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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배우 백종원. 1981년생.
나와 같은 이름의 누군가가 같은 시대에 같은 공간에서 같이 산다는 건 꽤 복잡한 문제일 것이다. 나를 그로 착각한 누군가에게 엉뚱한 부탁을 받을 수도 있고, 매번 그럴 때마다 '사실 저는 그 사람이 아니고…'라고 해명을 한다는 것도 어지간히 번거로운 일이 아닐 게 틀림없다. 게다가 내 이름도 A이고 그의 이름도 A인데 "나는 A가 아니라 A입니다"라고 설명하는 게 어딘지 모순 같은 데다가 왠지 내가 나를 부정하는 이상한 기분이지 않을까.
백종원이란 이름의 배우를 만났다.
▲ 키 큰 남자
프로필에는 키가 189cm라고 적혀 있었다. 실제로는 훨씬 더 커 보였다. 대충 헝클어뜨린 머리에 수염은 거칠했다. 목소리는 굵었다. 인터뷰를 한 비좁은 소회의실에 백종원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이름을 바꿀까 많이 고민했어요. 새 이름도 다 정해놨었고요. 근데 회사에선 바꾸지 말라고 했어요. '일단 해보자' 하셨죠. 저를 위해 일해주시는 분들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따르는 게 옳다고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 1년 반 정도 농구부 생활을 했다. 대개 운동부 생활은 어릴 때부터 시작하는데 시작이 늦었다. 키 때문이다. 늦게나마 가능했던 건 키가 워낙 큰 탓에 농구부 테스트 날 거뜬히 덩크슛을 해냈던 덕분이다.
"시작은 늦은 편이었죠. 다들 '이제 와서 뭘 하겠냐'고도 했고요. 근데 중학생 때 처음 농구를 해보고 진심으로 '하고 싶다'란 기분을 느꼈어요. 그때부터 왠지 제 인생이 이렇게 온 것 같아요."
농구부 생활은 대학 진학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접었다. 대학 입학 후 평범하게 살았는데, 우연히 모델 일을 접하고 운까지 좋아 일거리도 제법 얻었으며 모델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 엠 어 모델'에 출연하며 이름도 조금은 알렸다. 다만 진심으로 '하고 싶다'란 열망은 없었다. 일을 하러 떠난 일본은 그래서 일종의 도피였다.
일본에선 계속 모델 일을 했다. 열망 없는 나날. 그러다가 한 극단에서 하는 연극에 참여하게 됐고, 처음 제대로 된 연기를 해봤다. 철저한 준비부터 무대에 올라 감정을 쏟아내는 것까지 생소한 경험이었지만 보람이 컸다. 많지는 않아도 좋아해주는 팬들도 생겼다. "저를 응원해주신다는 게 참 고맙더라고요."
그리고 그날 중학생 시절 처음 농구를 했던 순간의 그 뜨거운 두근거림이 가슴에서 느껴졌다. "절 진심으로 좋아해주시는데, 거기에 보답하고 싶었어요. 떳떳하게 '연기하는 사람'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었고요."
일본에서 돌아왔을 때는 늦은 나이였다. 운 좋게 일거리가 많이 들어오던 시절도 지나 있었다. 그동안 놓쳤던 기회들을 떠올리며 매일 밤 후회도 했다. 다만 후회의 밤을 깨우고 일어날 이유가 있었다. 농구선수의 꿈은 이루지 못했으나 연기자의 꿈은 이뤄야 할 이유가 있었다. 연기하는 백종원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연기하고 싶은 사람이 '저 연기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키도 너무 크고, 나이도 많고, 모델 출신이란 선입견도 있지만 '이거 보여줄 수 있어요?'라고 물어보실 때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보여드릴 준비가 되어 있어요."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당신을 주문합니다'에서 백종원이 연기한 역할은 도시락 가게 직원으로 순수하고 때로는 어딘가 어수룩한 캐릭터였다. 웃는 게 퍽 수더분한 역할이었다.
"키 큰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가 있지 않을까 해요. 그만큼 작은 분량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고요. 그리고 흔히 생각하는 '모델 출신 배우'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전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 사람들 예상을 뒤엎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다른 '모델 출신 배우'처럼 멋있는 역할을 하고 싶은 게 아니거든요."
배우 백종원. 흰 백(白), 심을 종(種), 근원 원(源)이다.
"백종원이란 제 이름이 장점도 있어요. 다른 분들이 농담으로 '음식 사업은 잘되니?' 물어보시기도 하고요, 제 소개를 할 때도 '셰프 백종원 아니고 연기하는 백종원입니다'라고 인사하면 분위기도 좋아지더라고요. 그리고 어찌됐든 전 백종원이 맞으니까요."
[사진 = 위드메이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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