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김기덕 감독은 절박했다. 1,000만원을 들고 일본으로 떠났다. 시나리오, 소품, 조명, 촬영, 편집, 연출 등 1인 시스템으로 ‘스톱’을 만들었다. 현지에서 캐스팅한 일본배우들은 스태프 일까지 해가며 영화 완성에 일조했다. 그는 왜 이토록 절박하게 영화를 만들었을까.
원전사고는 재앙이다. 한번 터지면 되돌릴 수 없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원자로 1기가 문제였지만, 후쿠시마에선 원전 3기가 동시에 망가졌다. ‘죽음의 재’로 불리는 핵분열 생성물이 체르노빌의 10배나 쌓였다. 간 나오토 총리는 “일본의 절반이 날아갈 뻔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10만명 이상이 난민이 됐고, 원전 주변 20킬로미터 일대가 살기 어려운 땅으로 변했다.
두려웠다. 제2의 후쿠시마 사태가 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이 20기를 건설 중이고, 추가로 41기를 건설한다는 소식에 겁이 덜컥 났다. 중국 동해안에서 원전사고가 나면 바람을 타고 고스란히 한국을 덮친다. 새롭게 건설 중인 60개 원자로 중 39개가 아시아에서 건설되고 있다. 아시아는 이제 원전 재앙의 진원지다.
‘한국은 지진에서 안전하다’는 잘못된 신화는 지난 9월 경주 지진으로 깨졌다. 규모 5.8의 강진은 한반도를 뒤흔들었다. 화들짝 놀란 정부는 정밀점검에 들어갔다. 지역주민과 시민단체는 원전 가동 중단을 외쳤지만, 정부는 지난 12월 6일부터 월성 1~4호기 가동을 시작했다. 국민은 불안에 떨고 있다.
김 감독은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한국이랑 별로 상관이 없잖아’라는 제한된 상상력을 넘어서 동아시아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확장된 상상력을 발휘했다. 한정된 상상력은 재앙을 초래하는 지름길이다.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간파했듯, 언제든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건설적 편집증’이 안전을 담보한다. 지진은 예고없이 닥치고, 원전은 언제든 폭발할 수 있으며,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여러 국가가 동시 다발적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상상력이 인류를 구원한다.
김 감독은 언제나 ‘구원’을 다룬다. 서구에서 김 감독을 흠모하는 이유다. ‘스톱’에서도 구원의 가능성을 묻는다. 후쿠시마에서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는 구원 받을 수 있을까.
아이를 구원하는 길은 원전폐쇄 밖에 없다. 원전을 없애고 대체 에너지, 친환경 에너지를 늘려야한다. 그것은 언젠가 닥쳐올 미증유의 재앙으로부터 인류를 살려내는 일이다.
[사진 제공 = 김기덕 필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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