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익숙한 것을 완전히 새롭게 만든다는 것, 예술가에게는 큰 재미이자 어떤 면에선 고통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고, 익숙한 이야기로 낯선 매력을 준다는 것 역시 생각보다 어렵다.
그러나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보기 좋게 예술인의 재미를 보여주고 있다. 익숙한 것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면서 인식을 바꾸고, 낯선 매력을 주고 있다. 해로 서거 400주년을 맞는 셰익스피어의 동명 작품의 플롯을 차용하여 각색한 작품으로 핵전쟁 이후 생겨난 돌연변이와 인간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아내 전혀 다른 이야기로 관객을 마주하고 있다.
뮤지컬배우 김수용은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예술가의 재미와 고통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극중 줄리엣의 오빠인 티볼트 역을 맡아 익숙함으로 낯선 매력을 주는데 일조하고 있다.
김수용 역시 이런 낯선 매력으로 인해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 끌렸다. 대본을 본 순간부터 좋은 느낌을 받았다. 연습하며 수정하고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도 ‘독특하고 재미있는 작품이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은 계속됐다.
“처음에 작품 제의를 받았을 때 김수로 형님이 ‘로미오와 줄리엣인데 굉장히 새롭게 만들 거야’라는 말을 들었어요. ‘굉장히 새로워지겠구나’ 싶었죠. 이 공연이 세상에 나가는 순간 보시는 분들에게 색다른 쾌감을 줄 수 있을 거라 확신했어요. ‘로미오와 줄리엣’ 하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막연한 기대감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강한 단어를 쓰자면 우리들의 개념이 배신당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고전적이고 러블리 하기보다 가슴 아프고 불친절한 작품이죠.”
다행히 관객들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김수용이 바랐던 것처럼 새로운 ‘로미오와 줄리엣’ 그 자체로 받아들여주는 관객들이 많았다.
김수용은 “‘로미오와 줄리엣’ 세계관에 반하는 건 있지만 뭔가 몰입할 요소가 없는 작품은 아니다”며 “어떻게 진행이 될지 의문이 생기는 작품이고 그것 때문에라도 보게 되는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새로운 게 분명히 있을 거예요. 저 역시 어떻게 구현될까 궁금했죠. 일단은 영상으로 보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것, 기본적으로 분장 기술의 밀도에 따라 굉장히 달라질 작품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선 모든 것들이 잘 조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연기는 당연히 기본이고요. 다행히 이질감 없이 좋게 받아들여주시고 있어요.”
줄리엣의 오빠 티볼트는 어떻게 해석했을까. 김수용은 “기본적으로 원작과 정말 다른 캐릭터라 생각했다”고 운을 뗐다.
“원작에서 티볼트와 머큐쇼는 가문이 대립에서 싸우는데 또 달리 생각하면 철없는 아이들이 싸우다 말도 안되는 사고사를 당하는 걸로 해석할 수 있잖아요. 근데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사고사는 커녕 애초에 개념 자체가 ‘너희들을 다 없애버리겠다’는 개념이 있다 보니까 단지 시기의 문제지, 언젠가는 부딪힐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삶을 산 친구들이에요. 그렇게 되어야만 했던 이유가 원작보다 확실한 인물이죠. 조금 더 자신의 방향성이 뚜렷한 인물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티볼트를 단순히 상대 가문을 싫어하는 인물로 보지 않았다. 그냥 싫어하는, 자존심이 있는 인간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인간적이긴 하지만 지금 처해있는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자의와 전투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전투에 임하는 용맹을 캐릭터에 불어 넣었다.
“티볼트가 사는 세상은 누구 하나 믿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에요. 동료도 못 믿고 친구도 못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정말로 처해 있다면 어딜 나가도 내 목숨이 위협 받는 상황인 거고 어딜 가도 전기, 물 등이 없는 황량한 세상이고 하다못해 위에 올라가면 제대로 숨도 쉬고 살 수 없을 정도잖아요. 정말 말 그대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조건과 요건에서 살고 있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과 개념은 약간 다른 것들을 갖고 있지 않을까요? 분명히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을 거지만 티볼트는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그렇게 되어버린 거죠.”
물론 그로 인한 어려운 점도 많았다. 티볼트의 성격과 환경 등에 대해 세심하게 생각하다 보니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놓고도 굉장한 고민이 뒤따랐다. 고민 끝에 ‘티볼트는 밖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인물이 아니다. 시니컬하고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느낌, 주변 사람들이 봤을 때 알 수 없는 위압감과 에너지를 느끼는 인물. 동생마저도 그런 오빠의 모습을 보고 멀리하게 되는 인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제가 이제까지 해왔던 캐릭터와 성격적으로 달라서 그런 부분은 힘들었어요. 그걸 계속 유지해 가는 게 힘들었죠. 제한된 상황에서 에너지와 그 사람의 정서를 납득시키는 게 어렵긴 해요. 그래도 티볼트라는 사람의 아픔은 제대로 갖고 있으려 했어요. 추상적이긴 하지만 그 아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내가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죠. 사실 저랑은 완전히 다른 인물이에요. 반대되는 성격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내 소중한 사람이 다치고 아프면 진짜 못 참는다는 것들은 많이 공감됐어요.”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복잡한 무대를 배경으로 액션 비중이 높다. 아니나 다를까. 김수용 역시 “악전고투하고 있다. 모두가 버텨줘서 고맙다”고 입을 열었다.
“눈 깜짝할 사이 시간이 지나가고 있네요. 지금은 많이 몸에 익어서 그나마 예상치 못하게 다치는 건 없지만 조금씩 부상도 있고, 특히 앙상블 배우들이 잘 해주고 있어요. 지금 저희는 전우애가 있어요.(웃음) 공연을 무사히 끝내고나서 ‘우리 전쟁하는 것 같아. 너희들에게 전우애가 느껴진다. 대박이다’ 이런 얘기를 한 적도 있어요. 사실 전 몸 쓰는 게 되게 재밌어요. 연습실에서 연습하다 무대로 옮기는 과정이 힘들긴 해도 적응 하고나면 정말 재밌어요.”
신인 시절 데뷔를 한 두산아트센터에서 이제는 큰형으로 무대에 서는 것 역시 감회가 새롭다. “큰 형이라니 기분이 이상하더라. 데뷔도 여기서 했는데 정말 새롭다”며 배우 인생을 돌아봤다.
“무대는 항상 고향 같아요. 사실 아역배우로 시작해서 성인이 되어서도 연기자를 계속 함에 있어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요. 그 때 무대에 서게 됐고 제가 많은 것들을 가져다 줬어요. 그런 만큼 항상 주어진 것들을 열심히 하고 싶어요. 뭔가를 더 해보겠다는 욕심을 갖기보다 지금의 것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싶어요. 과한 욕심이 아니라 정말 작더라도 옹골차게 꽉 꽉 반죽을 좀 더 다질 수 있는 쪽으로 풀고 싶어요. 반죽 위에다가 덧입히고 싶진 않아요. 오히려 내가 해나가는걸 단단하게 모으고 잘 뿌리 내리는게 중요하죠. 뿌리가 엉망이면 가지에 뭐가 달린다 하더라도 꺾이고 말아요. 이 에너지 넘치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통해, 또 앞으로도 힘 닿는 데까지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뮤지컬배우 김수용. 사진 = 송일섭기자 andlyu@mydaily.co.kr]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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