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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배우 송새벽은 어느 장르, 어느 캐릭터를 맡겨 놔도 본래 그 사람인 것처럼 연기하는 마력을 지녔다. 처음 볼 때는 무채색인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면 도드라진 존재감에 깜짝 놀라게 되는 신기한 배우다.
영화 ‘도리화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리화가’는 1867년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었던 시대, 운명을 거슬러 소리의 꿈을 꾸었던 조선 최초의 여류소리꾼 진채선(배수지)과 그녀를 키워낸 스승 신재효(류승룡)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송새벽은 조선 최초의 판소리 학당인 동리정사의 소리선생 김세종 역을 맡아 어느 순간 진짜 소리 선생 같은 모습으로 관객들을 놀래킨다.
그래서인지 류승룡은 이런 송새벽에 대해 “사극에 특화 된 배우”라고 극찬했다. 이에 동감 하냐는 말에 송새벽은 “제가 영화에서 사극을 몇 개 안 했어요. ‘방자전’과 ‘조선미녀 삼총사’를 했고, 이번이 세 번째예요”라고 말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감독님에게 못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소리를 해야 하고 북을 쳐야 했으니까요. 최소한 2~3년은 트레이닝 한 상태에서 들어가야 하는 작품 같았거든요. 더군다나 제가 소리를 해보거나 타악기를 만져보지 않은 상태였어요. 연극에서 잠깐 판소리를 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어깨 넘어 했던 것이지 직접적으로 소리를 한 건 아니었어요. 소리를 어떻게 하는지를 봤기 때문에 더 두려워했을 수도 있어요.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요. 그래서 더 망설였죠.”
이런 송새벽의 마음을 움직인 건 메가폰을 잡은 이종필 감독의 한 마디다. 이종필 감독이 ‘그렇게 따지면 국악원에 계신 분들을 캐스팅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던 것. 이에 송새벽은 마음을 다잡고 작품에 최대한 누가 되지 않도록 연습에 매진했다. 그 결과 ‘송새북’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촬영이 끝난 후 스피커폰 기능을 켜 놓은 채 명창은 소리를 하고 송새벽은 북을 쳤을 정도라니, 그간의 노력을 짐작할 만했다.
“개인적으로 판소리로 취미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배운 뒤로 정신이 건강해진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되게 매력 있어요. 처음에는 딱딱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그 뜻과 의미를 알고 나니 구구절절하고 때로는 표현도 거침없이 하더라고요. 시원시원하게 표현하는 그런 부분들이 좋았어요. 그 옛날 어르신들도 욕망이나 애환이 더 심하면 심하지 덜어하지는 않았구나 싶기도 하고요. 굉장히 금기시 됐던 시대잖아요. 그럴 수록 한 모퉁이에서는 더 표출하려 했던 게 느껴지더라고요.”
이런 모습들을 통해 송새벽은 ‘우리의 피’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됐다. 얼, 한 등이 다 피를 통해 대물림 되는 느낌이었다. 대중들에게 어렵고 딱딱하게 생각되는 국악이지만 사실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됐다.
‘송새북’은 물론 영화 속에서 시원시원하게 뻗어나가는 소리로도 눈길을 모았던 송새벽은 북과 소리 외에도 대사의 뉘앙스에 집중했다. 소리를 하는 사람 특유의 뉘앙스를 포착, 이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는 대사의 뉘앙스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소리 하시는 분들의 말투라고 해야 하나요? 화술 같은 것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더라고요. 말을 할 때도 소리를 하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대사를 할 때 그런 부분을 염두에 뒀어요.”
극 중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소리를 하고 있는 만큼 모든 캐릭터들에게 소리꾼의 뉘앙스가 중요했겠지만 특히 송새벽이 연기한 김세종에게는 더욱 중요했다. 극 중 유일하게 여성 소리꾼을 양성하는 과정에 대해 현실적 관점으로 쓴소리를 하는 인물이다. 여기에 해학과 풍자도 녹아 있는 인물인 만큼 ‘소리를 하는 것 같은’ 대사처리가 중요했다.
“감독님이 풍자적인 부분을 많이 원하셨어요. 사실 그런 것들이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쉽게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요. 감독님이 풍자적인 것들을 고민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대사의 느낌도 그러지 않았나 싶어요.”
소리꾼, 북 고수, 소리 선생이 돼 프로다운 모습을 보였던 송새벽의 카리스마를 무너뜨리는 인물들도 있다. 김세종과 함께 일명 동리정사 3인방 이라 불리는 칠성(이동휘), 용복(안재홍)이 그 주인공. 세 사람이 ‘도리화가’의 웃음을 책임지는데, 이들의 케미스트리는 연습실에서 판소리를 연습했을 때부터 빛을 발했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동휘, 재홍 씨에 대해 잘 몰랐어요. 재홍 씨는 ‘족구왕’ 개봉 전이었고 동휘 씨도 다른 영화나 드라마 전이었거든요. 그래서 ‘잘 하는 후배들인가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족구왕’을 보고, 동휘 씨가 나온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난 후 더 ‘잘하는 친구들이구나’라고 생각했죠. (웃음). 몇 시간 씩 연습해 고되고 힘들 텐데 우린 끝나면 집에 잘 안 갔어요. 사실 제가 잘 안 보낸 것도 있어요. 밥도 먹고, 막걸리도 한 잔 하고. 그만큼 처음부터 죽이 잘 맞았죠.”
이 세 사람 덕분에 ‘도리화가’는 진중하지만 마냥 무겁지만은 않은 영화, 블록버스터처럼 스펙터클하지 않지만 유머와 감동 모두를 지닌 영화로 완성됐다.
“‘도리화가’는 흙냄새가 나는 영화인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에 대해 관객 분들이 공감을 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배우 송새벽.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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