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선' 침묵을 깨는 파격 다큐, 우아한 일침 [MD리뷰]

[마이데일리 = 신소원 기자] "당신이 우리 형을 죽였습니다."

지난해 영화 '액트 오브 킬링'으로 다큐멘터리계에 파격적인 등장을 했던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신작 '침묵의 시선'으로 또다시 다큐멘터리의 전형성을 깨부쉈다.

'침묵의 시선'(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 제작 베르너 헤어조크 배급 엣나인필름)은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100만명 대학살 사건으로 형을 잃은 아디가 50년후 자신의 형을 죽인 사람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하는 도발적인 방식의 다큐멘터리다.

앞서 '액트 오브 킬링'은 당시 가해자들에게 "당신이 저지른 학살을 재연해보라"며 제안, 자랑스럽게 살인의 업적을 당당하게 펼치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침묵의 시선'은 그보다 정적이고 우아하다. 학살이라는 참사 위에 세워진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는 가해자들과 여전히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피해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학살 당시 100만명의 희생자 가운데 주인공인 아디의 형 람리가 이번 사건의 중요 인물로 꼽히는 이유는, 소리소문없이 실종 처리돼 사라졌던 100만 명 중 유일하게 목격자를 가진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살이 끝난 후에야 태어난 아디는 형에 대한 추억도 없지만, 그로 인해 망가져버린 가정 안에 살며 영향을 받고 있다.

아디는 안경사로 일하며, 자신의 형을 죽인 사람들을 찾아가 자연스럽게 당시 사건을 이야기하고 그들에게 안경을 맞춰준다. 마치 '지금까지 당신이 본 세상은 틀린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아디는 그들에게 밝은 눈을 준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과거를 묻는 아디는 무서울 정도로 침착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돌직구 질문을 던진다.

군부 독재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공산당이라고 몰아갔던 기득권 세력은 "그 땐 어쩔 수 없었어"라고 말했고, 급기야 아디의 시선을 피한다. 또 계속해서 추궁하는 아디를 향해 "당신이 그 시절에 있었더라면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윽박을 지르는 등, 여전히 과거가 아닌 현재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아픔이자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또 자신의 아버지가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고, 그들의 피를 마시는 등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된 한 여인은 아디에게 "내가 대신해서 미안하다"라고 말을 하는데, 그 옆에서 실제로 그 행동을 저질렀던 당사자는 눈만 꿈뻑거릴 뿐이다.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무섭고 독한 것인지 드러내는 대목이다.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럼에도 감독에 의해 각색이 가미된 장르다. 그런 점에서 조슈아 오펜하이머가 풀어내는 '침묵의 시선'은 극찬받아 마땅하다. 그는 피해자의 시선으로만 풀어내 관객들에게 같은 감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학살로 인한 사회를 보여주고 침묵을 강요당한 사람들에게 바른 시선을 갖자고 말하는 영화다.

우아한 어조로 담담히 풀어내는 '침묵의 시선'이지만, 영웅의 일대기처럼 과거 자신의 행동을 웃으며 똑같이 하는 가해자나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발뺌하는 유족들의 모습은 공포스럽기 그지없다. '침묵의 시선'은 죽음은 있지만 책임은 없는 사회를 음지에서 양지로 드러냈다. 인도네시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어쩌면 일어났던 이야기다. 오는 9월 3일 국내 개봉 예정.

[영화 '침묵의 시선' 포스터 스틸. 사진 = 엣나인필름 제공]

신소원 기자 hope-ss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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