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신태용 감독의 전술 실험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마지막 평가전에서도 계속됐다. 아랍에미리트(UAE)전에 가동됐던 3가지 포메이션(4-3-3/4-1-4-1/4-4-2)은 2가지(4-3-3/4-4-2)로 압축됐고 ‘홀딩(holding)’ 미드필더 박용우를 활용한 전술적인 움직임도 재차 확인됐다. 다만, 황희찬을 제외한 선수단 전체의 컨디션이 떨어져 보였고 그로인해 감독이 그리는 그림을 보여주지 못했다. 5가지 키워드로 사우디전 신태용호 전술을 복기해봤다.
#포메이션
UAE전과 마찬가지로 시작은 4-3-3이었다. 그러나 후방으로 자주 내려가는 박용우로 인해 포메이션은 시시각각 바뀌었다. 크게 3가지였다. 1)빌드업, 즉 한국이 공을 소유한 상태에선 박용우가 센터백보다 낮은 위치까지 내려와 3-4-3이 됐다. 이때 좌우 풀백(full back)이었던 이슬찬, 심상민은 하프라인 근처 혹은 그보다 높은 곳까지 전진했다. 사실상 윙백(wing back)이 됐다는 얘기다. 2)상대진영으로 높이 전진한 상태에선 박용우가 센터백보다 앞선 위치에 자리했다. 이때는 전형적인 4-3-3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국이 높은 점유율을 가져가지 못하면서 4-3-3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3)사우디가 공을 소유했을 때는 4-1-4-1이 됐다. 진성욱, 김승준이 미드필더 지역까지 내려오면서 김현 아래 4명이 일자 형태를 보였다. 그리고 이때 박용우는 센터백 사이에 있다가 상대 공격수 중 한 명이 내려가거나 공이 수비와 미드필더 지역 사이로 연결될 때 순간적으로 전진했다.
후반전에는 황희찬, 권창훈이 투입되면서 4-4-2 포메이션으로 전환됐다. 정확히 말하면 가운데 4명의 미드필더가 마름모 형태로 좁게 선 4-4-2 다이아몬드(diamond)였다. UAE전 후반과 같은 변화다. 문창진이 공격형 미드필더였고 권창훈, 이창민이 좌우에 섰다. 그리고 박용우가 홀딩 역할을 맡았다. 다이아몬드 시스템을 사용한 대부분의 팀들이 그렇듯이 이번에도 박용우가 센터백 아래까지 자주 내려왔다. 때문에 4-4-2도 한국이 공을 소유했을 때는 3-4-1-2 포메이션으로 변했다. 그러나 여전히 박용우는 빌드업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공격 전개는 이슬찬 또는 심상민이 포진한 측면을 통해 이뤄졌다. 특히 심상민의 오버래핑이 두드러졌다. 왼쪽 공격비율이 무려 55%였다.
#박용우
중요한 건 감독의 의도다. 힌트는 포메이션에 있다. 신태용은 수비형 미드필더가 후방으로 내려가고 좌우 측면 수비가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길 원했다. 이는 4-3-3과 4-4-2에서 모두 발견된 공통된 특징이다. 박용우는 백스리(back three)를 사용하는 FC서울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모두 소화한 경험이 있고, 왼쪽 수비 심상민도 윙백 시스템이 낯설지 않다. 실제로 사우디전에서 박용우는 공 터치가 가장 많았고 심상민은 크로스를 가장 많이 기록했다. 이는 시스템에 의한 현상이자 감독의 의도이기도 하다. 박용우가 후방으로 내려오면서 한국은 수비지역에서 항상 수적인 우위(3vs2)를 점했다. 이는 박용우가 대부분 자유(freedom)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상민(또는 이슬찬)도 1vs1 상황을 자주 맞이했다. 특히 4-4-2 다이아몬드 전환 후 측면에서 더 많은 공간을 확보했다. 박용우의 가세로 3명의 센터백이 배치되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수비적인 문제가 없었던 아니다. 연제민, 송주훈이 수비시에도 좌우로 넓게 서면서 둘 사이의 공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때 박용우가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박용우가 전진했을 때는 위험한 상황이 연출됐다. 후반 39분이 그랬다. 연제민이 측면 수비를 위해 이동했을 때 사우디에게 공간이 생겼다. 다행히 골대를 강타했지만 충분히 실점할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문제는 이 다음이다. 공간을 가져갔지만 빌드업과 탈압박 그리고 개인 전술에 있어서 볼 터치와 패스의 정확도가 매우 떨어졌다. 신태용 감독이 경기 내내 터치라인에서 소리를 지르고 팬들이 답답한 표정으로 사우디전을 지켜본 이유다.
