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바야흐로 멜로의 계절 가을이 무르익었다. 하지만 요즘 좀처럼 극장가에서 한국 멜로물을 만나보기 어렵다. 누아르, 히어로물, 시대극 등이 각광받고 예전과 달리 멀티 캐스팅, 남남 커플이 대세로 자리잡았기 때문.
빈자리는 재개봉된 할리우드 로맨스물이 채우고 있다. '노트북'이 잔잔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고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도 오는 24일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국산 멜로도 다시 봐도 감동적인 명작들이 많다.
멜로 전성시대였던 2000년대 초-중반에 특히나 수작(秀作)들이 쏟아졌다. 이에 메마른 우리의 감성을 200% 충전해줄 만한 한국영화들을 소환해봤다. 아마 이 작품들 중 한 번도 안 본 영화는 있어도 한 번만 본 작품은 없을 거다. 지금은 활동이 뜸한 품절녀 이영애·이나영부터 원톱 여배우로 우뚝 선 손예진, 할리우드 스타로 발돋움한 이병헌, 여전히 그리운 故 장진영·이은주 등의 풋풋한 모습도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 시한부·기억상실, 뻔한 소재도 뻔하지 않게
시한부, 기억상실 등은 예나 지금이나 작품에서 단골소재다. 식상하지만 이 만큼 극적인 효과를 주는 소재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선물'(2001년), '국화꽃 향기'(03년), 'ing'(03년), '연애소설'(02년), '오버 더 레인보우'(02년) 등에서는 어쩐지 진부하지가 않다. 비장의 카드로 이를 맥락 없이 내세우기 보다는 물 흐르듯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완벽 앙상블에 버무리니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선물'과 '국화꽃 향기'는 죽음 앞에서도 견고한, 지고지순한 부부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먼저 '선물'은 삶이 얼마남지 않은 정연(이영애)과 5년차 무명 개그맨 용기(이정재) 부부의 이야기를 다뤘다. 정연은 "웃음을 먼저 배워야 하는 사람"이라며 남편에겐 이 사실을 숨긴 채, 냉대를 받으면서도 방송국 PD를 찾아가 철 없는 용기를 위해 고개를 숙인다.
우연히 아내의 상태를 알게 된 용기, 그렇지만 아무 것도 해줄게 없다.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기에 정연의 마지막 추억을 찾아주려 나선다. 그러다 아내가 자신 말고 평생을 걸쳐 사랑한 첫사랑의 존재도 알게 되고 그를 수소문한다. 또 마지막 시간이 가까워져가는 정연을 위한 공연까지 선물한다. 이정재와 이영애의 절제된 담담한 연기가 눈물샘을 자극하고 첫사랑 찾기의 재미도 쏠쏠하다.
'국화꽃 향기' 역시 아내 희재(장진영)가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인하(박해일)가 대학 시절 우연히 만난 희재에게 첫 눈에 반해 고백하고, 희재는 그저 한 때의 열정으로 치부한 채 거절한다. 세월이 흘러 어느 덧 라디오 PD가 된 인하이지만 여전히 희재를 잊지 못하고 라디오 방송에 자신의 사연을 넣어 마음을 전한다. 인하의 끈질긴 구애 끝에 두 사람은 뒤늦게 사랑을 이루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이들의 가슴 절절한 사연과 성시경의 OST '희재'가 어우러져 눈물을 쏙 빼놓는다.
반면 'ing'는 시한부 여고생 민아(임수정)와 대학생 영재(김래원)의 풋풋한 로맨스를 담았다. 운명적 사랑을 꿈꾸는 평범한 소녀 민아. 근거 없는 기대 속에 살고 있는 가운데 아래층에 건들 거리는 영재가 이사오면서 따분했던 일상이 들썩이고 로맨스가 다가온다. '내 아내의 그녀' 속 임수정이 여고생이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민아 캐릭터는 톡톡 개성이 튀고 마성의 매력이 살아 있다. '옥탑방 고양이' 속 김래원 특유의 능글맞은 연기도 감상할 수 있다.
'오버 더 레인보우'는 기상캐스터 진수(이정재)가 우연히 교통사고를 당한 뒤 부분 기억상실증에 걸리면서 벌어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8년 동안 자신이 사랑해온 연인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 것. 이에 대학친구 연희(장진영)에게 도움을 청하고 함께 사랑 찾기에 나서면서 결국 두 사람이 사랑을 싹틔운다는 내용이다. 무지개빛처럼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감성을 저격한다.
◆ 판타지 멜로, 다른 시간 속 같은 사랑 꿈꾼다
'동감', '시월애'는 요즘처럼 타임슬립 소재가 흔히 쓰이지 않았던 시기인 2000년도에 나온 주옥 같은 판타지 로맨스물이다.
'동감'은 1979년에 살고 있는 여대생 소은(김하늘)과 같은 대학교에 재학 중이지만 2000년도에 머물고 있는 지인(유지태)이 낡은 무선기를 통해 교신을 주고받으면서 감정도 교감한다는 스토리다. 21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서로의 다른 시간속에서 각자의 사랑과 우정을 얘기하며 같은 마음이 되어간다. 과연 이들은 시간의 간극을 극복하고 실제로 만날 수 있을까. 유지태와 김하늘에게 지금의 멜로킹·퀸 수식어를 얻게 해주는데 크게 기여한 작품이다.
