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백스리(back three:3인 수비)가 백포(back four:4인 수비)보다 반드시 수비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1명의 센터백이 많은 관점에서 좀 더 수동적인 대응인 건 사실이다. 3명의 중앙 수비수를 두는 경우는 크게 2가지다. 첫째는, 상대팀이 2명의 포워드를 사용할 때 위험 지역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다. 4-2-3-1 포메이션의 신봉자로 알려진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홋스퍼 감독조차 올 시즌 투톱을 사용한 왓포드를 상대로 3명의 센터백을 둔 바 있다. 둘째는, 약팀이 강팀을 상대할 때다. 이때는 수비 숫자를 늘리고 라인을 내리는데 중점을 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밀집수비를 쓰는 팀이 그 예다.
홈팀 카타르와의 준결승에서 신태용 감독이 꺼낸 3백은 사실 후자에 더 가까운 선택이었다. 카타르가 원톱 시스템의 4-2-3-1이었다는 점에서 3명의 센터백을 두는 건 포메이션 상성이란 측면에서 분명한 수적 낭비였다. 3백 전술의 흥망성쇠가 투톱에서 원톱으로 이동한 포워드 숫자의 변화와 관련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신태용 감독이 수비형 미드필더 박용우를 송주훈과 연제민 사이로 내린 건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카타르 홈 이점 ⓑ카타르 득점력=최다골(11득점) ⓒ한국 수비불안 등을 고려했다. 신태용은 경기 후 이렇게 말했다. “수비수인 송주훈과 연제민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좀 더 간단한 축구를 하자고 했다. 수비수 짐을 덜어주고 이기는 축구를 하고 싶었다. 물론 내가 원하는 축구는 아니었다” 그간 계속된 수비불안에도 1명의 홀딩(holding) 미드필더를 고집했던 신태용이 승리를 위해 자신의 이상을 잠시 내려놓은 것이다.
#선발 명단
요르단전에서 부상을 당했던 황희찬이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대신 김현이 최전방 공격수로 나섰고 좌우 측면에 류승우, 권창훈이 포진했다. 중앙에선 이창민, 황기욱이 짝을 이뤘고 측면 윙백으로 이슬찬, 심상민이 배치됐다. 3백에는 송주훈, 박용우, 연제민이 자리했다. 그리고 골문은 감기 몸살로 8강전을 쉬었던 골키퍼 김동준이 지켰다.
포메이션은 3-4-3으로 시작했다. 이번 대회서 신태용 감독은 매 경기 다른 전술을 사용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4-4-2 다이아몬드), 예멘(4-1-4-1), 이라크(4-2-3-1), 요르단(4-1-3-2) 그리고 카타르까지 매번 다른 전술 콘셉트를 보여줬다. 그러나 박용우를 의도적으로 센터백 위치로 내린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아예 새로운 시도는 아니었다. 이미 신태용 감독은 4-3-3 포메이션을 사용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에서 좌우 풀백을 높은 위치까지 전진시키고 박용우를 후방으로 내려 3-4-3 형태를 보여준 바 있다.
#5-4-1
보통의 3-4-3이 그렇든 수비시(공을 소유하지 않았을 때)에는 좌우 윙백(wing back)이 깊숙이 내려와 5백이 됐다. 5-4-1 전술의 특징은 수비적으로 매우 견고하다는 점이다. 수비와 미드필더 사이는 물론 센터백과 좌우 윙백 사이의 간격도 좁게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상대에게 공간을 거의 내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공격 찬스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축구는 수비 후 공격으로 나가는 작업, 즉 빌드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답답한 경기를 할 수밖에 없다. 5-4-1은 수비를 탄탄하게 유지한 뒤 좌우 윙백을 활용한 역습에 용이하지만 공격에 가담하는 속도가 더디다. 윙백이 상대 진영까지 올라가는데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이 시스템에선 포스트 플레이(post play:장신 선수에게 집중적으로 패스해 득점을 꾀하는 공격방법)에 능한 공격수가 필요하다. 전방에 위치한 공격수는 공을 소유하거나 공중볼에서 우위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동료가 올라올 시간을 벌고 세컨볼을 확보해 상대진영에서 공격작업이 가능해진다.
