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오리온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오리온은 올 시즌 내내 전력이 불안정했다. 시즌 초반 애런 헤인즈가 맹활약한데다 풍부한 국내 포워드진의 장점을 극대화, 잘 나갔다. 그러나 외국선수가 2명 동시에 출전하자 조 잭슨 비중이 높아졌고,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팀 농구, 지역방어 어택이 익숙하지 않은 잭슨이 KBL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잭슨이 KBL에 조금씩 적응하려고 하자 헤인즈가 무릎에 부상했다. 급하게 제스퍼 존슨을 영입했다. 그러나 예전과 같은 몸이 아닌 잭슨 역시 KBL 재적응에 시간이 필요했다. 풍부한 국내 포워드진과 외국선수들의 유기성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 사이 헤인즈가 복귀전서 발목에 부상하는 불운까지 겹치기도 했다.
잭슨과 존슨이 동시에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면서, 국내선수들과의 연계플레이가 최상 수준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KBL 외국선수 규정에 따라 존슨이 KT로 떠나게 됐다. 3개월 간 쉬었던 헤인즈가 정상적인 경기력을 발휘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특유의 물 오른 공격 유기성이 파괴됐다. 결국 오리온은 시즌 막판 상위권 순위다툼서 극심한 손해를 봤다. 시즌 내내 선두싸움을 벌였지만, KCC의 상승세와 모비스의 뚝심에 3위로 밀렸다.
▲점점 더 강력해진다
추일승 감독은 "지금 전력이 부임 후 가장 강하다. 멤버가 워낙 좋으니까"라고 웃었다. 하지만, 단순히 멤버가 좋다고 해서 팀이 강한 건 아니다. 매 시즌 멤버 구성에 비해 성적을 내지 못하는 팀이 속출한다. 조직력을 극대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리온은 개개인의 기량과 조직력이 조화된 이상적인 농구를 펼친다. 시즌 내내 외국선수 구성원과 경기력에 변화가 심했다는 걸 감안하면 더욱 인상적이다.
지금 오리온 농구는 강력한 수비를 기반으로 한 공격농구, 즉 토털농구다. 공수 밸런스가 최적 수준이다. 최근 경기력은 정규시즌 초반 잘 나갔을 때 이상이다. 일단 강력한 스위치 디펜스로 상대 볼 흐름을 차단한다. 정통 5번이 장재석 뿐이라 골밑 더블팀+로테이션 시스템이 생활화 돼있다. 이 과정에서 상대 외국선수, 이번 챔프전서 하승진을 능숙하게 막아내는 이승현의 공헌이 상당히 높다.
수비에 성공, 공격권을 따내면 조 잭슨, 애런 헤인즈를 주축으로 한 얼리오펜스가 대단히 인상적이다. 얼리오펜스가 여의치 않을 때 시도하는 세트오펜스의 유기성도 리그 최상급이다. 기본적으로 2~3번 미스매치를 철저히 이용한다. 상대의 더블 팀에 볼 없는 움직임과 효율적인 패스로 빈 공간을 찾고, 득점 확률을 높인다. 어시스트가 많다. 슛 적중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3점포가 안정적인 이유다.
동부와의 6강 플레이오프, 숨 막혔던 모비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내성이 강력해졌다. 즉, 골밑이 허약해진 동부를 상대로 경기력을 예열한 뒤, 공수조직력이 좋은 모비스를 상대로 전투력을 극대화했다. 이 과정에서 추일승 감독의 용병술(양동근 스위치 디펜스, 안드레 에밋 3중 변형 새깅 디펜스)이 적절히 가미, KCC와의 챔피언결정전서 전력의 마지막 포텐셜마저 폭발했다.
▲놀라운 평정심
이 과정에서 또 하나 짚어볼 부분이 있다. 보통 완벽한 경기플랜을 바탕으로 실전서 좋은 경기력을 구현하더라도, 경기 중 최소 2~3차례의 고비가 찾아온다. 상대의 대응능력, 개개인의 체력, 집중력, 방심, 그리고 경기장 분위기 등에 따라 경기 흐름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경기 흐름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면 평정심이 흐트러지면서, 흥분 상태로 이어진다. 더구나 매치업 선수의 경기력과 행동, 심판의 파울 콜 등은 경기 흐름은 물론, 선수의 평정심을 직접적으로 방해할 수 있는 요소.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잡고 풀어나가는 게임은 그렇게 많지 않다. 총력전을 펼치는 플레이오프, 챔피언결정전은 더더욱 그렇다. 결국 선수와 벤치, 팀의 평정심 유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면, 팀 자체가 정상적인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자멸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게임 플랜대로 경기를 운영하고, 사령탑의 침착한 대응에 따라 냉정하게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오리온은 돋보인다. 시즌 내내 전력이 수시로 변하면서 위기를 자주 맞이했다. 하지만, 극복해내면서 챔피언결정전까지 왔다. 챔프전도 마찬가지다. 오리온 입장에선 1차전부터 석연찮은 판정이 잦았다. 1차전 막판 전태풍에게 내준 결정적인 자유투 3개가 그랬고, 4차전 김동욱의 테크니컬 파울도 마찬가지였다.
내부적으로도 조 잭슨의 무리한 공격과 높은 볼 소유욕은 팀 전체의 평정심을 무너뜨리게 할 수 있는 요소다. 실제 오리온은 정규시즌에도 잭슨의 성급한 슛 셀렉션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패배한 게임이 많았다. 하지만, 잭슨은 경기를 치를수록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을 익혀나가고 있다. 벤치와 동료의 도움도 있었다. 평정심을 유지한 채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경험이 쌓이면서, 팀이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다.
결국 14년만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단 1승만을 남겨뒀다. 프로농구 출범 최초로 외국인 정통센터가 없는 대신 외국인 포인트가드를 보유한 팀의 우승이 눈 앞이다. 하지만, 챔프전이 중, 후반에 접어들면서 스스로 평정심이 무너질 수 있는 시점이다. 그래서 추일승 감독의 언행이 인상적이다. 그는 "절대 방심하지 않겠다." "우승은 생각하지 않는다." 등의 코멘트로 마지막까지 선수단에 적절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오리온이 지금 절정의 경기력을 뽐내는 건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상대적으로 KCC는 에밋과 하승진이 막히자 평정심이 무너지는 모습을 많이 노출했다.
[오리온 선수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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