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축구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영국의 축구전술전문가 조나단 윌슨은 “골을 넣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겼기 때문에 골을 넣은 것이다”라고 했다. 경기에서 승리했다는 건 의도한대로 플레이를 했다는 것이며 이는 자신들의 강점은 극대화하고 상대의 강점은 최소화시켰다는 것을 말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스토크 시티의 경기도 다르지 않았다. 멤피스 데파이의 예능급 헤딩과 잭 버틀랜드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이 승패를 가른 터닝포인트였지만 그보다 더 중요했던 건 스토크시티가 더 잘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제로톱이 있었다.
#선발 명단
마크 휴즈 감독은 지난 15라운드 맨시티전과 같은 베스트11을 내보냈다. 4-3-3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보얀 크르키치가 중앙에 서고 왼쪽에는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가, 오른쪽에는 세르단 샤키리가 포진했다. 중앙에는 이브라힘 아펠라이가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고 제프 카메론과 글렌 웰란이 수비적인 위치에 섰다. 특히 센터백이 가능한 카메론은 마루앙 펠라이니의 높이를 의식한 대응처럼 보였다.
루이스 판 할 감독은 웨인 루니를 벤치에 앉혔다. 앙토니 마샬이 원톱에 섰고 데파이가 왼쪽을 맡았다. 펠라이니와 안데르 에레라의 역할은 예상과 달랐다. 펠라이니가 전진했고 에레라가 마이클 캐릭 옆에 섰다. 부상자 많은 백포(back four:4인 수비)에선 애슐리 영이 오른쪽 풀백을 맡았고 달레이 블린트가 왼쪽 풀백에 자리했다.
#38분
축구에서 승리를 위해 90분을 모두 이길 필요는 없다. 단 1분만 상대를 압도해도 골을 넣고 승리할 수 있는 게 축구다. 스토크는 39분을 지배했고 승리를 가져갔다. 전반 19분 보얀이 선제골을 넣었고 전반 26분 아르나우토비치가 쐐기골을 터트렸다. 재밌는 건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90분 전체를 볼 때 맨유는 점유율과 패스숫자에서 스토크를 앞선다. 하지만 38분으로 시간을 줄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때까지 스토크는 맨유보다 많은 패스를 시도하고 성공했다. 그리고 전반 39분이 돼서야 맨유에게 패스 숫자를 역전 당한다. 슈팅 숫자도 마찬가지다. 스토크가 전반에 시도한 8개 슈팅이 전반 38분 안에 나왔다. 이후 경기 패턴은 180도 달라졌다. 이미 두 골을 넣은 스토크는 이전보다 수비라인을 내리고 최종 수비와 공격수 사이의 간격을 좁혔다. 자연스럽게 맨유는 공을 더 많이 소유하게 됐고 스토크는 넓어진 맨유 수비 뒷공간을 여러 차례 위협했다.
#제로톱
지난 11월 29일 선덜랜드전 0-2 패배 후 휴즈 감독은 4-2-3-1의 원톱 전술에서 4-3-3의 스리톱 혹은 제로톱으로 포메이션을 수정했다. 조나단 월터스와 마메 디우프 뒤에 섰던 보얀을 스리톱의 가운데로 올리고 샤키리와 아르나우토비치가 조금 더 전진했다. 그러면서 시즌 초반 측면에 섰던 아펠라이는 가운데 ‘3’의 미드필더 지역으로 내려왔고, 웰렌 또는 마르코 판 힌켈 그리고 카메론이 짝을 이뤘다.
스토크의 스리톱은 리오넬 메시가 펄스나인(false nine) 즉, 제로톱 역할을 수행했던 2010년 바르셀로나를 연상케 한다. 물론 선수의 특징과 움직임은 다르다. 스토크는 피지컬과 스피드가 강조되는 프리미어리그에 더 적합한 조합을 선보이고 있다. 먼저 보얀은 최전방 공격수지만 후방으로 자주 내려온다. 상황에 따라선 ‘10번(공격형 미드필더)’ 같은 플레이를 보여준다. 이날 전반 35분 장면이 대표적이다. 아펠라이가 하프라인 밑까지 내려와 센터백으로부터 공을 받는다. 그러자 보얀도 아펠라이 근처까지 내려온다. 이때 웰란과 카메론이 둘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 이처럼 보얀이 내려갈 때 맨유는 혼란에 빠졌다. 포지션상 보얀의 마크맨은 센터백인 필 존스 또는 크리스 스몰링이다. 캐릭과 에레라는 전진한 웰란과 카메론을 의식하느라 보얀을 적극적으로 붙지 못했다. 결국 광활해진 공간을 확보한 보얀은 쐐도하는 아르나우토비치에게 완벽한 패스를 찔러줬다. 마무리가 좋았다면 스토크의 3번째 골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보얀은 이날 가장 많은 득점 기회를 창출(3회)한 선수였다.
