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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얼마 남지 않은 올해가 지나면 어느새 서른살이다. 교복을 입은 채 귀엽게 미소 짓고, 큰 눈망울에서 눈물을 떨어뜨리던 10대 소녀는 20대가 되자 연기에 더 목말라 했다. 뒤늦게 오춘기를 겪으며 부침의 시간도 겪고, 나름의 해답도 얻으면서 성장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앞으로도 우리가 좋아할 그녀, 배우 문근영은 그렇게 찬란한 서른을 기다리고 있다.
문근영은 최근 종영된 SBS 수목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극본 도현정 연출 이용석, 이하 '마을')을 마지막으로 20대의 작품 활동을 마무리 했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었고, 많은 것을 얻었다. 만족스러운 20대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어린 나이부터 연기를 시작해 어느덧 데뷔 17년차. 연기적으로 이미 대중에게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났지만 아직도 문근영은 연기에 대해선 "아직은 만족 못한다"고 고백했다. 단순히 연기 경력만으로 자신에게 만족하기엔 아직 남아있는 연기 인생이 더 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내가 이만큼 연기를 했으니까가 아니라 나이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이제 막 30대잖아요. 이제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많아진 나이에요. 사실은 20대 여배우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정말 국한돼 있었어요. 30대가 되면 더 많아질 수 있고, 할 수 있는 역할도 많아지기 때문에 절대 내 연기에 대해 만족하거나 이쯤 왔다고 생각 안해요. 다만 연기적인 측면에서 딜레마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하고 있죠."
문근영은 신중했다. 30대를 앞두고 연기에 대해 더 진중해졌다. 딜레마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나도 느끼는게 현장에 갔을 때 이 시스템이 이제 너무 편하다. 연기도 편하고 어려운 것도 없고 모르는 것도 없다"며 "어떻게 찍는지도 알고,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는지도 예전처럼 고민스럽진 않다. 근데 거기에 빠지면 안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딜레마에 빠지지 않으려고 해요. 이제 다 아니까 편해지는 부분들을 조금 조심하려고 하죠. 그런 생각들 때문에 자꾸 작품 선택을 할 때도 나한테 자극이 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연기적인 측면이 될 수도 있고, 감독님이 될 수도 있는 거고, 작가님, 작품, 상대 배우일 수도 있는 거예요. 그래서 더 저한테 계속 자극이 될 수 있는 여지들이 있는 작품이나 그런 캐릭터들을 자꾸 하고싶어 하는 것 같아요."
문근영은 2008년 21세 어린 나이로 SBS 최연소 연기대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은 일찌감치 인정 받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그는 "운이 좋아 받았다. 상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지만 욕심을 부리기도 전에 너무 많은 상을 주셨다"며 웃었다. 자신이 잘 해서 줬다기보다 여러가지 여건이 자신이 받도록 했다는 것. 여전히 자신의 연기에 대해선 겸손하다. "한 번 더 받으면 그 땐 인정할 것"이라며 가능성에 더 무게를 뒀다.
스물아홉, 흔히들 아홉수라 한다. 문근영에게 아홉수는 어땠을까. 문근영은 "아홉수라서 힘들었다기 보다 근 몇년 동안 '딜레마가 있구나'라는 거를 깨달았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좀 고민이 많았다"고 운을 뗐다.
"'내가 계속 연기를 해도 되는건가?', '뭘 위해서 계속 해야 되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기도 했어요. 사실 전 좀 너무 이른 나이에 뭔가를 이뤄버렸잖아요. 인지도라는 것도 어릴 때 벌써 얻어 버렸고, 큰 상도 진짜 많이 받았고, 연기 잘 한다는 소리도 그래도 곧잘 들었던 것 같고.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 허해지더라고요. 난 이제 뭘 위해서 연기를 해야 되지? 그런 고민들을 근 몇년 간 했어요. 그런데 그걸되려 아홉수의 시점에서 찾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제 30대가 기대돼요."
그렇다면 아홉수 시점에서 찾은 것은 무엇일까. 그가 고민 끝에 얻은 답변은 결국 '더 잘 하는 배우'였다. 늘 새로운 마음으로 연기할 수 있는 작품과 환경을 만나는 배우, 그로 인해 자극을 받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더 잘 하는 배우다. 때문에 역할의 크기나 비중에 대해서도 더 연연해 하지 않고, 연기 본질적인 것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됐다.
"30대가 된다는 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절 어리게 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죠.(웃음) '국민 여동생'이라고 불릴 때는 그 의미를 잘 몰랐었어요. 근데 어쨌든 그 뒤에도 수많은 '국민 여동생'이 생겼고, 전 이제는 '국민 여동생'에서도 많이 벗어났어요. 근데 '국민'이라는 단어가 붙을 수 있다는 게 어마어마하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어르신들도 제 이름 석자를 알고 있다는 건 굉장히 놀라운 일이죠."
'국민 여동생' 수식어를 얻을 정도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분명 아역부터 해왔던 연기 생활은 순탄치 않았을 터. 그럼에도 문근영은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죠"라며 미소 지었다.
