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 얼마전 한 영화 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모 영화제 사무국에서 고민이 많더라고요. 대부분이 스릴러 장르여서 그 영화가 그 영화 같다는 거예요. 영화제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후보에 올라와야 하는데, 그렇게 할 만한 영화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더라고요.”
‘장르 쏠림 현상’은 충무로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다. 조폭코미디가 잘 되면 우르르 몰려가고, 스릴러가 흥행하면 너도나도 달려든다. 최근의 박스오피스만 봐도 ‘더 폰’ ‘특종:량첸살인기’ ‘그놈이다’ ‘검은 사제들’은 죄다 스릴러다. 개봉을 앞둔 ‘내부자들’도 스릴러다. 저예산으로 제작된 ‘숨바꼭질’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스릴러 쏠림 현상은 가속화됐다.
한 대형 영화사 관계자는 “시나리오를 받아보면, 대부분이 스릴러 장르”라면서 “멜로는 가뭄에 콩나듯 들어오는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충무로에서 멜로 장르는 빙하기다. 2012년 ‘건축학개론’의 반짝 흥행 이후에 이렇다할 멜로 흥행작이 없다. 올 여름 ‘뷰티 인사이드’가 200만 관객을 동원한 것을 제외하면 지난 3년간 멜로영화는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벼락처럼, ‘이터널 선샤인’이 찾아왔다. 10년 만이다. 심장이 기억하는 사랑. 흔적과 습관과 추억이 끝내 버려지지 않아 다시 만나게 되는 사랑. 10년 전, 17만명이 열광했다. 멜로의 전설로 회자됐다. 입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10년의 시간을 버텨냈다. ‘이터널 선샤인’은 개봉 6일째인 10일 7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번주부터 58개관에서 69개관으로 확대 상영된다. 멜로에 목말라하는 관객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30대와 40대가 ‘추억의 영화’를 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20대가 움직였다. CGV에 따르면, 20대 관람비율은 55.1%다. 여성 비율은 60%에 달한다. 20대에게 ‘이터널 선샤인’은 새로운 멜로영화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영화에 지쳐 있던 그들에게 ‘이터널 선샤인’은 복음이었다. 영화의 주요 장면으로 구성한 혁오밴드의 뮤직비디오도 멜로 감성을 일깨웠다.
영화 관계자는 “‘인턴’부터 이어져오는 흐름 중 하나는 자극적인 영화의 홍수 속에서 감동적인 힐링으로 접근하는 작품이 입소문을 탄다는 것”이라며 “‘이터널 선샤인’은 10년간 축적된 입소문이 SNS에서 폭발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멜로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8%로, 1,500만 관객의 시장이 형성돼 있는데 ‘건축학개론’ 이후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뷰티 인사이드’ 외에는 없었다”면서 “‘이터널 선샤인’은 멜로를 갈망하던 관객에게 검증된 콘텐츠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터널 선샤인’ 포스터]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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