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김종국 기자] "축구가 잘될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서울의 수비수 이웅희는 축구인생 첫 우승을 프로에서 경험했다. 지난 2014시즌을 앞두고 대전에서 서울로 이적한 이웅희는 이적 첫 해부터 서울의 주축 선수 중 한명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에는 서울의 FA컵 우승 주역으로 활약하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다.
이웅희는 유소년 시절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100m를 11초대에 주파하는 스피드를 가지고 있지만 유소년 시절 우승 경험이나 연령별 국가대표팀과는 인연이 없었다. 지난 2011년 K리그 드래프트에선 번외 지명으로 대전 유니폼을 입어 힘들게 프로에 입성했다. 유소년 시절 두각을 나타내는 유망주들이 고등학교 시기부터 프로팀에 입단하는 것과 비교하면 배제대를 졸업한 후 K리그 무대에 입성한 이웅희의 프로데뷔는 빠른 편이 아니었다. 이웅희는 연령별 각급 대표팀 경력이 없다. 프로무대에는 청소년 시절 화려한 경력을 갖춘 선수들이 수없이 많지만 이웅희는 꾸준히 진가를 드러내며 경쟁력을 쌓아 나갔다.
프로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며 자신의 선수 생활 중 가장 화려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웅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올 시즌을 마치고 상무에 입대하는 이웅희는 "올해를 끝으로 군대를 가는데 대전에서부터 개인적으로 응원해 주신 분들이 계신다. 군대에 간다고 해서 축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제대하고 나왔을 때 좋은 모습으로 좀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만났으면 좋겠다"며 자신을 지켜봐 준 팬들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다음은 이웅희와의 일문일답.
-축구를 시작한 계기는.
"아버지가 운동선수 출신이다. 사이클 국가대표팀 선수였다. 3형제인데 집에선 체구도 좋고 성격도 좋은 동생이 운동을 하게했다. 내가 한때 축구에 빠져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시켜달라고 했다. 내발로 먼저 시작했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됐다."
-유소년시절 장점이나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 부문은.
"나는 축구에 있어 기술에선 소질이 없었다. 어린 시절 다른 선수들보다 빨랐고 어렸을 때는 그 점이 장점이었다."
-축구를 계속하면서 주위에 각급 청소년대표팀 경력이 있는 동료들도 있었을 텐데 어렸을 때부터 주목받은 선수들과의 경쟁에 대한 조급함은 없었나.
"프로 시작은 대전에서 했다. 서울에서도 그렇지만 대전에서도 대표팀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 많았다. 나는 대표팀 경력이 없었다. 내가 가능성이 있었다면 그 선수들을 보고 부럽고 욕심이 있었겠지만 나는 내가 잘 알고 있다. 부족한 점을 내가 알고 있다. 동료들의 각급 대표팀 경력이 크게 부럽지는 않았다. 다른 애들이라고 생각했다."
-유소년 시절 각급 대표팀에서 활약하며 주목받았지만 프로에서 살아남지 못한 선수들이 많다. 반면 대표팀 경험이 많지 않지만 프로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선수들도 있다. 그에 대한 생각은.
"어렸을 때 주목을 받고 고등학교와 대학교때 주목받았던 선수들은 프로에 와서 안되고 힘들 때 '나는 고등학교 때 이런 선수였는데'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감에 대한 상실이 크면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대표팀 경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프로에 들어와서도 그렇고 그런 것에 대한 욕심보단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 때 주목받았던 선수들은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하면 '나는 이런 선수였는데'라는 생각을 한다. 힘든 상황에선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해결하려 해야 한다. 학원축구에선 선생님들이 이름 있는 선수들을 끌고 가려고 한다. 하지만 프로는 냉정하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느낀 점도 있다. 안 좋은 상황이 발생하거나 내가 꾸중을 듣거나 질타를 받으면 항상 그런 지적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 '내가 누구였는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그런 상황들이 발생하면 받아들이고 배우려고 했다. 그런 점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지금도 그렇다. 프로에 처음 왔을 때보다 지금 더 받아들이려 한다. 좋은 선수들이 옆에서 같이 하고 있고 좋은 선생님들과 함께하고 있다. 프로에 와서 생각해보면 축구가 너무 좋아서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축구를 시작하면서 어떤 목표로 시작하게 됐나.
"어렸을 때는 뚜렷한 목표는 없었다. 그냥 축구가 좋았다. 지금 되돌아보면 초등학교 때 (국가대표나) 무언가가 된다는 꿈을 가지기 보단 축구가 좋았다. 그러다보니 축구부가 있는 중학교에도 진학하게 됐다. 축구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좋아했다."
-프로무대에 어떻게 입성하게 됐나.
