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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솔직히 말하면 치기어림이 있었어요. 윤동주 시인을 워낙 좋아했고, 제가 연기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기쁨과 흥분의 마음으로 선택했죠. 그런데 선택 다음부터가 문제였어요. 기쁨과 흥분이 걱정과 부담이 됐거든요. 솔직히 도망갈 생각도 했어요. 그 정도로 많은 부담이 됐어요.”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를 연기하며 부담을 이겨냈다기 보다 안고 갔다는 강하늘은 윤동주 그 자체가 돼 스크린에 섰다. 위대한 시인이 아닌 한 명의 청춘으로서의 고뇌와 부끄러움 등을 진하게 녹여내며 윤동주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은 한 사람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누구나 알만한, 그것도 사랑해 마지않는 그의 이름값은 너무나 컸다.
“제가 너무 오지랖 넓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제가 연기한 이 장면이 누구나 볼 수 있는, 인생에서 절대 바꿀 수 없는 장면이 된다는 데서 오는 부담감이 심했어요. 그런데 그 작품이 ‘동주’였고, 제가 연기한 분이 윤동주 시인님이었죠. 촬영을 한 것도, 해야 할 것도 걱정이 됐어요. 박정민 형도, 저도 잠을 제대로 이룬 날의 거의 없었죠.”
시인 윤동주를 연기하는 것 외 언어적 부담도 있었다. 영화 ‘동주’는 윤동주와 그의 평생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송몽규의 청춘을 담아낸 영화. 이들은 어린 시절을 북간도에서 보내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여기에 독립운동 중 수감돼 세상을 떠나는 만큼 북간도 사투리, 일어 연기는 필수였다. 게다가 일어 대사가 전체의 반 가량을 차지하는데다 어려운 단어가 많았던 만큼 한국어처럼 체득하는 게 필수였다.
“만화, 애니메이션 같은 일본 문화를 좋아해 일본어 자체가 생소하지는 않았어요. 어느 정도 익힌 후 (재일교포인) 고등형사 역의 김인우 선배님에게 코칭을 받고 억양을 연습했죠. 외우는 게 진짜 어려웠던 것 같아요. 표현을 하는 게 중요했죠. 단어와 단어 사이, 언제 숨을 쉬면서 말해야 하는지까지 생각하고 외워야 했어요. 부담감에 쫓기니까 다 되더라고요. 잠도 안 자고 외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강하늘은 자신이 연기한 윤동주에 어떠한 색을 부여하려 노력하지는 않았다. 혹자는 윤동주가 저항시인이라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패배주의라 평하기도 했지만 강하늘에게 중요한 건 윤동주가 그 나이 또래의 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동주’를 보고 나서 저보다 송몽규가 많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씀해주기도 했어요. 그럼 성공한 것 같아요. 어떠한 색깔을 많이 나타내고 싶지 않았거든요. 윤동주 시인의 정수는 시니까요. 그 역시 그 시대에 살았던 젊은이였으며 열등감, 질투심,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 등을 느낀 사람이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밋밋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박정민 형에게 고마워요. 밋밋한 부분들을 많이 채워줬으니까요.”
‘동주’는 강하늘과 박정민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 후반부로 가면 두 사람이 교차돼 흘러가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강하늘과 박정민 그리고 이들을 상대하는 고등형사 역을 맡은 김인우의 내공을 절절히 느낄 수 있다. 특히 강하늘과 박정민의 경우 연기 대결을 보는 듯한 느낌까지 자아낸다.
“그동안 대결 구도에 관한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미생’을 할 때는 신입 4인방에게 라이벌 의식이 없냐고 물어보시고, ‘스물’ 때도 준호, 김우빈과 연기하면서 라이벌 의식 같은 게 없냐는 질문을 받곤 했어요. 그런데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동주’는 더 그랬죠. 서로 도와주는 것이지 연기 대결이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 첫 번째 마인드는 즐겁자, 행복하자에요. 연극 쪽에서 배워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최대한 작품 안에서 튀지 않게 연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또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욕심을 부리지 않은 이 장면은 관객들의 뇌리에 콕 들어박히는 장면들 중 하나. 이처럼 담담하지만 보는 이들의 감성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것이 바로 강하늘의 내레이션이다. ‘동주’에는 상황에 어우러지는 윤동주의 시들이 내레이션으로 등장, 영화의 맛을 배가시킨다.
“처음에는 한 톤으로 쭉 녹음했는데 그렇게 하니 시가 나올 때마다 지루해지더라고요. 그렇다고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도 이상해보일 것 같아 조금씩 느낌을 넣어보자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시가 ‘서시’였는데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하늘을 우러러’에서 ‘하’라는 소리가 나오질 않았어요. 저도 좋아하는 시였는데 이 ‘서시’를 제가 읽는다고 생각하니 말이 나오질 않더라고요. 울컥했달까요.”
강하늘은 ‘동주’와 ‘좋아해줘’를 같은 날 관객에게 선보인다. 그동안 영화와 스크린으로 팬들과 만나온 그는 연극은 물론 예능프로그램까지 출연하며 쉴 새 없이 작품 행보를 이어 왔다. 소 같이 일한다고 해 ‘소하늘’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동주’가 끝나고 3개월을 쉬었어요. 여행도 다녀오고, 놀 것도 다 놀았죠. 그렇게 3개월을 있다 ‘좋아해줘’ 촬영에 들어간 건데 사람들이 ‘안 쉬냐’고 하시더라고요. 전 쉬고 놀았어요. (웃음) ‘동주’와 ‘좋아해줘’의 개봉일이 같아서 아쉽기도 해요. 이렇게 돼서 죄송한 부분이 많죠.”
‘소하늘’은 곧 드라마 ‘보보심경:려’로 안방극장 팬들과 만난다. 이미 촬영도 시작했다. 드라마형 골격을 만들기 위해 ‘동주’ 때보다 2~3kg, ‘꽃보다 청춘’ 때보다 5~6kg 정도 체중도 감량했다.
“드라마는 촬영 중이에요. 다음 작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개인적으로는 드라마가 끝나고 연극이나 뮤지컬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배우 강하늘. 사진 =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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