#압박
한국은 적극적으로 사우디를 압박하지 않았다. 전체적인 수비라인이 낮았고 능동적으로 상대를 쫓기보다 위치를 점하고 상대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상대진영에서 공을 빼앗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압박을 통해 소유권을 재빨리 찾기보다 수비지역으로 후퇴하기 급급했다. 원인은 두 가지로 추측이 가능하다. 하나는 감독의 의도다. 콘셉트 자체를 압박보다 낮은 위치에서 공을 탈취한 뒤 수비 뒷공간을 노리는 역습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차례 한국은 사우디의 패스 실수를 틈 타 기회를 잡았다. 비록 한국 역시 패스 실수가 잦아 찬스를 살리지 못했지만 공격을 진행하는 목적은 ‘압박’보다 ‘역습’에 무게를 둔 듯 했다.
#빌드업
사실 상대 압박에서 벗어나는 탈압박이 더 문제였다. 이는 빌드업 작업과도 연결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에선 박용우가 항상 자유로운 상태였다. 그러나 공을 전달할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윙백에게 연결할 경우 1vs1 대결을 펼칠 수 있었지만 거리가 멀었다. 롱패스가 날아가는 사이 사우디는 대비에 나섰다. 결국 박용우는 중앙의 문창진, 이창민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둘은 항상 수비를 등진 상태였기 때문에 공을 다시 박용우 또는 다른 센터백에게 돌려주기 급급했다.
후반에 4-4-2 다이아몬드가 되면서 이 부분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 중앙에 1명이 더 늘어났고 윙백과의 거리도 3-4-3일때보다 좁혀졌기 때문이다. 심상민을 향한 박용우의 패스가 후반에 더 늘어간 건 우연이 아니다.
#개인전술
마지막은 선수들의 컨디션에 관한 부분이다. 개인전술은 감독의 영역 밖이다. 선수의 볼터치가 형편없거나 패스가 이상한 방향으로 향할 때 감독들이 하늘을 쳐다보는 것도 그래서다. 사우디전도 비슷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퍼스트터치가 안 됐다. 공이 전달되면 발 앞이 아닌 자신과 상대 사이에 떨어졌고 이어진 경합에서 소유권을 잃었다. 패스는 더 심각했다. 전반 17분 장면을 보자. 상대 수비 실수를 틈타 김승준이 공을 가로챘고 측면에 있던 이창민에게 공간이 생겼다. 하지만 패스가 길어지면서 허무하게 기회를 잃었다. 이러한 장면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전반 24분과 44분에도 비슷한 역습 상황에서 패스가 엉뚱한 곳으로 향하거나 부정확하게 흐르면서 기회가 무산됐다. 후반 13분 김현의 단독 찬스도 마찬가지다. 황희찬의 기막힌 패스로 사우디 수비가 무너졌고 이 경기에서 가장 좋은 기회를 맞았다. 하지만 공을 쳐 놓는 김현의 드리블과 슈팅 타이밍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물론 현재 선수단의 컨디션은 최상이 아니다. 여전히 몸을 만드는 단계에 있고 조별리그를 지나 토너먼트에 접어들 때 가장 좋은 몸 상태가 된다. 지난해 우리는 아시안컵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경기력이 좋아진 슈틸리케호를 경험했다.
[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사진 = 대한축구협회]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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