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앙드레 바쟁은 윌리엄 와일러를 ‘부재로서의 미장센’ ‘스타일 없는 스타일’로 규정했다. 이런 스타일로 대중의 지성을 존중한 감독 중에 ‘12명의 성난 사람들’ ‘네트워크’ 등의 시드니 루멧이 있는데, 그는 법정과 방송국을 골똘히 응시하며 인간이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으며, 너무나 쉽게 이성의 울타리 밖으로 뛰쳐 나갈 수 있는지 보여줬다. 톰 맥카시 감독 역시 클로즈업이나 빠른 장면전환 등의 요란한 스타일을 전혀 과시하지 않으면서 진중하면서도 사려깊은 연출로 끝내 할 말을 하고야만다.
제88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스포트라이트’는 2002년 당시의 실화를 토대로, 매사추세츠주 가톨릭 교회에서 10여년간 벌어진 아동 성추행 스캔들을 파헤쳐 퓰리처상을 수상한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팀 기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끈질긴 취재로 가톨릭 사제의 성추행은 만천하에 공개됐고, 이 팀은 결국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겉보기에는 정론직필을 추구하는 언론의 승리처럼 보인다. 물론, 언론은 사실을 은폐했던 가톨릭 교구와 싸워 이겼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언론의 힘을 찬양하는 영화가 아니라, 권력과 싸우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언론의 성찰을 응원하는 영화다.
전자의 대표작은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이 꼽힌다. 닉슨 대통령의 하야를 불러온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을 취재하는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로버트 레드포드)와 칼 번스타인(더스틴 호프만)의 실화를 그린 이 작품은 딥 스로트(익명의 제보자)를 끝까지 보호하는 일부터 정부의 압력과 위협에 굴하지 않고 취재를 포기하지 않는 두 기자의 열정적인 탐사보도에 이르기까지 가장 모범적인 언론영화로 평가 받는다(실제 워싱턴 포스트와 밥 우드워드는 딥 스로트가 누구인지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2005년 당시 연방수사국(FBI) 2인자였던 마크 펠트가 자신이 제보자였다고 털어놔 궁금증이 해소됐다. 마크 펠트를 주인공으로 하는 스릴러 영화는 리암 니슨 주연으로 제작되고 있다).
워터게이트 취재는 밥 우드워드 기자가 시작했던 반면, 보스턴 가톨릭 교구 성추행 사건 취재는 보스턴 글로브에 새로 부임한 유대인 편집국장의 지시에 의해 시작됐다. 스포트라이트팀 기자들은 가톨릭 전통이 강한 보스턴에서 사제들을 상대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제들은 보스턴 지역사회와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었고, 종교적 권위를 누리고 있었다. 기자들이 종교 권력을 두려워하는 사이, 어린 피해자들의 수는 더 늘어났다.
톰 맥카시 감독은 스포트라이트팀의 열정적인 취재 못지않게 그들의 반성과 성찰도 놓치지 않고 담아낸다. 이 영화가 과거에 제보를 눈여겨보지 않았던 어떤 기자의 뼈저린 아픔과 고백을 그리지 않았다면, 범작에 머물렀을 것이다. 자신을 향해 경멸하는 눈빛을 받아낸 자만이 잘못을 털어놓고 용기를 낼 수 있다. 그를 비롯한 스포트라이트팀 기자들은 종교 권력과 싸우면서 성장한다.
스포트라이트(Spotlight)는 언론의 주목을 뜻한다. 언론은 집중취재로 세간의 주목을 끌어야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언론 역시 시민의 주목을 받아야한다는 점이다. 성추행 피해자를 비롯한 보스턴 시민은 종교 권력에 굴하지 않았던 언론을 다시 한번 주목했다. 이 영화의 라스트신은 제보전화를 받는 한 기자의 모습으로 끝난다.
“스포트라이트.”
[사진 제공 = 팝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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