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시스템의 문제다.
홍아란(KB)이 임의탈퇴를 결정했다. 부상 이후 심신이 지쳤다며 팀을 떠났다. 최근 WKBL은 올 시즌 직전 임의탈퇴한 이승아(우리은행)와 함께 국가대표 가드만 둘을 잃었다. WKBL 선수들의 갑작스러운 임의탈퇴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수년 전부터 있었다. 단지, 이름이 알려진 이승아와 홍아란이라서 좀 더 부각될 뿐이다.
때문에 이 문제를 단순히 이승아와 홍아란 개개인의 문제로 접근하는 건 곤란하다. WKBL뿐 아니라 KBL,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배구에도 매년 운동이 싫어서 임의탈퇴 형식으로 팀을 떠나는 선수는 적지 않다. WKBL의 시스템에서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WKBL은 KBL과는 달리 선수들이 고교 졸업 후 뛰어드는 구조다. 물론 대학을 거치고 들어오는 선수들도 있지만, 대부분 유망주는 고졸이다. 고졸들이 10~15년 이상 차이가 나는 주축 선수들의 벽을 뚫는 게 쉽지는 않다. 몸과 몸이 부딪히는 농구의 특성상 육체적으로 힘들다. 심리적인 위축도 상당하다는 게 농구관계자들 설명이다. 강인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키우는 지도자들의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WKBL은 시간이 흐를수록 유망주들의 성장이 쉽지 않고, 주축 선수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심화된다. 어쩔 수 없이 몸이 아파도 참고 뛰는 주전들도 적지 않다. 주축들은 주축대로, 유망주들은 유망주대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다. 임의탈퇴 선수는 점점 늘어난다. 여자농구의 전체적인 파이는 계속 줄어든다. 지금도 각 구단에 그만두고 싶어하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 설명이다. 한국 여자농구 위기의 실체다.
여자 대학농구를 활성화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간 대학에서 실력을 키우고, 정신적으로 성숙된 상태로 WKBL에 입성해야 임의탈퇴로 갑자기 팀을 떠나는 선수들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예산문제로 남자부도 겨우 운영하는 대학이 적지 않다. 또 여중, 여고의 인재 풀이 갈수록 좁아지면서 여대부의 수준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다. 대학 입장에선 여대부의 안정적 운영이 쉽지는 않다.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할 부분이다.
근본적으로 WKBL과 대한민국농구협회 차원에서 계속 위축되는 여중, 여고농구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 문제는 결국 여자농구의 구조적인 문제, 즉 쓸만한 선수가 적은 현실이 근본적 원인이다. 쉽게 말해 이승아와 홍아란같은 선수가 10명~100명 더 있으면 임의탈퇴 러시는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다.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은 "외국선수들에게 물어보니 WNBA는 선수가 많아서 선수 스스로 그만둔다고 하기 전에 알아서 먼저 밀려나는 구조다. 결국 여자농구 인프라가 부족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프로선수는 개인사업자다. 이승아와 홍아란이 농구판을 떠난 건 본인들이 택한 인생의 일부분이다. 그 자체로 개개인을 무조건 비난만 할 수도 없다. 한 차례 팀을 떠났다가 돌아온 최은실(우리은행)은 "나가보니 사회생활이 힘들다는 걸 알았다"라면서도 "나간 선수들이 각자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양지희(우리은행)도 "나도 예전에 나가고 싶었을 때가 있었다. 감독, 코치님이 붙잡아주셨다. 그래도 팀을 떠나는 선수들의 이유는 다 다르다. 내가 어떻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라고 조심스러워 했다.
다만, 위 감독은 "홍아란이 시즌 중간에 나간 건 무책임하다. 팀 분위기가 어떻게 되든지 상관 없다는 말인가. 처음부터 올 시즌 연봉계약을 하지 말아야 했다. 그게 프로선수로서 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일갈했다. 임의탈퇴 러시로 감독 입장에선 팀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면서 뒷수습을 하는 게 과제다. 위 감독은 "WKBL 감독들은 선수들이 그만둔다고 할까봐 눈치볼 수밖에 없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수년 전부터 WKBL와 농구협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그러나 저출산 시대로 접어든 대한민국의 특성상 시간이 흐를수록 청소년 인구가 줄어들 게 뻔하다. 이미 수년 전부터 엘리트농구에 뛰어드는 선수들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요즘 신체조건이 좋은 젊은 학생들은 힘든 운동보다 연예인, 모델 등을 동경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결국 이 문제는 딜레마에 부딪힌다.
또 하나. 임의탈퇴 선수들이 WKBL에 복귀하는 케이스에 대한 시선도 다양하다. 일각에선 임의탈퇴한 선수를 1~2년 후 다시 받아주는 구단이 늘어나면서 다른 선수들도 분위기에 편승돼 임의탈퇴를 원하는 경우가 늘어난다는 지적도 한다. 한 관계자는 "'지금 힘드니까 당분간 쉬고 나중에 다시 받아달라고 하면 되겠지'라는 분위기가 생긴 것 같기도 하다"라고 했다. 이런 상황서 다른 선수들이 동요하고, 팀 분위기가 나빠지는 악순환이 생긴다.
그렇다면 혹시 WKBL이 규정을 손질, 임의탈퇴한 선수에게 제도적으로 2~3년 정도 복귀를 금지시키는 건 의미가 있을까. 한 지도자는 "임의탈퇴 이후 다시 농구가 그리워질 때 받아주면 다른 선수들도 힘들면 그만뒀다가 다시 오려고 할 것이다. 팀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친다. 나중에 제도를 다시 바꾸더라도 일단 해볼 만 하다고 본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최은실, 이선화(이하 우리은행)처럼 유턴 케이스도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WKBL에 쓸만한 선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임의탈퇴를 막으려고 1~2년 이상 복귀 금지조치를 내리면 나중에 아쉬운 건 구단들이다. 선수 1~2명이 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수들이 나중에 돌아올 걸 염두에 두고 나가겠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나중에 돌아오고 싶어하는 선수들도 아직은 소수"라고 했다. 인프라 문제가 심각한 WKBL서 그런 방식의 페널티는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WKBL 선수들의 임의탈퇴 러시는 단기간에는 뾰족한 묘책이 보이지 않는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제도적,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WKBL과 농구협회가 장기적 차원에서 딜레마를 해결하면서 대안을 구체화해야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홍아란(위), 이승아(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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