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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얼마전 일명 ‘캣맘 사망 사건’이 한국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길고양이를 돌보던 50대 여성이 벽돌에 맞아 사망했는데, 그것이 캣맘을 혐오해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초등학생 용의자가 잡히기 전까지 8일 동안 한국사회는 ‘누가 캣맘을 죽였나’에 관심 보다는 길고양이 혐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캣맘 사망 사건’으로 명명한 것 자체가 본질을 벗어났다. 목격자의 말대로, “벽돌 살인 사건 혹은 돌 테러”라고 부르는게 맞다. 그러나 용의자가 검거된 뒤에도 대중은 ‘벽돌 살인 사건’ ‘돌 테러’라고 부르지 않고, ‘캣맘 사망 사건’으로 기억한다.
영화 ‘특종:량첸살인기’(이하 ‘특종’)에서 오보가 유통되는 과정은 ‘벽돌 살인 사건’과 비슷한 데가 있다. ‘특종’에서 허무혁 기자(조정석)는 잘못된 제보를 믿고 연쇄살인사건 용의자의 자필 메모를 입수해 특종(?)을 터뜨린다. 허 기자는 오보임을 알고 사건을 덮으려 노력하지만, 보도국장(이미숙)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된다. 오보는 걷잡을 수 없이 부풀려지고, 진실은 잘못된 사실에 묻힌다.
벽돌 살인 사건이 8일 동안 ‘캣맘 사망 사건’으로 불려지고, 영화에서 오보가 진실처럼 통용되는 과정은 오보→(가짜) 사실→유통→진실로 이어지는 연쇄고리를 형성한다. 대중은 최초에 보도된 내용을, 그것이 충격적이고 선정적이라면, 오보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차이점이라면 벽돌 살인 사건은 용의자가 잡히면서 캣맘 혐오가 오보임이 밝혀졌지만, ‘특종’은 언론사 내부에서만 오보임을 알고 끝내 진짜 용의자가 대중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시간이 흘러 누군가가 영화 속 용의자의 실체를 밝혀낸다 하더라도, 대중은 믿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저널리스트 크리스 무니는 인간은 ‘동기화된 추론 이론’에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사람은 동기에 영향을 받으며 편향되게 사고한다는 설명이다. 자극과 정보에 대한 반응은 냉철한 판단이 아니라 감정적이고 자동적이다. 한마디로, 감정이 추론을 좌우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장문의 출생신고서를 공개했을 때,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들에겐 ‘오바마는 케냐 출생’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진실이다. 오바마를 싫어하는 감정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다. 한국사회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실에 따른 추론이 아니라 감정에 따른 믿음으로 사회적 이슈를 판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영화 ‘특종’에서 취재를 진두지휘하는 보도국장(이미숙)의 말은 한국사회의 단면을 씁쓸하게 드러낸다.
“그들이 진짜라고 믿으면 그게 진실인 거야.”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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