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잠실 김진성 기자] 김태형 감독이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 한을 풀었다.
김태형 감독은 1990년 OB에 입단, 2001년까지 두산에서만 12년간 뛰었다. 그 누구보다도 두산의 문화와 선수단 특성을 잘 안다. 선수 시절부터 리더의 자질이 있었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증언. 프로 초년병 시절 김 감독을 대선배로 모셨던 홍성흔도 김 감독의 고참 시절 특유의 카리스마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시즌 둥 "무서운 선배이면서도 뒤끝 없고, 후배들을 잘 챙겨주는 선배였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 감독은 은퇴 후 김경문 감독 밑에서 배터리코치로 일했다. 지도자 수업을 착실히 쌓았다. 이 과정에서 김경문 감독 특유의 선 굵은 야구를 상당 부문 흡수했다. 올 시즌 김 감독의 야구가 김경문 감독의 야구와 흡사하다고 평가한 사람이 많았다. 실제 김 감독은 기본과 예의를 중시하고, 작전야구를 최소화하며, 고정된 선발라인업을 선호하면서 선수 개개인에게 맞춤형 역할을 제시, 동기부여와 자극을 동시에 줬다.
김 감독은 김경문 감독이 2011년 말 NC로 떠나면서 두산 유니폼을 벗었다. 이후 3년간 SK에서 배터리코치로 일했다. 그 3년이 오히려 객관적인 시각에서 야구를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김 감독은 제 3자의 눈으로 지난 2~3년간 두산의 실패를 면밀히 파악하고 있었다.
두산은 2014시즌 후 송일수 감독을 경질하면서 곧바로 김 감독을 데려왔다. 이미 김진욱 감독, 송일수 감독 선임 때 김태형 감독 선임에 대한 내부적 논의도 있었다. 두산으로선 송일수 카드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김 감독을 재영입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김 감독은 감독으로 친정에 돌아오자마자 사분오열된 두산을 하나로 모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구단이 장원준을 FA 84억원에 데려오는 등 많은 투자로 김 감독을 뒷받침해줬다. 그러나 김 감독도 확실한 추진력을 갖고 밑그림을 그렸고, 그대로 밀어붙였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부상자가 속출했지만, 김 감독은 그때그때 플랜B를 적절히 가동, 후유증을 최소화했다. 두산 야구를 그만큼 잘 알고 있고, 선수들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두산은 예상대로 타선은 수준급이었으나 부상자가 많아 100%의 파괴력을 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마운드는 선발과 불펜의 언밸런스가 심각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초보답지 않게 조급해하지 않고 큰 그림을 그렸다. 시즌 중 노경은의 2군행 등 과감한 결정을 내리면서도, 이후에는 부진했던 노경은을 끝까지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뚝심도 발휘했다. 페넌트레이스 144경기. 심지어 포스트시즌서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의 밑그림대로 밀어붙인 결과 14년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란 달콤한 결과로 이어졌다.
김 감독 리더십은 김경문 감독을 많이 닮았다. 잘못된 부분을 즉각 수정하는 반성모드, 그리고 과감한 결단과 믿음이 돋보였다. 그러면서도 단기전 승부처에선 기민한 타순조정, 적절한 희생번트 등 작전야구를 가미, 통합 5연패에 도전하는 삼성을 잡아냈다. 결국 스승 김경문 감독도 해내지 못했던 우승을 감독 데뷔 첫 시즌에 일궈냈다. 플레이오프서 김경문 감독의 NC를 넘기도 했으니 올 시즌 김태형 감독의 성과는 찬란하다.
두산의 객관적 전력은 결코 강하지 않다. 하지만, 두산은 2015년 최후의 승자가 됐다. 김태형 리더십은 확실히 제대로 짚어 볼만하다. 그의 수완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명장으로 성장할 자질이 충분하다. 한국야구가 2015년 40대 유능한 지도자 한 명을 제대로 수확했다.
[김태형 감독. 사진 = 잠실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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