 스케줄 문제로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 당시 '좋은 작품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텍스트가 좋았기 때문에 재연 출연 제의에 좋은 기회라는 생각으로 합류했다. 하지만 거듭 밝혔듯 쉽진 않았다.
"사실 형태적으로만 들어가면 어려운 작품은 아니에요. 동성애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했지만 '프라이드'는 소재로만 하고 있지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또 정확하게 구현해줘야 리얼하게 전달이 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이 아니라 그게 좀 힘들었어요. 연극으로 동성애 소재 이야기를 하는 것은 또 처음이라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프라이드'는 개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동성애를 소재로 하다보니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필석은 "사실 막 크게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는데 '동성애니까 어떨까' 하긴 했다"고 운을 뗐다.
"그냥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부분에 더 집중했어요. 이들의 언어에 대해 이번에 좀 많이 알게 됐고요. 지금까지는 그냥 '내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이 사람에게 어떻게 할까'에 가장 크게 집중했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조금 더 그들이 쓰는 언어나 생활이나 그들이 억압됐다는 것을 더 알게 되니까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동성애에만 집중하는 시선이 아쉽지는 않아요. '번지점프를 하다'를 보고도 동성애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사실 전 단 한 번도 그 작품을 동성애 작품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강필석은 작품이 주는 메시지에 집중했다. '번지점프를 하다' 공연 당시 '동성애 작품 했잖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화가 난 것도 그 때문. 작품을 보고 느끼는 것은 저마다 다를테지만 그래도 소재를 넘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보이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때문에 '프라이드'에서도 동성애가 표면적으로 보이지만 그들 개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에 더 집중해주길 바란다.
메시지에 집중한 만큼 강필석의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극중 1958년 실비아의 마지막 엔딩 독백이다. 마음 속에서 전쟁을 벌이다 가장 잔인한 상황 속에서 떠나는 실비아지만 마지막엔 작품을 안아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초연에서도 '이 대사 참 좋다'고 했던 기억이 나는 그는 지금도 실비아의 마지막 대사가 좋다.
그렇다면 1958년의 필립, 2015년의 필립에 대한 분석은 어떻게 시작했을까. 그는 "두 역할을 구분 짓지는 않았다"며 "처음부터 동질하고 이 사람들의 심장은 같다는걸 표현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대본 첫 장에도 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1인 2역이라는 게 두드러져야 할까 싶어요. 오히려 안 두드러져도 될 것 같아요. 분명 시대와 분위기가 엄청나게 바뀌고 물론 다른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다른 사람으로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요. 마치 환생한 것 같은 느낌이라.. 오히려 똑같은 행동, 버릇 등으로 사실 같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1인 2역에 대한 고민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해결했지만 필립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고민중이고 어렵다. 대사가 많아 몰아가야 하는 부분도 힘들고, 리얼리즘이라는 것 때문에 걸리는 부분들도 계속 만들고 있는 중이다.
"필립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전체적으로 좀 화를 내는 장면들이 많고 약간 눌려 있는 캐릭터다 보니까 이게 뭔가 참아내고 뭔가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감정을 자꾸 밀어내는걸 표현하기가 힘들어요. 너무 피하기만 하고 그러면 단면적으로 보일 것 같거든요. 지금 제일 고민인건 너무 강요를 하게 될까봐 걱정이 되긴 해요. 이 캐릭터나 이 감정을 강요하게 될까봐. 그게 사실 항상 경계를 하고 있는 부분인데 거의 내내 눌려 있는 이 사람의 모습을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중이에요."
강필석 본인은 어떤 필립에 더 가까울까. "어느 순간에는 참고, 또 표출할 때도 있고 반반인 것 같다"고 답한 강필석은 "사실 1958년 필립은 시대를 인정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현재는 또 굉장히 다르다. 뭔가 찾은 것 같고 명확하다"고 필립에 대해 더 설명했다.
"저 같은 경우 필립은 굉장히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감추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매력적이어야 하죠. 표면적으로 보이는 게 아니잖아요. 1958년 올리버가 필립을 거의 모든걸 걸고 사랑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한테 어떤 매력이 있을까' 생각하게 되죠. 올리버는 분명 이 사람 안에 있는 뭔가를 봤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거고, 그부분이 꼭 표현돼야 할 것 같았어요. 2015년 필립 안의 순수함이 1958년 필립에게도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재미 없게 살아간다고 하는 것을 보면 1958년 필립 안에도 예술성과 섬세함이 있어요. 그러니 필립은 더 미칠 것 같은 거죠. 사실 대사만 보면 자칫 그냥 아저씨 같이 표현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현실에 찌든 느낌이 좀 있어서.. 그래서 1장엔 꼭 필립의 매력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머지는 계속 거부하고 부인하니까.."
사실 3시간 가량 되는 분량과 그 안에서의 대사량이 부담스럽기는 하다. 3시간 동안 얼마나 작품을 잘 끌고 갈 수 있을지, 관객들과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말을 빨리 하고 템포를 높빨리 한다고 해서 재밌어지 작품이 아니다. 정신없이 달려갔다간 '이게 지금 뭘 말 하는 거지?'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부담감은 같은 역을 맡은 배수빈을 비롯 올리버 역 박성훈, 정동화 등 동료 배우들과 함께 풀어가고 있다.
"(배)수빈 형은 이번 작품을 통해 정말 좋아하게 됐어요. 연기도 정말 잘 하고 맏형으로서 배려심이 좋아요.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할 수 있게 해주죠. 이제까지 해왔던 더블 배우들 중 가장 서로 비슷한 것 같아요. 나만 느끼는 거일 수도 있는데..(웃음) 공유되는 생각들이 많아요. (박)성훈이는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 역할과 잘 어울려요. 굉장히 솔직하게 연기를 해서 재밌을 것 같아요. 올리버도 되게 솔직한 사람이잖아요. 개인적으로 상대방에게 집중하고 거기서 연기를 받는 스타일이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되게 재밌을 것 같아요. (정)동화와는 '쓰릴미'에서 같은 역할을 해서 같이 연기한적은 없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같이 하게 됐죠. 동화는 선함과 약간의 여성스러움이 있어요. 되게 섬세한데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해요."
초연에 이어 재연 무대에 오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사실 그런 부담감을 생각하면 이 작품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밝힌 그는 "똑같이 한다면 배우들에게도 의미가 없다. 공연이라는 게 답이 없기 때문에 좋은 작품인 만큼 다양한 시도도 하고 각각 배우들만의 캐릭터도 만들어야 한다"고 털어놨다.
자신만의 필립을 만들어야 하기에 강필석은 '프라이드'에 대해 "또 하나의 전쟁 같은 작품이다"고 표현했다. 또 하나의 인권 운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그래서 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봤으면 한다.
"이 작품을 보면서 우리 모두 존경 받아야 하고, 프라이드를 찾아야 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결국 존중과 배려를 해야 된다는 거거든요. 프라이드잖아요."
연극 '프라이드'는 영국의 배우 겸 극작가 알렉시 캠벨(Alexi Kaye Campbell)의 대표작으로 1958년과 2015년을 살아가는 동명의 인물 필립·올리버·실비아를 통해 사랑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사회적 통념과 내면의 목소리 사이에서 고뇌하는 필립 역에는 배수빈 강필석,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다정다감한 성품을 지닌 올리버 역에는 정동화 박성훈, 실비아 역에 임강희 이진희, 의사/남자/피터 역에는 이원, 양승리가 캐스팅 됐다.
연극 '프라이드'는 오는 8월 8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막을 올린다.
[연극 '프라이드' 강필석. 사진 = 연극열전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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