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그건 내가 뭐든 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마지막 대사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갖게 된 편견과 '안 될거야'라고 생각하던 오만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하 '한밤개')은 배우 김수로의 14번째 프로젝트 작품으로 자폐아 소년 크리스토퍼가 이웃집 개가 살해당한 것을 발견하고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닫힌 세계를 벗어나 용감하게 세상 밖으로 발을 디디며 벌어지는 소년의 예측불허 성장담을 다룬 작품이다.
마크 헤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2013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돼 로런스올리비에어워드 7관왕을 휩쓸었다. 지난해 6월 토니어워드 5관왕에도 오르며 영미권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한밤개'는 살해 당한 개와 개를 발견한 크리스토퍼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자폐아인 크리스토퍼는 낯선 말투로 자신이 본 사실만 전하지만 주위에서는 크리스토퍼를 의심한다. 물론 크리스토퍼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은 금세 밝혀지지만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리스토퍼의 이야기에 그닥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크리스토퍼의 언어는 낯설다. 분명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임에도 방대한 양의 문장을 이어 말하는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모두가 크리스토퍼의 말을 무시하진 않는다. 귀 기울이려 하고 그를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게 갖고 있는 편견은 결국 그를 이해하지 않는 결론을 맺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만함에 젖어 크리스토퍼의 말을 이해하지 않을 때 크리스토퍼는 묵묵히 자신 안에서 자신이 만나려는 세상을 만난다. 수학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크리스토퍼가 푸는 A레벨 수학 시험 만큼 그의 모든 것은 복잡하지만 그 자체로의 아름다움이 있다. 크리스토퍼는 복잡함 속에서 자신의 길을 하나씩 찾아간다. 사람들은 그 복잡함을 보지 않으려 할 뿐이다.
크리스토퍼는 개를 죽인 범인을 찾으려 한다. 일부는 범인을 찾는 그의 모습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당연히 찾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괜한 것에 신경 쓰지 않길 바라고, 그를 존중한다면서도 그가 하려는 일은 의미 없다는 듯 행동하기 일쑤다. 그저 진실을 알려는 것 뿐인데 이미 그의 모든 행동을 마음대로 판단해 버린다. 우습게도 그러면서 크리스토퍼에게 그 어떤 것이든 도움을 주려 한다. 실제로는 그닥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말이다.
크리스토퍼는 도움 없이 자신의 일을 해나간다. 엄마가 죽었다고 말한 아버지의 거짓말을 알게 되고, 개를 죽인 범인도 찾는다. 본인의 생각대로 움직일 줄도 안다. 그 움직임을 위해 새로운 도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모두가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일들을 크리스토퍼는 복잡하게, 하지만 차근차근 해결해 나간다.
그렇게 어른들의 편견을 딛고 크리스토퍼는 자신이 하려 했던 모든 것들을 이룬다. 자신이 한 일들을 읊은 뒤 크리스토퍼는 "그건 내가 뭐든 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라고 묻는다. 그 누구도 답하지 않지만 그 순간 크리스토퍼가 성장했고, 성장하는 크리스토퍼에게 우린 참 오만하게도 편견을 가졌다는 것이 머리를 탁 친다. 크리스토퍼가 묻기 전 무의식 속에 당연히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크리스토퍼가 해낸 후 물으니 내 자신의 오만함이 보이는 것이다.
'한밤개'는 이 대사를 한국에 맞게 바꿨다. 대사는 같지만 원작에서는 평서문인 것이 한국에서는 의문문이다. "그건 내가 뭐든 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라고 묻는다. 크리스토퍼에게 그랬듯 장애를 가진 이들, 혹은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유독 어떤 시선을 보내는 한국 사람들의 오만함을 조용히 지적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더 크리스토퍼의 물음에 눈물이 핑 돌 정도의 강한 울림이 있다.
'한밤개'는 무대 연출을 통해 크리스토퍼의 현실을 더 와닿게 만든다. 예측할 수 없는 무대 연출은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 적응해 나가는 크리스토퍼의 현실을 표현하는 동시에 복잡한 크리스토퍼의 머릿속을 표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기계적인 효과는 인물의 감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LED 조명, 3D맵핑 기술, 10대의 프로젝터 등의 화려한 영상은 대극장을 꽉 채운다. 인터렉티브 미디어를 시도하며 하이테크 요소를 배우들과 어우러지게 해 큰 무대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 무대에 소품이 없는 편이지만 배우들이 스스로 소품이 되고 배경이 되면서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무대 예술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이들 역시 무대에서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예측할 수 없는 무대 연출과 화려한 영상미는 마지막 크리스토퍼의 소개로 더 빛을 발한다. 무대 뒤에서 무대를 더 밝게 빛나게 해주는 모든 이들을 언급하며 우리가 몰랐던 부분을 항상 바라보게 하는 크리스토퍼의 모습이 더 감명 깊게 다가온다.
'한밤개'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크리스토퍼 역 배우들. 단순히 연기 변신, 혹은 도전을 떠나 대극장에서도 감성적으로 섬세한 연출을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방대한 대사를 소화해내는 것도 놀랍지만 그 안에서 내면을 조용히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전성우, 윤나무, 슈퍼주니어 려욱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크리스토퍼를 표현해낸다.
크리스토퍼가 극중 인물들과 손을 맞대고 서로의 감성을 주고 받는 순간 '한밤개'는 관객들과도 그 감성을 주고 받는다. 크리스토퍼가 전하는 이야기의 진짜 뜻을 알게 되고, 그가 묻는 질문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이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공연 시간 165분. 2016년 1월 31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 문의 1577-3363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공연 이미지.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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