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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영화 '걷기왕' 언론 시사회 이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배우 심은경(22)을 만났다. 19일 전야 개봉을 앞두고 긴장과 설렘이 엿보이면서도 한결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스스로에게 누구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던 그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달라 보였다.
"원래 제 작품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보는 편이에요. 그동안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제 연기를 자꾸 판단하려 해서 작품 자체를 즐기지 못한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걷기왕'을 볼 때는 감정이 울컥 올라오더라고요. 출연배우가 아닌 한 명의 관객으로서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어요. 당황스럽고 민망해서 시사회에서 눈물을 꾹 참았던 기억이 나네요."
'걷기왕'은 기존 드라마 장르와 달리 감동을 애써 강요하지 않는다. 관객들에게 담담한 어조로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한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선천적 멀미 증후군에 걸린 여고생 만복(심은경)이 자신의 삶에 울린 경보를 통해 고군분투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스토리를 담은 작품. 무조건 빨리, 열심히를 강조하는 무한 경쟁 사회를 만복이라는 소녀를 통해 유쾌하게 풀어냈다.
"사실은 저도 만복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에 놓여 있었어요. 고민도 많았고 슬럼프에 빠졌던 시기들이 있었는데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그런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19세라는 이른 나이에 맛본 영화 '수상한 그녀'(865만)의 흥행 성공은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또다시 무언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조급함에 짓눌려 있었다.
"감사하게도 '수상한 그녀'라는 영화 덕분에 예상치 못하게 큰 상과 사랑을 많이 받았었어요. 흥행이라는 행복도 느껴봤고요. 당시에는 실감이 안 날 정도였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저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연기를 즐기면서 했었는데 잘해야 한다는 쪽으로 포커스가 쏠린 거죠. 제가 하고 싶은 게 제일 우선이어야 하는데 대중의 시선에만 나를 맞추려 했어요. 새로운 걸 계속 보여드려야 한다는 큰 착각에 빠져 있었어요."
이 시기 결정한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로 처음 연기력 논란에 시달렸다. 시청률 부진, 그 원인의 화살은 고스란히 심은경에게 꽂혔다. 일본 인기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를 리메이크한 작품인 만큼 후폭풍은 거셌다. 심은경은 "내 연기 욕심이 과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많은 관심과 비판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잘 몰라 무척 혼란스러웠어요. 촬영 내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마음에 연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생각해보니까 연기를 대하는 데 있어 제 욕심이 과했던 거 같아요. 보여주기 식의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과시하려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거예요. 그러니 비판은 당연한 결과였어요. 한동안 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결과적으론 심은경의 배우 인생에 자양분이 됐다.
"'실패했다'고 단정 지어 보는 분들이 있는데 저에겐 약이 된 경험이었어요. 저의 부족함도 깨닫고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죠. 이게 아니란 걸 깨닫고 나서는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어요.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답니다. 이젠 주조연 상관없이 캐릭터가 매력 있다면 주저 없이 도전할 거에요."
심은경은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속 시원하게 밝히는 여배우였다. 그만큼 어떠한 계산도 않는 순수한 소녀라는 뜻.
"저도 애어른 같이 말하고 싶진 않은데 진심으로 나를 거짓 없이 보여줘야 하는 게 맞는 것으로 생각해요. 이게 나인 걸 어쩌겠어요. 전 고민도, 걱정도 많이 하는 사람이에요. 이게 타고난 성격이라서 고민을 안 하면 마음이 불안해져요. 그럴 바엔 실컷 생각해버려요. 그러면 스스로 별거 아닌 일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죠. 하하."
여전히 치열하게 자신에 대해 고민 중이었다. 그는 "아직도 고민이 많고 불안한 게 없지만은 않아요.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도 알고요. 배우라는 직업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지 이겨내지 못한다면 할 수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것들을 잘 극복하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느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걷기왕' 촬영 덕분에 터득했어요"라고 털어놨다.
이처럼 '걷기왕'은 심은경에게 어떤 작품보다 의미가 남달랐다. 심은경은 "내가 얻어가는 게 더 많았던 작품"이라며 "하느님께서 이 영화를 찍고 마음 편히 가지라고 준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을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건네준 메시지 같기도 하고요. 촬영 때 추웠던 거 빼고는 힘들었던 게 정말 하나도 없었어요"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만복이는 고민해서 나올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에요. 제 10대 시절 경험과 감정들을 다시 되새기면서 갖고 있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감독님도 이 부분에 크게 공감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연기적인 스트레스 없이 가장 마음 편하게 찍었어요. 연기를 오랜 시간 해오면서 고착돼 있었는데 다시 재미를 느끼게 되고 절로 애드리브가 떠오르더라고요. 스스로를 내려놓고 생각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됐죠."
"심은경이라고 기억되기보다 '걷기왕'의 만복이처럼 이렇게 맡은 캐릭터 그 자체로 기억되고 싶어요. 저는 진심을 담아 연기한 역할이기 때문에 그렇게 봐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거 같아요."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걷기왕' 스틸]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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