축구 팬들에게 ‘보급형 즐라탄’으로 불리는 아르나우토비치의 역할도 흥미롭다. 공격 전지역에 설 수 있는 아르나우토비치도 가짜 9번처럼 움직인다. 193cm의 탄탄한 피지컬을 갖춘 아르나우토비치는 기본적으로 좌측면에 서지만 보얀이 내려가거나 샤키리가 크로스를 올릴 때는 빠르게 상대 박스 안으로 침투한다. 스토크 4-3-3에서 원톱에 가까운 선수가 바로 아르나우토비치다. 반대 쪽에선 샤키리와 오른쪽 풀백 글렌 존슨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한다. 샤키리는 스피드를 무기로 상대 측면 풀백을 유인한다. 안으로 또는 밖으로 풀백을 끌고 갈 때 존슨이 전진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휴즈 감독이 샤키리를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두는 이유다. 에릭 피터스보다 존슨이 더 공격적이기 때문이다.
#펠라이니
공중볼 싸움에서 펠라이니는 맨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9차례 공격진영 공중볼 다툼에서 펠라이니가 이긴 건 단 2번 밖에 없다. 이는 스토크의 대처가 훌륭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메론은 수비진영에서 3차례 공중볼 다툼을 모두 승리했다. 라이언 쇼크로스, 필립 볼샤이드 그리고 후반에 카메론 대신 교체로 들어온 판 힌켈도 공중볼에서 강점을 보였다. 결국 펠라이니는 공을 잡기 위해 내려올 수 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최전방의 마샬은 고립됐다.
#후반전
후반 시작과 함께 판 할은 데파이를 빼고 루니를 투입했다. 이후 어느정도 흐름을 되찾는데 성공했지만 펠라이니의 슈팅이 버틀랜드 골키퍼에 막히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했다. 휴즈 감독은 샤키리를 불러들이고 디우프를 내보내며 맨유의 전진을 역이용했다. 하지만 미끄러운 잔디 탓에 추가 득점은 아쉽게 놓쳤다. 하지만 적절한 교체로 팀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2-0 승리를 끝까지 잘 지켜냈다.
#데파이
데파이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사실상 이날 승패를 가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쁜 의미에서다. 올 시즌 데파이의 불성실한 경기 태도를 지적하는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스토크전을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경기였다. 영국 축구전설 앨런 시어러는 BBC 축구전문방송 ‘MOTD’에서 피치 위를 걸어 다니는 데파이를 다시 한 번 꼬집었다. 전반 19분 실점 장면에서 데파이는 맨유 진영 깊숙이 내려와 수비에 가담했다. 여기까진 좋다. 문제는 다음이다. 데파이는 공이 흐르는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자연스레 시간이 지체됐고 존슨의 압박에 당황한 데파이는 이해하기 힘든 다이빙 헤딩으로 ‘엑스맨’이 된다.
데파이에겐 선택권이 많은 상황이었다. 데파이 근처에는 스몰링도 있었고 블린트도 있었다. 물론 가장 안정한 건 다비드 데 헤아 골키퍼였다. 스몰링도 스토크의 압박을 의식한 탓인지 팔로 데 헤아를 가리켰다. 하지만 데파이는 몸 개그로 맨유를 멘붕에 빠트렸다. 데파이는 지난 노리치 시티전에서도 상대가 핸들링을 할 때 등을 지고 여유롭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걸어 다닌 데파이와 달리 아르나우토비치는 경기 내내 달리고 또 달렸다. 시어러도 언급한 부분이지만 아르나우토비치는 상당히 낮은 위치까지 내려와 수비를 했다. 피터스가 중앙으로 이동하는 마타를 쫓을 때 영 앞에 많은 공간이 발생했고 이는 맨유에게 좋은 찬스였다. 하지만 아르나우토비치가 수비에 적극 가담하면서 스토크는 큰 위기를 맞지 않았다. 그의 가로채기(3개)와 태클(2개)이 모두 스토크 진영에서 발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판 할
전술의 문제를 넘어섰다. 심리적으로 모든 게 무너진 맨유다. 패스 실수가 잦았고 1대1 대결에서도 스토크에 밀렸다. 첼시를 떠난 무리뉴도 끝내 고치지 못한 문제다. 판 할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듯 하다. 경기 후 판 할은 경질설에 대해 “스스로 물러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 현재로선 다가올 첼시전이 바로 그 경기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사진 = SBS SPORTS 영상 캡처]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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