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강렬함으로 따지자면, ‘헝거’는 스티븐 맥퀸 감독의 영화 중 ‘셰임’과 ‘노예 12년’보다 더 진하고 아프다. 진하다는 건 제 몸을 극단으로 밀어부쳤다는 뜻이고, 아프다는 건 목숨과 맞바꿀 정도로 지키고 관철시키고자 했던 신념이 벽에 부딪혔다는 의미다.
1981년, 아일랜드공화국군(Irish Republican Army: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의 통일을 위해 싸우는 비합법적 조직) 소속의 보비 샌즈(마이클 패스밴더)와 동료들은 영국 교도소에서 죄수복을 입지 않고 씻지 않는 투쟁을 벌이지만, 영국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자 단식투쟁에 나선다.
‘헝거’에서 몸은 최후의 격전장이다. 영국의 대처 수상은 보비 샌즈를 비롯한 수많은 정치범들의 몸을 가뒀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은 몸으로 저항을 시작했다. 제 나라의 독립을 위한 투쟁은, 모든 피지배 국가의 국민들이 대부분 동의하겠지만, 정당성을 갖고 있다. 옳은 길을 향한 저항은 떳떳하다.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겠다”는 체 게바라의 말은 피지배 민중들의 거둬들일 수 없는 존재 선언이다.
죽음을 각오한 보비 샌즈와 그의 단식투쟁을 막으려는 도미니크 신부(리암 커닝햄)의 16분 롱테이크 신은 한 인간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강인한 의지를 갖고 있는가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숭고함마저 느끼게 한다.
“옳다고 믿는 것에 제 목숨을 걸 겁니다” “내가 실패해도, 다음 세대는 더욱 굳은 결의로 투쟁할 거예요”라며 굳은 신념을 밝히는 장면은 현실과 타협하는 무의미한 삶(보비 샌즈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이 아니라 현실을 넘어서려는 의미 있는 삶(이것은 보비 샌즈가 살아가는 단 하나의 이유다)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보비 샌즈의 투쟁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스티브 맥퀸 감독은 보비 샌즈를 비롯한 정치범 뿐 아니라 그들을 감시하는 교도관의 시선도 담아내며 균형을 유지한다. IRA의 살해위협에 시달리는 교도관부터 수감자들에게 폭력을 가하다 눈물을 흘리는 경찰에 이르기까지 국가 폭력의 실행자로 살아가야하는 자들의 고뇌와 불안도 놓치지 않는다.
몸무게를 극도로 줄인다고 해서 모든 배우가 명연기를 펼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이클 패스벤더는 14kg 감량과 함께 형형한 눈빛으로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신념과 불의에 맞서는 저항을 설득력 있게 연기했다.
보비 샌즈가 세상을 떠난지 35년이 지났다. 그는 현재 아일랜드의 국민 영웅이다. 시인 바이런의 말이 떠오른다.
“인간은 질줄 알면서도 싸워야할 때가 있다.”
[사진 제공 = 오드]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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