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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득점 침묵이 무려 ‘404분’ 만에 깨졌다. 주인공은 비난의 중심에 섰던 웨인 루니였다. 최근 슈팅이 적고, 페널티박스 안 터치가 없다며 ‘골잡이’로서 최악의 평가를 받았던 루니는 결승 헤딩골로 포효했고 루이스 판 할 감독은 “루니는, 루니다”며 변함없는 신뢰를 보였다. 여론도 다시 칭찬모드로 바뀌었다. 축구도 결과가 모든 걸 말해준다.
맨유는 4일(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포드에서 치른 CSKA모스크바와의 2015-16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B조 4차전서 루니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뒀다. 2승1무1패(승점7)가 된 맨유는 조 1위로 올라섰다. 또한 루니는 237호골로 맨유 통산 최다골 공동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언론과 팬들은 물론 폴 스콜스를 비롯한 옛 영웅들까지 맨유에 독설을 날린 한 주였다. 무승부가 계속됐고 골도 나오지 않았다. 스콜스는 “맨유는 지루하다”고 혹평을 날렸다. 때문에 모스크바전은 맨유에게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경기였다. 다행히 결과는 좋았다. 루니가 골을 넣으며 404분 만에 득점 가뭄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여전히 빛과 그림자는 공존했다.
■ 웨인 루니
루니를 둘러싼 포지션 논란이 뜨겁다. 결국 판 할 감독은 모스크바전서 루니를 다시 ‘10번’ 자리로 내려 앉혔다. 앙토니 마샬이 원톱에 섰고 제시 린가드가 왼쪽 날개로 뛰었다. 솔직히 루니의 경기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건 아니다. 그러나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좀 더 편안해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일단 높은 위치에서 공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루니는 직접 잡아 직접 뿌려줬다. 그러면 마샬 또는 린가드가 상대 페널티박스 안으로 쇄도했다. 루니는 3개의 슈팅을 시도했고 1골을 넣었다. 또 2개의 키패스를 성공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루니의 골이 터진 건 그가 다시 9번(원톱) 자리로 올라간 후반 34분이었다. 앞서 13분 전 판 할은 마샬과 마타를 빼고 마루앙 펠라이니와 멤피스 데파이를 투입했다. 자연스럽게 루니가 최전방으로 전진했고 3개의 슈팅 중 2개가 이때 나왔다.
404분 만에 득점 침묵이 깨진 상황에서도 루니는 모스크바 포백 수비 사이에서 뒷공간을 파고들며 헤딩골을 만들었다. 린가드의 크로스가 기가 막혔지만 이를 사전에 감지하고 쇄도한 루니의 움직임도 좋았다. 적어도 이 장면에서 루니의 플레이는 10번보다 9번에 가까웠다. 실제로 루니가 10번일 때 박스 안 터치는 ‘1차례’였지만 9번일 때는 ‘4차례’나 됐다.
■ 루이스 판 할
판 할 감독의 루니를 향한 두터운 신뢰를 다시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는 경기였다. 그리고 루니는 그 믿음에 골로 보답했다. 판 할은 경기 후 “루니는 루니다. 그는 항상 팀에 기여해왔다. 나는 그를 또 다시 스트라이커 포지션에 넣었고 그가 골을 넣었다. 기쁘다”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팬들의 야유에 대해선 “나도 들었다. 하지만 이젠 내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고 말했다.
■ 크리스 스몰링
루니의 골이 터지기 1분 전 크리스 스몰링은 엄청난 태클로 세이두 둠비아의 슈팅을 막아냈다. 어쩌면 경기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 판 할 감독도 스몰링을 극찬했다. 그는 “둠비아의 슈팅은 모스크바의 유일한 기회였다. 다비드 데 헤아가 막았고 스몰링이 태클로 걷어냈다”고 말했다. 비록 기자회견서 스몰링의 이름을 ‘마이클’로 불렀지만, 칭찬 만큼은 분명했다.
스몰링은 올 시즌 전성기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그가 지난 시즌 잦은 실수로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던 ‘구멍’ 수비수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제는 스몰링의 플레이에서 맨유의 전설적인 수비수 리오 퍼디난드가 보이기까지 한다. 이날도 스몰링은 2개의 태클과 4번의 가로채기를 성공했다. 404분만의 득점 못지 않게 465분 무실점이 주목 받아야 하는 이유다.
■ 마이클 캐릭
마이클 캐릭은 모스크바전 승리의 숨은 영웅이다. 89.4%의 패스성공률을 기록한 캐릭은 후반 34분 루니의 득점 장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데파이가 빼앗길 뻔한 공을 잡은 캐릭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에게 패스하는 대신 린가드를 향해 정확한 전진 롱패스를 찔러줬다. 순간 오프사이드 트랩을 시도했던 모스크바 수비는 무너졌고 루니의 헤딩골이 터졌다.
올 시즌 맨유는 캐릭이 있을 때 8승1무1패로 무려 80%의 높은 승률을 기록 중이다. 비록 아스날전 완패 당시 수비력에 대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나머지 경기에서 캐릭의 플레이는 매우 안정적이었다. 이는 캐릭이 없을 때 승률과 비교하면 간단해진다. 33%밖에 되지 않는다. 올 시즌 맨유는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얘길 듣는다. 캐릭은 유일한 대안일지도 모른다.
■ 제시 린가드
손흥민과 동갑내기인 린가드는 모스크바전 최고의 선수였다. 4개의 슈팅은 기본이다. 상대 수비수와의 대결에서도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무려 14번 시도해 7번 성공했다. 수비적인 가담도 훌륭했다. 뛰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데파이와는 비교되는 활약이었다. 또한 동시에 최근 판 할 감독이 왜 린가드를 중용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루니의 골 장면에서 린가드의 움직임은 매우 영리했다. 데파이 투입 후 우측으로 자리를 이동한 린가드는 캐릭이 공을 잡자 모스크바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절묘하게 피해 공이 떨어지는 낙하지점으로 뛰었다. 그리고 논스톱으로 한박자 빠르게 크로스를 올려 루니의 골을 이끌었다. 린가드가 제 역할을 해주면서 판 할 감독은 공격옵션에 대한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게 됐다.
[사진 = AFPBBNEWS/ 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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