"후회한다고 다시 돌릴 수도 없는 거잖아요. 근데 저는 오히려 그렇게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의 저한테 있는 것들이 쌓이고 얻은 게 있는 것 같아요. 뭔가 얻은 게 더 많다고 생각하니까 저는 아역부터 한 게 잘 했다는 생각을 해요. 근데 사실 지금 아역부터 시작하고 있는 친구들한테는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꼭 지금부터 시작하고 그 과정을 겪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 시기가 지났으니까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거지만.."
자신이 살아낸 인생이기에 후회는 없다. 그러나 문근영은 그로 인해 다른 인생을 살아온 자신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연기를 해왔기 때문에 자신에게 엄격했고, 그래서 더 자신을 가두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봤을 때 저한테 좀 엄격한 편인 것 같아요. 늘 엄청 잘 하려고 하죠. 옆에서 누가 잘 한다고 해도 내가 인정할 수 없으면 못한 거예요. 그러니 절 인정할 때가 별로 없는 거죠. 누가 옆에서 '잘한다' 해주면 오히려 그 사람을 의심해요. '저 사람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야. 아닐텐데..'"(웃음)
뒤늦게 오춘기도 왔었다. 늘 정해진 틀 안에서 살고 이미 '국민 여동생'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가둬놓은 틀이 있었다. 틀 안에서 살다 보니 오히려 그게 답답한 줄도 몰랐다. 일탈된 삶을 애초에 꿈꾸지 않았고, 이미 틀 안이 익숙했기 때문에 부담감이나 스트레스는 없었다. 그러나 문근영은 이제 조금씩 틀을 깨기 시작했다.
"틀 안이 익숙했는데 사람이 욕구가 있고 욕망이 있고, 뭔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있잖아요. 그 한계점이 왔을 때는 이 틀이 굉장히 답답하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바깥 생활을 경험해본적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해도 된다고 느낀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다 '1박 2일'에 출연하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나도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도 되는구나', '나도 이렇게 사람들과 여행도 다니고 뭔가 해도 되는구나' 그 때 처음 안 거예요. 전에는 '이래도 되나? 안되겠지'라는 생각을 반복해서 고민했었거든요. 이제 좀 자극 받을 수 있는 기회들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쉬지 않고 일하고 싶어요."
이제 막 틀을 깬 문근영의 30대는 어떨까. 문근영은 '다양함'을 강조했다. "첫번째는 다양한 연기나 장르를 해보고 싶고 두번째는 좋은 감독, 좋은 배우, 좋은 대본을 만나고 싶다. 그건 누구나 다 바라는 것일테니까 내가 좀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세번째는 진한 이야기기들을 하고싶다. 진한 멜로가 될 수도 있는 거고 정말 진득한 얘기, 사람 냄새가 나는 드라마, 영화, 연극을 하고싶다. 기회가 되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연출도 하고싶다. 연출가 문근영을 꿈꿔 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문근영의 사랑에 대해 물었다. "연애를 많이 못해봤다"고 입을 연 문근영은 "사람마다 다르다. 많은걸 배우고 하나씩 배워가는 사람이 있다면 작은걸로도 깨우치려는 사람이 있다. 나는 많은 연애를 해보진 않아도 작은걸로 깨우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30대가 돼도 여전히 연애를 많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고 털어놨다.
"이왕이면 한방에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고 싶어요.(웃음) 그래서 당연히 인격을 보게 돼요. 연애는 곧 결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제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결혼이라는 거에 특별한 의미를 두진 않아요. 다만 내 남은 인생을 같이 손잡고 결혼할 사람을 약속하는게 결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남은인생, 그 사람의 인생이든 나의 인생이든 그게 우리의 인생이 돼서 같이 걸어갈 수 있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
문근영의 이야기에선 확실히 본인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또 많은 것들을 깨달으며 살아 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스스로에게 집요함도 있단다.
"나에 대해서 끊임 없이 질문하고 나를 알려고 하는 것도 있어요. 내 생각에 대해서도 파악하려고 하는 것도 있고, 일을 하면서 더 그런거일수도 있죠. 워낙 보여준 시선이나 바라본 이미지도 있잖아요. 그런 게 강하면 강할 수록 내가 나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잃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 더 잘 알려고 노력해요."
마지막으로 29살 문근영에게 19살의 문근영, 39살의 문근영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문근영은 그간의 인생을 돌아보며 진솔하게 답했다.
"19살 문근영에게 하고싶은 말은 '그렇게 열심히 안해도돼'라고 얘기하고 싶ㅇ요. 그 때는 정말 정말 열심히, 바늘을 찌를 틈도 없이 너무 열심히, 너무나 세상을 곱고 예쁘게만 바라보고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생각이 안 드는게 한창 방황하던 시기에 생각해보니 그 때의 내가 너무 짜증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억울한 거예요. '왜 나는 그 때 그렇게 진짜 내 모든걸 쏟아서 열심히 살았지? 그랬는데도 지금 나는 왜 이러고 있지?' 이런 생각이 든적이 있어요. 지금은 또 생각이 바뀌긴 했는데 열아홉살 저한테 '고생했다'고 안아주고 싶어요. '그렇게 열심히 안해도돼. 애쓰지 않아도돼' 말해주고 싶은데 이미 지나온 시간이네요.(웃음) 서른아홉 문근영에게는 '만족하니?'라고 묻고싶어요."
[배우 문근영. 사진 = 나무엑터스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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