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김인식 감독의 별명은 '국민감독'이다.
유독 국제대회서 한국 야구팬들에게 많은 감동을 안겼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우승을 시작으로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결승전 등 한국야구 영광과 감동의 역사에는 항상 김인식 감독이 있었다. 그런 김 감독이 2015년 프리미어12 초대 사령탑을 맡아 한국야구를 세계정상에 올려놨다. 김 감독의 국제대회 우승은 무려 13년만이다.
김 감독 개인적으로도 영광스러운 결과다. 그는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 이후 언론에 "그날 밤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이치로가 안타(연장 10회 결승 2타점 적시타)치는 게 눈에 아른아른 거리더라"고 했다. 준우승만으로도 훌륭한 결과였지만, 김 감독은 내심 국제대회 우승으로 야구 강국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컸던 모양이다.
2009년 WBC 준우승의 한, 아울러 삼성 류중일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2013년 WBC 예선탈락의 치욕도 이번 대회 우승으로 깨끗하게 씻어냈다. 김인식호의 우승은 여러 요인이 있지만, 중심을 든든히 잡아준 김 감독의 지도력과 리더십이 무엇보다 빛난 결과다. 포스트시즌 직후 진행된 대회라 현직 프로감독들이 은근히 지휘봉 잡기를 꺼려했다. 김 감독은 후배이자 제자 감독들이 마다한 그 자리에 기꺼이 다시 섰다.
그 어느 때보다 대회 준비가 힘겨웠다. 김 감독은 시즌 내내 기술위원장을 겸직하며 선수들을 끌어 모았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각국의 메이저리그 40인 엔트리에 들어있는 선수 차출을 불허했고, 시즌 막판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삼성의 원정도박 스캔들에 연루된 투수 3명은 공교롭게도 김인식호 마운드의 핵심이기도 했다.
숱한 국제무대 경력을 지닌 김 감독도 역대 최약체급의 대표팀을 꾸렸다. 10월 말 소집훈련을 시작했지만, 일본과의 개막전 4~5일 전에서야 완전체가 꾸려졌다. 그렇게 어수선한 팀을 김 감독은 곧바로 다잡았다.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 선수들에게 책임감을 심어줬고, 적재적소에 기용해 최적의 결과를 얻어냈다. 평소 본인의 스타일과는 달리 국제대회 특성을 감안, 선발투수를 미련 없이 바꾸고 불펜 필승계투조 최적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특유의 노련한 경기운영은 여전했다.
개막전 완패 아쉬움에 미국전 오심에 의한 석연찮은 패배가 더해졌다. 그러나 도미니카광화국, 베네수엘라, 멕시코를 잇따라 누르고 조별리그 3위 자격으로 8강전을 통과했다. 8강전서 쿠바를 간단히 눌렀고 일본과의 준결승전서 0-3으로 뒤진 게임을 9회 대거 4득점, 극적인 승리를 일궈냈다. 오타니 쇼헤이에게 막혔던 타선이 9회 구원진을 상대로 폭발했다. 김 감독은 9회초 오재원과 손아섭을 잇따라 대타로 기용, 대성공을 거뒀다. 미국과의 결승전서도 완승하며 우승을 확정했다.
김 감독은 2009년 WBC 직전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번 대회 역시 한국야구에 봉사하는 심정으로 불편한 몸으로 대표팀을 이끌었다. 결국 13년만에 해피엔딩을 일궈냈다. 이번 프리미어12는 김 감독의 리더십과 지도력이 또 한번 빛난 대회였다. 그렇게 한국야구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13년만에 김인식 감독과 다시 한번 우승을 합작했다.
[김인식 감독. 사진 = 일본 도쿄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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