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2003년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관객들 머리를 세차게 쳤다. 병맛으로 다가와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이 블랙코미디 영화는 2016년 연극으로 재탄생돼 무대에서도 제대로 통했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원작으로 한 연극 ‘지구를 지켜라’는 범우주적 코믹 납치극. 지구를 위협하는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려는 병구와 병구의 조력자 순이, 외계인으로 지목 당해 병구에게 납치당한 강만식과 세 사람을 쫓는 추형사의 이야기다.
‘지구를 지켜라’는 언뜻 보면 코믹극을 표방하고 있다. 병구와 순이의 우스꽝스러운 겉모습은 등장만으로도 웃음이 터진다. 이들은 강만식을 외계인으로 몰고, 납치해 다소 엉뚱한 모습으로 몰아 세우고 고문한다. 이 과정에서 코믹함이 더해져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나 끊이지 않는 웃음 속에 기습적으로 블랙코미디 요소가 파고 든다. 방어적 요소가 풀렸을 때 ‘지구를 지켜라’가 전하려는 본 메시지가 훅 들어오는 것. 병구가 강만식을 외계인으로 몰아가는 이유, 그가 이제까지 권력을 휘두르고 자신을 위기로 몰아넣은 자들을 납치한 이유가 밝혀질 때마다 사회비판과 계층간의 갈등이 드러난다.
병구는 제일 엉뚱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갑이 더 갑질 할 수 있게 알아서 을질 하는 세상을 비판한다. 슈퍼갑 강만식은 그런 사회 속에서 자기 비판에 빠져 좌절만 하는 을들을 꼬집고, 나아지지 않는 세상의 민낯을 들춘다.
아무것도 모른 채 병구만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만 같은 순이의 존재도 우리가 얼마나 달라지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깨닫게 한다. 결국 순수함은 짓밟히는 세상이다.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는 2003년, 무대화 된 것은 2016년. 13년이 흘렀지만 변함 없는 이 세상. 작품에서 말하듯 인간은 좀처럼 희망이 없어 보여 관객은 또 한 번 머리를 세차게 맞는 듯 하다.
연극 ‘지구를 지켜라’는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를 고스란히 가져왔다. 이와 동시에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을 극대화시켰다. 소극장 무대에서 배우들의 역동적인 연기를 최대한 살렸다. 영화와의 싱크로율을 최대한으로 살리면서도 무대를 단순화시켜 군더더기를 없앴다. 고문 기구는 재기발랄하게 표현됐고, 영상을 통해 다양한 공간이 표현돼 보는 재미를 더한다.
연극 ‘지구를 지켜라’, 공연시간 100분. 오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원씨어터 1관. 문의 클립서비스 1577-3363
[연극 ‘지구를 지켜라’ 공연 이미지. 사진 = 프로스랩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