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킬 미 나우”라고 외치지만 “힐 미 나우”로 다가온다.
연극 ‘킬 미 나우’는 인간의 죽음을 그리지만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전한다. 차가움 속에서 따뜻함을 전하는 것, 죽음 속에서 삶을 전하는 것, ‘킬 미 나우’가 지닌 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불편한 현실과 아픔 속에서 결국 치유와 따뜻함을 그린다.
연극 ‘킬 미 나우’는 선천성 장애로 평생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성인이 되고 싶은 17세 아들 조이와 아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 채 헌신했지만 더 이상은 그럴 수 없는 아버지 제이크가 겪는 갈등을 그린다.
누구나 불편한 현실과 상처는 마주하기 싫다. 그러나 현실의 밑바닥까지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상처는 치유되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 장애와 병, 성장과 도태, 삶과 죽음도 그렇다. 원하던 원치 않던 현실 속에선 누구에게나 마주해야 하는 것들이다. 받아들이고 이겨내는 것 등은 선택 사항이지만 어찌 됐든 마주해야 하는 부분이다.
‘킬 미 나우’는 인물들을 극단적인 현실 앞에 놓이게 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에 몰리게 하고, 결국 그 치부까지 드러내게 한다. 그러나 그렇게 드러낸 치부를 통해 결국 진짜 자신을 내놓게 되고, 비로소 헐벗은 진짜 맨얼굴로 서로를 마주하며 상대를 이해하고 또 치유하게 된다. 이 과정이 참 가슴을 아리게 하지만 결국 그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을 느끼게 하고 삶을 가치있게 만든다.
선천성 장애로 인해 개인적인 삶에 좌절을 느끼는 조이, 아들의 장애로 인해 현실을 마주하고, 이후 자신의 육체적 고통으로 인해 좌절하게 되는 부모 제이크, 가족에게 헌신하는 삶과 개인의 삶 사이에서 지쳐가는 고모 트와일라, 이들과 또 다른 형태로 가족이 되는 라우디와 로빈. 이들의 현실이 참으로 애석하면서도 따뜻하다.
‘킬 미 나우’ 속 인물들이 마주하는 현실에는 보기 싫고, 이야기하기 싫고, 인정하기 싫은 부분도 많다. 그러나 피할 수가 없다. 결국 현실이고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고, 곧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선천성 장애로 인해 조이가 외치는 “킬 미 나우”는 제이크에게 “힐 미 나우”로 들린다. 어찌 보면 서로에게 외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결국 또 다른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제이크는 아들 조이를 위해 쓴 책에서 말한다.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아이는 완벽한 존재다. 태어나는 그 순간, 그 존재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든다’고. 제이크가 말했듯 장애가 있던, 병이 있던, 아픔이 있던, 죽음을 맞던, 우리는 태어나고 존재했던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하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그런 것이다.
‘킬 미 나우’가 ‘힐 미 나우’로 들릴 정도로 아픔이 곧 따뜻함으로 다가오는 것,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죽음이 결코 무섭지 않고, 가슴 아픈 상처가 다시 치유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존재했음으로 이미 완벽하고, 서로를 이해했음으로 이미 지금 나를 치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연극 ‘킬 미 나우’의 이같은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유는 단연 배우의 힘이다. 배우들의 연기 몰입도는 그야말로 최상이다. 무대 위 배우들은 가장 현실적인 연기로 극 안의 인물이 되고 민감한 소재임에도 부정할 부분 없이 설득시킨다. 누구 하나 부족함 없이 모두가 그야말로 인물에 푹 빠졌다.
무대 활용도와 조명 또한 깊은 몰입도에 한 몫 한다. 오경택 연출과 지이선 작가의 각색은 ‘킬 미 나우’를 현실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만들었다. 작품을 보기 전 눈물을 닦을 손수건이 필수다.
연극 ‘킬 미 나우’. 공연시간 130분. 제이크 이석준 배수빈, 조이 윤나무 오종혁, 로빈 이지현, 트와일라 이진희, 라우디 문성일. 오는 7월 3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문의 연극열전 02-766-6007
[연극 ‘킬 미 나우’ 공연 이미지. 사진 = 연극열전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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