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축구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축구가 시스템화되면서 10명이 11명을 이기는 경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하곤 한다. 과거 대인 마크가 주를 이뤘던 시대와 달리 지역 방어가 도입되면서 1명이 퇴장 당해도 수비적으로 큰 문제를 겪지 않게 됐다. 더구나 요즘 감독들은 퇴장 당한 상황을 가정해 연습을 한다. 레스터시티의 훈련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경험 많은 클라우디오 라네에리 감독도 퇴장에 대한 연습을 해왔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나 레스터처럼 중앙에서 터프하게 상대를 압박하는 스타일이라면 더더욱 1명이 부족할 때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 실제로 라니에리 감독은 대니 심슨이 퇴장 당하자 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골을 허용하며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심슨의 퇴장은 올 시즌 레스터의 첫 레드 카드였다. 선발 변화가 거의 없는 레스터가 약 50분을 10명으로 뛴 것이다. 레스터에게 1명의 퇴장이 주는 영향은 컸다. 수비라인이 뒤로 내려가면서 공을 끊어낸 뒤 더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 했고 제이미 바디는 지원을 받지 못했다. 강력했던 레스터 4-4-2 포메이션은 4-4-1이 되면서 힘을 잃었다.
#선발 명단
아르센 벵거 감독은 본머스전과 비교해 2명에 변화를 줬다. 가브리엘 파울리스타, 마티유 플라미니 대신 페어 메르테자커, 프란시스 코클랭이 출전했다. 올리비에 지루가 원톱에 섰고 옥슬레이드-챔벌레인이 오른쪽 미드필더로 나섰다. 시오 월콧과 부상에서 복귀한 대니 웰백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라니에리 감독은 3-1 승리를 거둔 맨체스터 시티 원정과 선발 명단은 똑같았다. 4-4-2를 바탕으로 바디와 오카자키 신지가 투톱을 이뤘고 리야드 마레즈, 마크 알브라이튼이 측면에 포진했다.
#전반전
아스날은 예상대로 공을 소유했고 측면을 통해 상대 진영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측면 또는 후방에서의 롱킥으로 지루의 머리를 이용해 세컨볼 찬스를 노렸다. 하지만 공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백포(back four:4인 수비)와 미드필더 4명을 두 줄로 세운 ‘버스 수비’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특히 메수트 외질은 전반에 단 한 차례도 상대 페널티박스 정면 근처에서 공을 잡지 못했다. 수비적으로는 발이 느린 메르테자커를 보호하기 위해 라인을 높게 가져가지 않았다. 물론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레스터가 역습할 공간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바디가 나초 몬레알로부터 페널티킥을 얻을 때도 뒷공간이 열리면서 위기를 맞았다.
레스터의 공격은 간단했다. 공을 끊어낸 뒤 바디 혹은 오카자키를 향해 롱패스를 시도했다. 올 시즌 레스터가 가장 잘하는 방법이다. 횟수는 적었지만 효율은 매우 높았다. 전반에 바디를 향한 패스는 5차례에 불과했지만 이 중 2번이 유효슈팅으로 이어졌다. 그 중 하나가 페널티킥 선제골이다.
#앳킨슨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날 마틴 앳킨슨 주심의 판정은 전체적으로 이상했다. 핸드볼에 지나치게 관대했고 몸 싸움에는 옐로우카드가 쉽게 나왔다. 그리고 바디의 액션이 섞인 돌파에는 단호하게 페널티 스팟(페널티킥을 찰 때 공을 놓는 지점)을 가리켰다. 무엇보다 심슨이 퇴장 당하면서 경기 흐름이 바뀌었다. 심슨은 불과 5분 사이 두 장의 경고를 받고 퇴장 당했다. 첫 번째 알렉시스 산체스를 향한 파울은 다소 거칠었지만 지루에 대한 파울은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구두로 주의를 줄 수도 있었다.
#11vs10
10명이 되자 라니에리 감독은 마레즈, 오카자키를 빼고 마르신 바실레프스키, 데마라이 그레이를 투입하며 변화를 줬다. 벵거 감독도 곧바로 반응했다. 수적 우위를 살리기 위해 수비형 미드필더 코클랭을 불러들이고 월콧을 내보냈다. 윌콧은 오른쪽 측면에 섰고 옥슬레이드-챔벌레인이 중앙으로 이동했다. 레스터가 바디 한 명을 전방에 뒀기 때문에 굳이 수비형 미드필더를 둘 필요가 없었다.
월콧이 들어오면서 아스날은 측면을 더욱 넓게 활용했다. 그리고 9분만에 동점골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월콧의 움직임이 좋았다. 득점 상황에서 월콧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이동하며 크리스티안 푸흐스를 유인했다. 순간 베예린에게 많은 공간이 생겼고 이후 크로스는 지루의 머리를 거쳐 윌콧의 슈팅으로 마무리됐다. 이때 푸흐스는 뒤늦게 베예린의 크로스를 막기 위해 다시 측면으로 이동했고 그러면서 월콧은 완벽한 노마크 상태가 됐다.
반면 레스터는 10명이 되면서 역습의 위력이 떨어졌다. 바디가 공을 잡아도 그를 지원해줄 선수가 부족했다. 그럼에도 은골로 칸테와 바디가 몇 안 되는 기회를 슈팅으로 연결하는 장면은 매우 놀라웠다.
#웰백
레스터처럼 간격을 좁게 유지하는 팀은 상대가 공을 측면으로 빠르게 전개할 경우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 벵거 감독은 이를 적극적으로 노렸다. 수적인 우위도 한 몫을 했지만 아스날이 중앙 돌파를 고집하지 않고 측면 크로스로 레스터를 공략한 건 매우 효과적이었다. 심슨 퇴장 이전에 19번이었던 아스날의 크로스는 이후 31번으로 늘어났다. 월콧의 선제골도 크로스에 의한 세컨볼 찬스에서 공간을 확보하면서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유리한 흐름에도 역전골이 나오지 않았다. 산체스의 슈팅은 빗나갔고 캐스퍼 슈마이켈의 신들린 선방까지 더해졌다. 그러자 벵거 감독은 후반 38분 웰백을 투입하며 최전방 공격수 숫자를 2명으로 늘렸다. 그리고 이 변화는 경기 종료직전 극적인 결승골로 이어졌다. 이날 가장 많은 크로스를 기록한 외질은 프리킥은 순간적으로 세트피스 맨마킹이 무너진 레스트의 허점을 정확히 공략했다. 벵거는 경기 후 “사실 웰백의 투입을 끝까지 망설였다. 하지만 그를 믿었고 환상적인 날이 됐다”고 기뻐했다.
[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