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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씁니다. 오후에는 달리기를 하고요. 이런 생활패턴을 25년 넘게 지속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여성화가 조지아 오키프는 매일 저녁 시골길을 드라이브 했고요. 구스타프 말러는 오스트리아 남부 마이어니히의 뵈르터 호숫가 별장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때 정오까지 곡을 쓰고 난 뒤 오후엔 늘 수영을 했습니다. 얼마전 타계한 ‘의학계의 계관시인’ 올리버 색스도 수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모비딕’을 쓴 허먼 멜빌은 매사추세츠 버크셔에 있는 농장에서 옥수수와 순무, 감자와 호박을 재배했죠. 찰스 디킨스는 런던 거리를 3시간씩 산책하며 영감을 떠올렸고요. 영화감독 우디 앨런은 30~45분간 더운물로 샤워를 하면서 창조적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컬트의 제왕’ 데이비드 린치 역시 매일 2번, 20분간의 명상을 30년 넘게 계속 하고 있습니다.
메이슨 커리는 ‘리추얼’(책읽는 수요일 펴냄)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의 리추얼을 소개합니다. 리추얼(Ritual)이란 일상의 반복적인 행동패턴을 말합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는 “사소하지만 즐거운 리추얼이 우리의 삶을 구원해준다”고 말했죠. 김정운 역시 갓 볶은 싱싱한 원두를 사와 자신의 손으로 직접 갈아 먹으며 소소한 즐거움을 얻습니다.
세상은 온갖 방해와 유혹으로 넘쳐납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휩쓸립니다. 자신 만의 리추얼이 없다면 버텨내기 힘들죠. 무라카미 하루키가 마라톤을 하지 않았다면 이토록 오랫동안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요. 찰스 디킨스의 산책은 ‘올리버 트위스트’ ‘위대한 유산’ ‘크리스마스 캐롤’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우디 앨런의 샤워와 데이비드 린치의 명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전 ‘서부전선’의 설경구를 만났습니다. 이준익 감독이 송강호는 호랑이 스타일, 설경구는 곰 스타일의 연기를 한다고 평했죠. 이에 대한 그의 의견을 물었더니, 맞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설경구의 리추얼은 줄넘기입니다. 이제 하나의 의식(儀式)으로 자리잡았죠. 2002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때부터 지금까지 거르지 않았습니다. 여관방에서 땀복을 입고 벽을 바라보면서 줄넘기를 합니다. 해외 로케이션에서도, 지방 촬영장에서도 줄을 넘습니다. 아래 방에서 항의할까봐 아예 매니저를 투숙시킵니다. 영화 ‘소원’을 촬영할 땐 하루 5,500개씩 줄넘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 자신을 보면 곰같이 느껴진다고 했죠.
“감정을 잡기위해 줄넘기를 한다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건 아닙니다. 줄넘기는 습관의 차원을 넘어섰어요. 줄넘기를 하지 않으면 제가 못 버텨요. 연기하기 전에 몸을 푸는 작업인데, 마음을 다잡는다고 할까요. 연기에 좀더 충실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예요.”
설경구는 13년 전에 시작한 줄넘기 리추얼로 지금까지 충무로의 대표배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자칫 나태해질 수 있거나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줄넘기로 극복한거죠. 그는 “데뷔 이후 모든 것이 변했지만, 줄넘기만큼은 끝까지 하자”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설경구는 줄넘기에 ‘삶의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수많은 예술가들 역시 사소한 리추얼로 삶의 중심을 잡았고요. 그렇다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당신의 리추얼은 무엇입니까.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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