'시월애'는 1998년 이사온 곳에서 '1월에는 눈이 많이 왔다.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한 통의 편지를 받은 성현(이정재)의 의문 속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편지에 있던 내용들이 예언과도 같이 현실에 펼쳐지고 알고 보니 이는 1999년, 2년 후로부터 온 편지였다. 편지를 보낸 주인공은 바로 은주(전지현). 이 믿기지 않는 일이 실제임을 깨닫고는 두 사람은 우편함에 매일 같이 작성한 편지를 놓으며 소통한다. 이 편지는 사랑을 싣고 오가지만 서로가 눈치 챘을 땐 이미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은주는 과연 성현의 위기를 막을 수 있을까. 전지현과 이정재의 멜로 케미도 인상적이지만 연예계 대표 비주얼들의 위엄이 돋보이며 또 한 번 감탄을 자아낸다.
◆ 동성애 간접적으로 다룬 멜로물 '번지점프를 하다'
'번지 점프를 하다'는 겉으로 보면 "몇 번을 죽고 다시 태어나도 널 사랑하겠다. 진정한 사랑은 단 한 번 뿐. 사람은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는 심장을 가졌다"는 이병헌과 이은주의 로맨스이지만 이 같은 '운명' '환생'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동성애 코드까지 매끄럽게 녹여낸 작품이다. 서인우(이병헌)가 첫 눈에 반한 인태희(이은주)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고등학생 임현빈(여현수)으로 환생한다. 교사인 인우는 현빈에게서 그녀를 떠올리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다시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 평범하지만 아주 특별한 사랑 이야기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보습학원 강사 원주(전도연)가 노총각 은행원 봉수(설경구)를 짝사랑하면서 벌어지는 스토리를, '봄날은 간다'는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 분)와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이영애 분)의 시작하고 헤어지는 보통의 연애를 그렸다. 특히 '봄날은 간다'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면 먹고 갈래요"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후아유'는 이나영과 조승우의 청춘 로맨스물이다. 채팅 사이트에서 만난 두 사람이 현실에서도 인연을 이어간다는 내용. '아는 여자'는 눈높이 특이한 여자 한이연(이나영)의 눈치코치 없는 러브 스토리를 담았다. 동치성(정재영)의 그냥 좀 아는 여자 말고, 가슴 속 특별한 여자로 남기 위해 직진 로맨스를 펼친다.
◆ 순애보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철수(정우성)와 '안녕! 유에프오'의 상현(이범수),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간직한 남자들이다. 이들에겐 그 어떤 고난, 역경, 편견, 불치병도 문제될 게 없다.
먼저 철수는 치매에 걸린 젊은 아내 수진(손예진)바라기다. 그녀가 이름도, 나이도, 사랑했던 자신조차도 모든 기억을 잃어가고 있지만 그럴수록 더욱 견고한 사랑의 힘을 보여준다.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라는 달콤한 작업 멘트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미모 최전성기 시절의 정우성과 손예진의 모습 또한 감동을 자아낼 정도다.
'안녕! 유에프오'에서는 노총각 버스 운전사 상현의 어린 시절 UFO를 통해 세상을 딱 한번 본 적이 있는 선천적 시각장애인 경우(이은주)를 향한 순애보를 그린다. 상현은 사실 혼자 놀기의 달인이었다. 홀로 사연도 쓰고 DJ까지 1인 다역을 맡아 '박상현과 뛰뛰빵빵'이라는 짝퉁 교통방송을 매일 녹음, 자신이 운전하는 버스에 튼다.
경우는 매일 같이 이 버스를 타고 퇴근하던 승객으로 이 라디오가 실제인 줄 믿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상현과 ?구를 맺게 되고 이 방송에 대한 핀잔을 늘어놓는다.
상현은 결국 얼떨결에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속이고 박평구라는 가짜 이름을 얘기한다. 그렇게 이중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어느새 경우에게 푹 빠져 버린다. 이후 그의 방송은 그녀를 위한 사연과 음악으로 가득 채워진다. 상현은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경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男·女
'클래식', '연애소설'과 '그해 여름'은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클래식'은 엄마 주희(손예진)는 못 이뤘던 첫 사랑을 딸 지혜(손예진)가 결국 이루게 된다는 내용이다. 1960~70년대와 현재라는 30여 년의 시간차를 넘나들며 러브스토리를 그려 향수를 자극한다. 소품으로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며 지혜와 상민(조인성)의 사랑이 필연에 의해 연결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손예진의 1인 2역 연기와 조인성과의 케미가 환상적이다.
'연애소설'은 차태현, 이은주, 손예진 세 사람의 찬란한 우정과 엇갈린 사랑을 그린다. '그해 여름'은 카리스마 배우 이병헌의 멜로물이다. 대학생 윤석영(이병헌)이 서울에서 농촌봉사활동을 떠나고 그곳에서 만난 순박한 시골처녀 서정인(수애)에게 첫 눈에 반해 사랑을 나눈다는 풋풋한 스토리를 담았다. 그해 여름 뜨겁게 사랑했지만 예상 못 한 시련이 닥치면서 이별을 맞게 되면서 새 국면을 맞게 되고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전개가 흐른다.
◆ 강동원과 이나영의 감성 멜로 '우행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공지영 작가의 동명의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사형수 정윤수(강동원)와 툭하면 자살을 시도하는 염세주의자 대학강사 문유정(이나영)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무의미한 삶을 보내던 두 사람이 교감을 나누고 서로에게 세상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의 기쁨을 깨닫게 해준다. 강동원과 이나영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일품이다.
[사진 = 각 영화 포스터]김나라 기자 nara927@mydaily.co.kr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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