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책임 있는 자리를 맡으면, 책임감과 부담감 속에서 결국 그 자리에 부합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의미다. 사회생활은 물론, 야구에서도 통용되는 말이다. 감독이 특정 선수를 어떤 보직에 임명하면 처음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도 결국 보직에 걸맞은 역할을 잘 해내는 경우가 있다.
KIA 4번타자 이범호가 그런 케이스다. 이범호는 2000년 프로에 입단한 뒤 4번타자를 맡은 적이 거의 없었다. 한화에서도, KIA에서도 이범호의 타순은 주로 5~6번이었다. 올 시즌 초반에도 이범호의 타순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김기태 감독은 8일 대전 한화전부터 이범호를 4번타자로 기용했다. 12경기 연속 4번을 맡은 이범호는 50타수 15안타 타율 0.300 7홈런 16타점으로 맹활약 중이다. 마치 오래 전부터 4번을 쳤던 타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왜 4번 이범호인가
KIA의 개막 4번타자는 브렛 필이었다. 4번에서의 성적은 70타수 21안타 타율 0.300 3홈런 10타점. 썩 나쁘지 않았지만, 임팩트는 조금 부족했다. 나지완은 4번에서 타율 0.303 7홈런 22타점으로 좋지만, 시즌 타율(0.283)보다 득점권 타율(0.207)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4번에서 흐름이 끊기니 타선의 전체적인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김주형 4번 카드도 있지만, 주전 유격수로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돌고 돌아 이범호가 4번타자를 맡았다. 최근 KIA 클린업트리오는 김주찬~이범호~브렛 필로 구성된다. 필이 5~6번에서 잘 맞고 있다. 이범호도 4번 타순에 적응을 잘 하고 있다. 김주찬은 본래 4번과는 거리가 있는 스타일. 최적의 중심타선을 구축하면서 KIA 득점력도 일정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김기태 감독은 이범호의 4번 기용에 대해 별 다른 설명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이범호가 주장으로서 솔선수범하는 베테랑이니 4번으로서의 책임감까지 부여한 것으로 해석할 수는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 듯, 이범호는 4번에서 대폭발 중이다. 8일 대전 한화전부터 15일 광주 두산전까지 7경기서 무려 8홈런 13타점을 쓸어담았다. 이후 조금 주춤했지만, 21일 광주 롯데전서 2안타 2타점 2득점으로 회복했다. 개인통산 900타점, 800득점을 돌파했다.
▲FA 우등생
이범호는 올 시즌 KIA와 4년 36억원 FA 재계약을 맺었다.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8~90억원대 고액계약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범호는 특유의 성실성을 앞세워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활약을 펼친다. 수비 안정감도 여전하다.
시즌 절반이 지나지 않았는데 15홈런을 기록했다. 지난해(28홈런)를 넘어 홈런 커리어하이 시즌을 만들 기세. 생애 첫 30홈런도 충분히 가능하다. 타점도 2014년(82개)을 넘어 90~100개가 가능한 페이스. 주장과 4번 중책을 맡았음에도 오히려 세부 성적이 예년보다 올라가는 게 놀랍다.
이범호의 4번 기용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KIA 타선 사정을 감안하면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4번 타순에서 타격 커리어하이를 써내려 갈 기세의 FA 모범생. 보기 드문 케이스인 건 분명하다. 4번타자 특유의 책임감이 이범호의 발전을 채찍질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이범호.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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