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한국농구도 틀을 깰 때가 됐다.
최연길 농구 칼럼니스트는 "최근 NBA를 보면 정통센터가 있는 팀들이 거의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대농구의 트렌드는 스몰볼"이라고 단언했다. 스몰볼은 작고 빠른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다. 빅맨 역시 스피드가 필수다. 공격에선 얼리오펜스와 효율적인 패스게임에 이은 외곽포, 2대2 공격을 중시한다. 수비에선 스위치와 로테이션을 생활화한다. 많은 활동량, 정밀한 움직임이 필수다.
NBA는 올 시즌 역대 최다승에 도전하는 골든스테이트의 스몰볼이 대세다. 이변이 없는 한 1995-1996시즌 시카고 불스의 72승을 넘을 것이다. 플레이오프 파이널 2연패도 유력하다. 그들의 스몰볼은 화려하면서도 조직적이다. 스테판 커리와 클레이 톰슨이 공격을 주도한다. 언더사이즈 빅맨 드레이먼드 그린은 탄탄한 골밑수비력을 앞세워 강력한 조직력을 완성한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은 아니다. 현대농구는 강력한 센터 중심의 정통농구가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농구의 본고장 미국이 그렇고, 또 다른 강력한 축 유럽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농구 비주류 KBL과 WKBL은 강력한 센터 중심의 농구가 굳건하다. 강력하고 똘똘한 외국 센터의 존재는 우승의 바로미터였다. 그런 점에서 올 시즌 KBL에서 14년만에 우승한 오리온이 한국농구에 던진 교훈은 짚어봐야 한다.
▲KBL판 스몰볼
오리온은 올 시즌 KBL판 스몰볼을 펼쳤다. 몇몇 농구관계자와 지도자들은 "정석적인 의미의 스몰볼은 아니다"라고 했다. 어쨌든 올 시즌 오리온은 현대농구의 트렌드와 가장 비슷한 스타일을 실전서 구현했다.
추일승 감독은 외국선수로 포워드 애런 헤인즈와 단신 테크니션 조 잭슨을 뽑았다. 바뀐 외국선수 규정상 정통센터를 뽑을 수 있었지만, 추 감독은 거부했다. 잭슨이 시즌 초반 KBL 특유의 복잡한 존 디펜스에 대한 어택, 심판의 두서 없는 파울콜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추 감독은 끝까지 믿고 기다렸다. 국내선수 구성만 봐도 정통센터는 장재석이 유일하다. 하지만, 그는 주전이 아니다. 대신 문태종 허일영 이승현 김동욱 김도수 등 190cm 이상의 장신 포워드가 즐비하다.
세트 상황에선 장신포워드들을 중심으로 2~3번 매치업의 우위를 살리는 농구를 펼쳤다. 상대의 스크린과 도움수비에 대응, 적절한 공간 활용과 효율적인 패스게임으로 확률 높은 외곽슛을 던졌다. 수비에선 스위치와 골밑 더블팀+로테이션 시스템으로 상대 패스게임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잭슨과 헤인즈가 파괴력 높은 얼리오펜스를 구사했다. 잭슨이 주전 포인트가드지만, 정통 1번이 아니었다. 볼을 배급하면서도 또 한 명의 공격수였다. 결국 스몰볼 특유의 화려함과 조직력이 조화를 이루면서 우승컵을 들었다.
▲틀을 깨자
1997년 원년부터 챔피언 팀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강력한 외국인 센터와 똘똘한 정통 포인트가드, 수준급 슈터를 보유했다. 지난 15~20년간 KBL, WKBL 대부분 감독은 수학공식처럼 이 방식을 따랐다. 그 결과 한국농구는 획일화됐다. 틀을 깨는 팀이 나오지 않았다. KBL과 WKBL은 개성이 없는 리그, 세계적인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리그로 전락했다. 16개 구단 모두 비슷한 컬러다. 빠른 농구를 지향하지만, 세련된 스몰볼과는 거리가 있다. 스피드 농구에 센터농구와 수비농구를 어정쩡하게 섞은 팀이 수두룩하다. 한 관계자는 "세계농구 흐름은 빅맨 중심이 아닌 2대2다. 빅맨의 포스트업에 대항하는 전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에선 아직도 빅맨이 3점슛을 던지면 화를 내는 지도자도 있다. 점점 진화하는 2대2 수비법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모든 지도자가 그랬던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모비스 유재학 감독의 경우 수년 전부터 현대농구 트렌드 변화를 감지, 대표팀에서 체질개선을 하려고 노력했던 대표적 지도자다. 빅맨들의 외곽수비 장착을 장려했고, 개개인의 공수 테크닉 향상에 매진했다. 지금 모비스 농구가 현대 농구 트렌드와 다소 맞지 않은 건 단지 리빌딩 과정에서 멤버 구성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추일승 감독도 마찬가지다. 그가 처음부터 세계적 트렌드에 맞는 농구를 했던 건 아니다. 2011-2012시즌 오리온에 부임한 뒤 숱한 시행착오와 트레이드, FA 영입 등을 통해 KBL판 스몰볼을 할 수 있는 컬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세계적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그가 외국선수를 유독 잘 뽑는 건 인적 네트워크가 세계적으로 넓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농구인들과 폭넓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매년 NBA, NCAA의 흐름을 파악 및 연구한다. 이미 그가 저술한 책도 여러 권이다.
빅맨 중심의 정통농구, 혹은 수비농구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선수구성에 따라 그런 농구를 해야 하는 팀이 있다. 대표적으로 KBL의 KCC와 모비스, WKBL의 우리은행, KEB하나은행이 그렇다. NBA 30개 구단도 모두 스몰볼을 지향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한국농구가 대체로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것과 과거의 틀을 깨는 것에 인색하다는 점이다. 과거 우승공식에만 급급한 나머지 왜 한국농구가 세계 수준과 멀어졌는지, 왜 세계농구 트렌드가 스몰볼로 이동했는지에 대한 연구와 노력, 실천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 한국농구는 꽉 막혔다. 추 감독은 "과거 NCAA 파이널 포를 봤는데, 떨어진 팀 감독들이 모여서 전술을 오픈하고 토론하더라. 부러웠다. 난 예전에 선배 지도자에게 '넌 몰라도 돼'라는 말을 들었다"라고 털어놨다. (추 감독은 후배 지도자들에게 전술, 전략 조언을 아끼지 않고, 토론하는 지도자로 유명하다. 최근 연세대 은희석 감독이 대학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이면엔 추일승 감독과 유재학 감독 등 유능한 선배 지도자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걸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란 평가도 있다) 그만큼 한국농구가 폐쇄적이다. 아마농구는 프로농구의 폐쇄성을 고스란히 따라간다. 중학교, 고등학교 팀들이 눈 앞의 성적을 쫓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타협한 채 프로에서 사용하는 팀 수비를 어설프게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또 다른 관계자의 설명이다.
끝이 아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NBA에선 골든스테이트의 스몰볼을 깨기 위해 또 다른 연구와 노력이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건전한 발전, 끊임없는 성장 동력이 조성된다. 그렇게 현대농구는 끝없는 진화를 표방한다.
오늘날 한국농구의 현실은 어떤가. 너무나도 깊은 우물 안 개구리다. KBL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오리온표 스몰볼이 강력한 도화선이 돼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한국농구는 틀을 깨야 한다.
[오리온 우승장면.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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