"일찍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들이나 노출이 잘 되는 수도권에 있는 팀의 선수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프로에 가기도 하고 일찍 프로에 간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수도권이 아니고 축구로 성적을 내는 팀도 아니었다. 드래프트 번외지명에서 거의 마지막에 선택됐다. 그렇게 해서 프로에 오게 됐다. 인정을 받고 프로에 온 것은 아니었다."
-프로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했을 것 같은데.
"처음 팀에 합류하고 빛이 안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마 그런 느낌이었다.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정해져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있었다. 항상 내가 경기에 뛰게 되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다는 자존심과 자신감은 있었다. 자신감은 있었지만 힘들 것 같기도 했다. 경기 출전과 관계없이 운동은 정말 열심히 했다. 경기는 못 뛰었지만 컨디션은 항상 좋았고 항상 준비를 하고 있었다."
-프로에서 어떻게 기회를 잡게 됐나.
"대전에서 왕선재 감독님이 계실 때 경기에 자주 투입되지 못했지만 꾸준히 엔트리에 포함됐다. 그때 감사했다. 컵대회 같은 경우에는 한 번씩 출전하기도 했다. 감독님이 '좋게 봐주셨구나'하고 생각했다. 번외 지명이었지만 1순위, 2순위, 3순위로 온 선수들보다 경기에 많이 출전했다. 여름에 유상철 감독님이 새로 오셨는데 나를 기용해 주셨다. 운이 좋았다.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대전에서 감독님이 3-4명 바뀌었는데 나를 좋게 봐주신 것 같다. 기회도 잘 잡았지만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서울 이적 후 어떻게 적응했나.
"이곳에서 느낀 것은 선수 개개인의 프라이드가 강한 것이었다. 경력이 화려한 선수들이 즐비했다. 강팀이어서 선수들을 풀어주고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감독님께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엄격하셨다. 선수들의 멘탈이 강한 것 같았다. 골을 먹어도 이길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처음에 왔을 때 (고)요한이나 (김)주영이 같은 또래 선수들이 잘해줘서 적응을 잘 할 수 있었다. 경기에 나서면 내 옆에 있는 파트너가 (차)두리형이었다. 많이 이야기하고 많이 이뻐해 주셨고 경기장에서 호흡도 잘 맞았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선수들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먼저 다가와서 이야기해줬고 형들이 가족 같은 분위를 만들었다. 이런 팀은 흔하지 않을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하면서 대전을 벗어난 것은 처음이었다. 주장이었던 (김)진규형이나 선배들이 분위기를 잘 만들어줬다."
-대전과 서울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데 있어 차이점은.
"대전에 처음 입단했을 때 선수들이 축구를 너무 잘한다고 느꼈다. 모든 선수들이 그랬고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2군 선수들도 축구를 너무 잘했다. 참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축구를 잘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다. 고민과 연구를 많이 했다. 나는 수비수다. 공격수나 미드필더였다면 축구를 진짜 잘해야 했을 것이다.
대전에서도 그랬지만 서울에 와서 보니 이곳의 선수들은 정말 축구를 잘했다. 그런 선수들 사이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 선수들과 똑같이 하려했다면 벌써 그만두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떤 점을 노력 했나.
"감독님이 자주하는 이야기가 있다. 11명이 모두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주인공도 필요하지만 뒤에서 묵묵히 해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축구는 팀 경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부문에 적합한 선수다. 튀거나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런 쪽에 포커스를 맞추는 노력을 했다."
-축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기억에 남는 것은 최근 우승을 한 것이다. 우승을 축구를 하면서 처음 경험했다. 그 동안 대회를 많이 나갔지만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첫 우승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뭉클했다. 프로에서 활약하는 동료들도 '프로에서 우승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했다. 지난해 FA컵 결승에 진출했고 올해도 결승에 올라갔었다.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운도 좋았다고 생각하고 너무 기뻤다. 좋은 팀의 선수로 들어가서 경기를 뛰며 우승하는 것은 힘든 일인데 너무 기뻤다."
-프로에서의 목표와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35살 때까지는 축구를 하고 싶다. 웬만한 축구 선수는 국가대표가 꿈이고 해외진출이 꿈일 수도 있지만 나는 (상무 입대로) 잠깐 멈춰야 하는 상황이다. 부상 없이 내가 생각하는 나이까지 꾸준하게 경기력을 보여주고 싶다. 축구를 하면서 화려하고 주목받지는 않지만 팀에 필요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나는 축구가 잘될 때 가장 행복하고 안 될 때가 가장 불행하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느 선에서 멈추게 된다. 돈이나 벌이가 목적이면 한계가 드러난다. 세상 어떤 일보다 축구가 잘되고 팀이 이길 때 가장 행복했다. 축구에 대한 그런 감정이 있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웅희의 FC서울 경기장면. 사진 = 마이데일리 DB]
김종국 기자 calcio@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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