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한국이 체코 원정에서 승리하며 15년 전 오대영 완패와 4일 전 1-6 참패 충격에서 벗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경기이기도 했다. 전반을 잘 싸우고도 상대 퇴장으로 인한 수적 우위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경기 막판 교체전술로 아쉬움을 남겼다. 자신의 철학을 밀고 나가겠다던 슈틸리케 감독도 승리가 눈앞에 보이자 내용보다 결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쨌든, 전술적인 특징을 찾기 어려운 경기였다. 원톱 석현준의 폭넓은 움직임은 인상적이었지만 공격 2선과의 연계는 여전히 부족했다. 또 왼쪽으로 이동한 장현수는 좌우 불균형을 가져왔다. 그 결과 전반 한국 공격의 대부분이 오른쪽(77%)에서 나왔다.
“오늘 승리는 선수들이 열심히 뛴 결과다. 스페인전 패배 후 정신적인 극복이 중요했다. 다행히 100% 정신적 재무장을 보여줬다. 우리가 프리킥으로 1-0을 만들면서 경기를 쉽게 풀어갔다. 스페인전에선 비슷하게 실점해서 어려웠는데 오늘은 반대로 우리가 찬스를 살려 2-0으로 침착하게 경기를 풀었다”
축구에서 심리적인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프로 구단들이 심리학 박사의 강연을 통해 선수단의 정신력을 컨트롤하는 건 그 때문이다. 대패 이후 정신적인 재무장을 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은 빠른 회복을 보여줬다. 중요 포지션의 선수 교체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스페인전과 비교해 7명을 바꿨다. 특히 경험 많은 곽태휘와 정성룡이 들어가면서 수비진에 안정감이 더해졌다. 정신적인 회복이 잘 된 이유다.
“석현준은 정말 잘 해줬다. 특히 체격적으로 어려운 체코를 상대하면서 많이 뛰고 부딪히며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한국은 후방부터 만들어가는 빌드업이 매끄럽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방으로 공을 잘 전달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석현준 때문이다. 이날 석현준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좌우로 폭 넓게 움직였다. 이 부분이 주효했다. 체코는 좌우 풀백이 비교적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다. 그로인해 석현준이 측면으로 이동할 공간이 많았다. 전반 40분 추가골 장면에서도 윤빛가람이 토마시 로시츠키의 공을 빼앗은 순간 석현준이 공간을 향해 질주했다. 꾸준한 움직임이 석현준의 결승골을 만들었다.
그와 비교해 손흥민은 조용했다. 경기력은 수건을 집어 던진 스페인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휴가까지 반납하고 훈련한 것을 칭찬했지만, 움직임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일단, 석현준과 비교해 활동량이 적었다. 물론 오른발이 주발인 장현수가 왼쪽에 서면서 공격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손흥민 부진의 이유가 될 순 없다. 수비 가담도 부족했다. 장현수와의 간격이 자주 벌어졌다. 체코가 후반에 셀라시를 오른쪽으로 이동시킨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로 후반 7분 오버래핑에 나선 셀라시가 한국 골대를 때렸을 때도 손흥민의 수비가 늦었다.
“윤빛가람은 나와 첫 대표팀 경기를 치렀다. 다만 그가 미래에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이려면, 내려와서 공을 받아 결정적인 패스를 해줘야 한다. 그런 부분이 개선되어야 한다. 또 강한 피지컬을 가지고 경합해야 한다. 아시아 선수들이 갖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4-2-3-1 포메이션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윤빛가람은 환상적인 프리킥과 감각적인 도움으로 한국이 넣은 2골에 모두 관여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말처럼 냉정히 볼 때 경기력이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프리킥 이전까지 윤빛가람은 경기에 거의 관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석현준의 골을 도울 때도 사실상 로시츠키의 실책에 가까웠다.
“정우영은 빠른 선수가 아니다. 때문에 빠르게 주고 받는 플레이가 필요하다. 그런데 후반에 체력적인 부담은 안고 뛰었을 때 패스 실수가 나왔다. 그래서 교체했다”
기성용을 대신한 정우영은 무난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지적했듯이 다소 늦은 타이밍으로 몇 차례 공 소유를 잃었지만 수비적으로 포백과의 간격은 좋았다. 지난 스페인전에서 한국은 전방 압박 과정에서 미드필더와 포백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는 약점을 노출했다. 더블 볼란치를 맡은 기성용과 한국영이 압박을 위해 전진하면서 간격 유지에 실패했다. 반면 체코전에서 짝을 이룬 정우영과 주세종은 센터백 곽태휘 혹은 김기희가 전진할 때 간격을 좁혀 크레이치, 슈랄, 로시츠키 등의 공간 침투를 적절히 차단했다.
“후반 시작하자마자 실점한 게 컸다. 실점하면서 선수들이 당황했지만 빠르게 페이스를 찾았다. 그러나 이기겠다는 부담감이 작용했다. 수적 우위에도 위축되면서 수비적으로 나간 것 같다. 어쨌든 중요한 승리였다. 오늘 안 좋았다면 3개월 뒤 최종예선에서 어려웠을 것이다”
전반과 후반은 완전히 다른 경기였다. 후반은 한국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후반 1분에 실점하면서 전체적인 라인이 뒤로 내려갔다. 덕분에 체코는 더 쉽게 올라갔다. 다행히도 잇따른 위기 속에 셀라시가 경고누적으로 퇴장 당하며 한국은 11vs10으로 남은 30분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불안한 리드는 계속됐다. 정성룡의 선방과 평가전을 무색하게 한 교체전술이 없었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사진 = 대한축구협회]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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