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우리는 무언가를 얻을 때, 다른 무언가를 잃는다. 인간사회의 법칙이 그렇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잃을 때, 다른 무언가를 얻는다. 우주가 그렇게 흐른다. 대부분의 인간은 아무 것도 잃지 않고 얻으려고만 한다. 세상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나가이 아키라 감독의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슬프면서도 따뜻한 판타지 드라마다. 서른살의 우편배달부 ‘나’(사토 타케루)는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그날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악마’가 나타나 수명을 하루씩 늘리는 거래를 제안한다. 하루를 더 사는 대신, 세상에서 소중한 것을 없애자고 속삭인다. 전화, 영화, 시계를 사라지게 만든 악마는 마지막으로 고양이를 없애자고 유혹한다. ‘나’는 고양이를 떠나 살 수 있을까.
영화에서 고양이는 종종 자기 자신이나 책임져야할 타인의 삶을 상징한다. 코엔 형제 감독의 ‘인사이드 르윈’에서 가난한 포크 뮤지션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는 골파인 교수의 집에 하룻밤 신세를 지고 난 뒤 얼떨결에 수고양이 한 마리와 동행하게 된다. 도중에 고양이를 놓친 그는 길거리에서 도망간 고양이인 줄 알고 잡아서 골파인 교수에게 가져다주지만, 그 고양이는 수컷이 아니라 암컷이었다. 르윈은 암고양이를 데리고 나와 오디션을 보기 위해 시카고로 떠났다가 휴게소에서 암고양이를 차에 방치하고 떠난다. 그는 별다른 성과없이 오디션을 마치고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고양이를 치게 된다. 절뚝거리는 고양이는 숲 속으로 사라진다. 골파인 교수의 집에 돌아왔을 때, 자신의 곁을 떠났던 수고양이는 돌아와 있었다. 그때 고양이 이름이 율리시스(오디세우스)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세 마리의 고양이는 각각 자신과 타인을 은유한다. 율리시스는 끝까지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 수밖에 없는 르윈을 뜻하고, 두 번째 암고양이는 자신이 책임지지 못한 전 여자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세 번째 고양이는 포크 뮤지션으로 살아가야할 자신의 인생이 앞으로 녹록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다가오는 것들’에서 철학교사 나탈리(이자벨 위페르)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키우던 고양이 판도라를 품에 안는다. 나탈리는 판도라를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하지만, 아무도 받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의 유산인 고양이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보호하며 함께 살아간다. 판도라는 곧 어머니이다. 늙고 병들어 자신을 힘들게 했던 어머니를 버리지 못하듯, 판도라 역시 타인에게 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고양이를 없앨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 고양이는 ‘나’를 위해 평생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 어머니의 분신이다. 어머니가 끔찍하게 아끼던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어머니와의 소중한 추억도 소멸된다.
<일식> <결괴> 등으로 유명한 일본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에세이 <나란 무엇인가>에서 인간을 ‘분인(分人)’ 개념으로 설명했다. 인간은 ‘나눌 수 없는 개인(in-dividual)’이 아니라 ‘나눌 수 있는 분인(dividual)’이라는 것. 회사 상사, 친구, 애인, 동료, 부모 등을 대하는 나는 모두 다르다. 그러한 분인들이 모여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어머니와의 추억이 켜켜히 쌓여있는 나 자신의 ‘분인’도 없어진다. 타인 또는 반려동물의 죽음은 내 분인의 죽음과도 같다.
‘나’는 하루의 삶을 얻는 대신 전화, 영화, 시계를 잃었다. 잃는 동시에 전화, 영화, 시계와 얽혀 있는 소중한 추억과 일상을 깨달았다.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가정법은 지금 ‘분인’으로 ‘나’를 이루고 있는 가장 소중한 가치의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이제 당신이 질문에 답할 차례다.
[사진 제공 = 크리픽처스, CBS필름, 찬란]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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