황희찬이 부상으로 풀타임을 뛸 수 없는 상황에서 신태용 감독이 진성욱 대신 김현을 택한 건 5-4-1 포메이션으로 인한 공격 전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상대적으로 카타르의 평균 신장이 작았던 것도 이점으로 작용했다. 190cm에 육박하는 김현은 이날 제공권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지만 중계화면에서 김현이 헤딩으로 공을 따낸 것만 20회가 넘었다. 한 경기에서 이토록 많은 공중볼을 따내는 건 쉽지 않다. 한국은 김현 덕분에 전방으로 공을 쉽게 전달하면서 5-4-1의 약점을 극복했다.
#전반전
5-4-1과 4-2-3-1이 부딪혔고 예상 가능한 흐름이 이어졌다. 한국은 전반전에 39%의 점유율 밖에 가져가지 못했다. 미드필더 숫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중앙에선 항상 2vs3이 됐고 류승우, 권창훈이 내려와도 4vs5였다. 김현을 활용해 전방으로 공을 한 번에 이동시킨 뒤 슈팅 기회를 잡았지만 결정적인 찬스는 없었다.
카타르는 측면이 날카로웠다. 특히 주장 압델카림 하산의 오버래핑을 활용한 공격 빈도가 높았다. 다만 크로스가 매우 부정확했고 지나치게 서두르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를 주도하고도 전반에 유효슈팅이 0개였던 이유다.
#후반전
후반 3분 류승우의 선제골 장면은 매우 흥미롭다. 김동준 골키퍼는 전반에 골킥 상황에서 김현을 향해 롱킥을 시도하거나 좌우로 넓게 벌린 센터백 중 한 명에게 공을 짧게 연결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대부분 카타르가 자신들의 진영으로 어느정도 내려간 상황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류승우의 골이 터지기 직전에 김동준은 카타르 선수들이 내려가기 전에 사이드에 있던 이슬찬에게 공을 재빨리 전달했다. 사실 매우 즉흥적인 행동으로 보였다. 그 순간 박용우를 포함한 3명의 센터백은 골키퍼의 롱킥을 예상한 듯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공은 이슬찬에게 향했고 한국 진영에 남았던 카타르 공격수들이 압박을 시도했다. 이슬찬은 연제민과 공을 주고받은 뒤 빠르게 앞에 있던 권창훈에게 긴 패스를 시도했고 권창훈은 논스톱으로 중앙에 있던 황기욱에게 공을 넘겼다. 이때 카타르의 수비라인이 중요하다. 미처 자신들의 진영으로 내려가지 못한 카타르 센터백은 하프라인 근처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황기욱은 곧바로 전방으로 롱킥을 날렸다. 그 순간 김현이 측면으로 빠지며 미끼 역할을 했고 동시에 류승우가 뒷공간으로 달렸다. 그리고 류승우는 상대 골키퍼가 나온 것을 보고 빠른 슈팅으로 빈 골문에 공을 차 넣었다. 카타르는 전반에 이처럼 넓은 공간을 거의 내주지 않았다. 많은 시간 공을 소유했고 한국이 빌드업을 할 때 압박보다는 라인을 유지하고 기다리는 수비를 했다. 그러나 중계를 했던 이영표 KBS 해설위원조차 “후방에서 공을 돌리는 건 좋지 않다”고 했던 상황이 결과적으로 류승우의 선제골을 이끌었다.
이후 한국은 황기욱을 빼고 문창진을 투입하면서 박용우를 전진시켰다. 자연스레 3백도 4백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박용우가 자주 후방으로 내려오면서 3백과 4백을 수시로 오갔다.
후반 33분 또 한 번 변수가 발생했다. 류승우가 부상으로 나간 사이 카타르의 동점골이 터졌다. 측면에 1명이 부족해지면서 카타르의 크로스가 잇따라 한국 문전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아흐메드 알라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득점에 성공했다. 4백 전환 후 미드필더 지역에 있던 박용우가 크로스 상황에서 페널티박스 안으로 내려왔지만 맨마킹에서 혼란이 생겼다.
#황희찬
1-1 균형을 깨트린 건 황희찬이다. 교체 없이 경기를 한 카타르는 후반 중반이 지나면서 체력적인 문제를 드러냈고 공격과 수비가 분리되기 시작했다. 후반 43분 권창훈의 결승골 장면을 복기해보자. 카타르 수비는 5명이었고 한국 공격은 6명이었다. 카타르 공격수들의 수비가담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체력적으로 앞선 황희찬에겐 드넓은 공간이 생겼다. 후반 추가시간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장기인 드리블까지 빛나면서 문창진의 쐐기골이 터졌고 경기는 한국의 승리로 종료됐다.
[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사진 = 대한축구협회]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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