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상을 받으면서 이렇게 부담이 되고 땀이 나기는 처음인 것 같다. 많이 위에 올라와서(수상해서) 정말 죄송하다.”
윤제균 감독이 사과했다. 자신이 연출한 영화 ‘국제시장’이 제52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서 10관왕을 했기 때문이다.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제52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이 진행됐다. ‘국제시장’은 최우수작품상, 감독상(윤제균), 남우주연상(황정민), 남우조연상(오달수), 녹음상(이승철·한명환), 첨단기술특별상 (한태정·송승현·김대준·김정수·아키라카이), 편집상(이진), 촬영상(최영환), 시나리오상(박수진), 기획상 총 10개 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으며 최다 수상작에 이름을 올렸다.
영화제에서 수상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기쁜 일이겠지만 윤제균 감독은 시상식의 대미를 장식하는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으로 호명된 후 경직된 표정으로 위와 같이 말했다. 한 시상식에서 자신이 연출한 작품이 최고라 인정받았음에도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싹 가셔 있었다.
이후 투자사, 제작사, 배우, 스태프, 가족 등을 향한 감사 인사가 이어졌다. 수상의 기쁨보다 영화계의 일원으로서 많은 상을 독식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먼저였다. 한참 수상소감을 이야기 한 후에야 윤제균 감독은 살짝이나마 미소지을 수 있었다.
물론 ‘국제시장’이 전체 수상 부문 중 인기상, 공로상, 봉사상을 제외한 19개 부분에서 10개 부문의 트로피를 가져간 건 과한감이 있다. 그렇다고 ‘국제시장’이 이들 각 부문에서 수상하기 부족한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국제시장’도 충분히 수상할 만 했지만 ‘암살’, ‘베테랑’, ‘사도’ 등 쟁쟁한 경쟁작들이 있음에도 반이 넘는 상을 독식했다는 게 문제였다. 이날 ‘암살’과 ‘사도’는 각각 여우주연상(전지현)과 여우조연상(김해숙)에서만 수상 소식을 전했다. 심지어 ‘베테랑’은 단 한 부문의 트로피도 거머쥐지 못했다.
‘국제시장’의 10관왕은 ‘국제시장’ 탓이 아니다. 그럼에도 윤제균 감독은 한 영화의 수장이 아닌 영화계의 일원으로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이 더욱 안타까운 건 대종상영화제가 이미 지난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로 같은 상황을 겪었음에도 또 한 번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당시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제작사인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는 자신의 영화가 최우수작품상 수상자로 호명되며 15관왕이라는 유례없는 기록을 세우자 “오늘 너무 기쁜데 많은 영화 동료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있다. 이렇게 많은 상을 받을지 몰랐는데 죄송하단 말 드리고 싶다”는 수상소감을 전했다. 3년 후인 2015년의 대종상영화제는 이날을 다시 재현하는 듯 했다.
윤제균 감독은 미안하다 말할 필요가 없다. ‘국제시장’이 대종상영화제 측에 10개 부문 트로피를 달라며 떼를 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결과는 ‘국제시장’ 10관왕이다. 과연 이게 ‘국제시장’ 측이 사과해야 할 문제일까. 윤제균 감독과 ‘국제시장’ 팀은 수상 결과를 진심으로 기뻐하면 된다. 다른 영화인들을 향한 미안함은 대종상의 몫이다.
한편 올해 대종상영화제는 대리수상 불가·참가상· 갑질 논란을 비롯해 김혜자 봉사상 수상 번복, 유료 투표 등으로 빈축을 샀다. 여기에 남녀주연상 후보는 물론 다른 부문 배우들 역시 대거 불참, 사상 초유의 시상식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제52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서 영화 ‘국제시장’으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후 사과의 수상소감을 전한 윤제균 감독, 영화 ‘국제시장’ 스틸. 사진 = KBS 2TV 방송 캡처,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