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배우 정석원을 ‘백지영의 남자’로만 기억하고 있는 관객이라면 영화 ‘대호’를 꼭 봐야할 듯 싶다. 스크린 속 그의 모습이 한층 물이 올랐다. 눈빛으로 말하고 있는 정석원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을 것.
‘대호’는 일제강점기, 더 이상 총을 들지 않으려는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과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정석원이 조선인 출신이라는 콤플렉스를 지닌 일본군 장교 류 역을 맡았다.
정석원은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연기한 류에 대해 끊임없이 출세욕과 욕망에 휩싸여 있고, 지긋지긋한 조선을 떠나 만주로 가고 싶어 하는 인물이라 설명했다. 피해의식과 조국에 대한 내적갈등에 휩싸여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고.
정석원은 이런 복잡 미묘한 캐릭터를 그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비열하고 어떻게 보면 안쓰럽기도 한 인물로 완성해 냈다. 류의 전사가 편집되기는 했지만, 과거 이야기가 없음에도 이런 류의 심경을 진하게 전달한다.
“영화에 나온 류 자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업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히 있어요. 류의 업, 업보에 대한 것들이 충분히 설명됐다고 생각돼요.”
이런 정석원은 자신이 ‘대호’의 일원이 됐다는 사실을 겸손히 받아들였다. 운이 좋았다는 것. 이런 자세는 촬영 현장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호’가 자신에게 많은 것들을 일깨워준 작품이라 말한 정석원은 영화를 촬영하고, 개봉을 거쳐, 인터뷰를 하고 있는 현재 까지도 설레고 좋다는 솔직한 마음을 밝혔다.
“일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을 하게 됐어요. 너무 과분하게도, 전 (어린 시절부터) 연기자를 꿈꿔온 사람이 아니었는데 운이 좋게 여기까지 왔어요. 여러 선배님들의 가르침을 어깨너머로 몸소 부딪히고 느끼고 귀담아 들으면서 제가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배우에 대한 생각도 일차원적으로 접근하기 보다 더 파고 들고, 받아들이려 하게 됐고요. 제 입으로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요즘에는 힘들다는 이야기도 하게 됐어요. 배우의 일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겨내려고 발버둥치고 있고, 발전적으로 나아가려 하는 그런 고민들을 하고 있어요.”
관객과 평단의 극찬을 받는 배우들이라 해도 잘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항상 배우로서 자신의 부족함을 토로하고 ‘연기가 아닌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을 거듭한다. 정석원 또한 이런 과정에 있다. 스스로 한 없이 부족하다 말하는 그는 진짜 배우, 관객들에게 감동을 안기는 배우가 되는 길을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가는 중이다.
“전에 ‘봄날이 간다’는 연극을 한 편 했어요. 글자 하나도 놓치고 가는 법이 없을 정도로 서로 의논을 하며 몇 개월을 지냈죠.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몰랐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게 맞는 방법들이더라고요. 연극을 하면서 많을 것들을 느꼈어요. 배우라는 직업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고요. 제가 배우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 작업이 굉장히 귀한 것이구나’, ‘순간순간이 소중한 것이구나’를 느끼게 됐어요.”
겸손과 반성의 아이콘이라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순간순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이야기하던 정석원은 스태프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자신의 촬영이 없을 때도 촬영 현장을 지키며 선배들의 연기를 지켜보고 스태프와 호흡한 덕에 그늘의 노고를 더 가까이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
“스태프의 열정과 생각, 그들이 계속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걸 몸소 느끼게 됐어요. 그리고 절 반성하게 됐죠. 배우, 스태프들과 같이 호흡하고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어요. 그리고 함께 하는 작업이 이런 것이구나를 새삼 느끼게 됐죠. ‘대호’로 얻은 게 많은 것 같아요.”
정석원은 배우로서 자신을 갈고 닦는 중이다. 스턴트맨으로 활동하다 운명에 이끌리듯 배우로 활동하게 된 그는 이제 깊은 눈빛을 지닌, 배우 인생 2막에 접어 들었다. 일부러 과장된 연기를 하지 않아도 관객들에게 깊은 감정을 전달하는 배우 정석원. 그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배우 정석원.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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