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힘들고 아프더라도 꼭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순간 찢어지는 아픔에 상처 입기도 하지만 이를 견디고 나면 치유를 얻는다는 것을 알기에 꿋꿋이 해내는 것들. 연극 ‘킬 미 나우’에서 이타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는 배우 배수빈, 이진희가 더 꿋꿋이 무대에 서있는 것 또한 이같은 이유에서다.
배수빈, 이진희가 출연중인 연극 ‘킬 미 나우’는 선천성 장애로 평생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성인이 되고 싶은 17세 아들 조이와 아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 채 헌신했지만 더 이상은 그럴 수 없는 아버지 제이크가 겪는 갈등을 그리는 작품. 배수빈은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 제이크, 이진희는 제이크의 여동생이자 조이의 고모로 두 사람을 보살피는 트와일라 역을 맡았다.
배수빈과 이진희는 연극 ‘킬 미 나우’의 첫인상에 대해 “충격적이었다. 굉장히 센 작품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원작이 각색된 작품보다 더 센 것도 있었지만 성(性)과 장애, 죽음 등 쉽지 않은 주제에 대해 솔직하고 대범한 접근을 보이는 작품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더 충격적이고 세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배수빈은 “너무 무서웠다. 너무 좋은데 무서웠다”며 “3자 입장에서 각색되지 않은 원작을 봤을 때 너무 날 것 같았는데 내가 한다고 하니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이진희 역시 “나도 그런 게 있었다. 내가 읽었을 때는 재밌었지만 내가 해야 된다는 거에 대한 두려움이 있더라”며 “표현하는 입장에서 이걸 과연 어떻게 봐주실지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두 사람을 ‘킬 미 나우’로 이끈 것은 앞서 두 사람 모두 연극 ‘프라이드’로 한 번 호흡을 맞췄던 지이선 작가의 힘이 컸다. 배수빈은 “‘프라이드’에서 같이 해봐서 그런지 지이선 작가가 각색을 하면 우리가 걸릴 수 있는 부분들을 잘 만져줄 수 있겠다는 신뢰감이 컸다”고 밝혔고, 이진희는 “어떤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지이선 작가에 대한 신뢰”라고 거들었다.
“각색고가 나온 뒤 처음 리딩을 했을 때 ‘정말 큰일났다. 이거 어떻게 하냐’고 했어요. 정말 마음을 후벼 파는 것 같았거든요. 배우들이 첫 리딩을 하고 다 ‘큰일났다’ 하면서 밖으로 나갔어요. 이 정서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을 정도였거든요. 그게 지이선 작가의 힘인 것 같아요. 사실 초반 원고를 보면 굉장히 드라이한 작품이고 논란의 여지도 있을 수 있는 작품인데 지이선 작가가 정서적인 부분들을 다 건드리고 가요. 힘들지만 사랑이 남는, 관계가 남는 게 지이선 작가의 근원적인 시점 같아요.”(배수빈)
“여자 배우들은 연습 전에 화장실에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통째로 가져올 정도였어요. 계속 울어서 화장지를 쌓아두고 연습했죠. ‘우리가 이러면 안되는데..’ 했지만 사실 처음엔 관객 분들이 처음 이 작품을 접하셨을 때 그랬듯이 저희도 많이 힘들더라고요. 리딩 때가 정말 힘든 기간이었어요. 지금은 그래도 공연 중 숨 쉴 구석이 생기는 시점이라 괜찮아졌는데 관객분들이 많이 힘들어하셔서 걱정이에요. 관객분들이나 주위 분들이 원캐스트고 하니까 제 걱정을 많이 하시는데 이제 저는 괜찮아요. 오히려 관객분들이 진짜 힘드실 걸 아니까 버티실 수 있을까 걱정돼요.”(이진희)
“관객 몰입도가 200% 상승하고 빨려 들어가는게 우리도 느껴질 정도니까요. 저희도 같이 울컥해서 도움 받을 때가 있을 정도로 같이 호흡하죠.”(배수빈)
“어두워서 잘 안 보여도 같이 숨 쉬고 있는게 느껴져요. 같이 멈추고 같이 울고 같이 참고 이런 게 느껴져요.”(이진희)
무엇이 이토록 이들을 함께 호흡하게 만들까. 결국 공감이다.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배우나 받아들이는 관객이나 함께 느낄 수 있었기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공감대를 느끼는 부분이 다르더라도 좋다. 어쨌든 배우와 관객들은 ‘킬 미 나우’로 함께 호흡하고 있으니 말이다.
배수빈은 “장애인의 성 문제, 안락사 문제 등 민감한 부분들을 다루고 있지만 관계와 인간의 존엄성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며 “어떻게 보면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결국 본인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뭘까 생각을 하다 보면 원하는 건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들이에요. 이런 마음들이 이 작품을 더 따듯하게 만들지 않았을까요? 결국 이 작품은 되게 이타적 사랑에 대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요. 결국 자기가 행복하길 원하지만 그 행복 자체가 내가 죽었을 때 내가 안락사를 했을 때 내가 이 사람한테 짐이 되고 싶어 하지 않은 마음들이죠. 그 마음들이 너무 따뜻한 거예요.”(배수빈)
이진희는 “작품에 대한 굉장히 많은 얘기를 했는데 사실 저희가 작품을 통해 어떤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던지고 싶지는 않았다”며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기도 하고 각자 맡은 인물에 따라가는 것도 있기 때문에 확실하게 이런 부분을 전하고 싶다는 것들은 사실 정해놓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냥 다른 건 모르겠고 서로 다 여기서는 행복하길 바라는 것 같아요. 방법이 다를 뿐이지 다들 서로가 행복하길 바라요. 모두가 행복해져도 된다고,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인 거예요. 그런 마음들이 엉켜 있어서 싸우기도 하고 손을 들어주기도 하는 거죠. 그래서 더 이런 부분에 대해 하나라도 정의를 내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이선 작가님은 기본적으로 배우 한명 한명, 극 중 인물 한명 한명에 대한 애정이 깊어요. 그게 고스란히 드러나죠. 그래서 더 그렇게 딱 한가지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 같아요.”(이진희)
물론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것에 대한 책임감은 있다. 배수빈은 “정말 민감한 소재를 다루기 때문에 희화화 되면 안 되니까 극도의 신경을 다 세우고 간다”며 “그게 무너지게 되면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들이 오독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절대 건들면 안 되는 장면들은 마음 속에 다 박혀 있다”고 강조했다.
이진희 역시 “제이크와 로빈의 관계, 트와일라와 라우디의 상황들이 불쌍하고 안타깝다가도 ‘ 이 관계가 잘 이해 될까’ 싶긴 했다”며 “억지로 이해시키고 싶진 않고, 그러지 못해도 상관 없지만 동조할 수는 없어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부분에 있어서 사실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었다”고 털어놨다.
연극 ‘킬 미 나우’. 공연시간 130분. 제이크 이석준 배수빈, 조이 윤나무 오종혁, 로빈 이지현, 트와일라 이진희, 라우디 문성일. 오는 7월 3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문의 연극열전 02-766-6007.
[연극 ‘킬 미 나우’ 배수빈, 이진희. 사진 = 연극열전 제공]
[인터뷰②에 계속]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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