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박영순의 커피와 건강]
“커피가 간암을 고치나요?”
커피인문학을 강의할 때 이런 질문이 나오면 난감하다. 간암 환자와 그 가족들로서는 믿고 싶은 이야기이고, 커피애호가라면 커피의 효능을 자랑하기 좋은 소재이겠다. 그러나 커피의 효능이 과장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커피가 건강에 유익하다는 소식이 잦아지고 있지만, 암과 관련해서는 ‘예방 수준’이지 ‘치료 차원’이 아니다.
의학계에서 간(肝) 건강과 커피의 상관성을 입증하는 논문들은 대체로 메타분석(Meta-analysis)의 결과들이다. 관련이 있는 여러 연구들을 통계적으로 종합하고 분석해 타당한 결론을 도출한 것이지 커피의 특정 성분이 간암을 치료하는 메커니즘을 밝힌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메타분석이 비과학적이거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커피에 들어 있는 카페인이나 폴리페놀 성분이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구체적인 경로를 규명하지 못했다고 해서 실제 현상으로 벌어지는 것을 외면해선 소중한 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
미국의 세티아완 박사는 18년 동안 다양한 인종의 성인 18만 명을 추적 조사해 “하루에 커피를 1~3잔 마신 사람들이 그보다 덜 마신 사람에 비해 간암에 걸릴 위험이 29% 낮고, 하루 4잔 이상 마시는 사람은 42%나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2014년에 나온 이 발표를 계기로 커피의 항암효과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커피가 간 건강에 유익한 것은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 항산화제, 폴리페놀 등 100여 가지의 활성 물질이 간수치(AST·ALT)를 줄여 주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간에 염증이 생기면 특정 효소(AST·ALT)가 흘러나온다. 이 수치가 낮아진다는 것은 염증으로 인해 더욱 심각한 질환이 생길 위험성을 커피가 줄여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미국암협회는 “커피가 간암 외에 두경부암, 대장직장암, 전립선암, 식도암, 췌장암 등 다양한 암의 위험을 낮출 수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라는 견해를 내놨다.
이듬해 미국국립당뇨병 소화기&신장질환연구소는 커피를 하루 2잔 가량 규칙적으로 마시면 간의 섬유화를 줄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섬유화는 간염을 간경화로 악화시킬 수 있는 무서운 현상이다. 헬싱키대학 연구팀도 커피를 마시면 혈청 감마지티(GGT) 수치가 낮아지는 사실을 확인했다. 감마지티 수치가 높을수록 간암이 발병할 위험성이 커진다. 앞서 2009년에는 이탈리아 약리학연구소는 “커피를 자주 마시는 사람들은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간암에 걸릴 확률이 41% 낮고, 간경화 위험을 최고 70%까지 감소시킨다”고 커피과학학회에 보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연구는 커피가 어떻게 해서 간암을 예방하고 간경화에 걸릴 위험을 줄이는 지를 생물학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더욱이 커피가 간암은 둘째 치고 나빠진 간 상태를 호전시킨다는 물증조차 되지 못한다. 간암 예방과 간암 치료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이야기이다. 커피는 간암 환자에게는 자극적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할 음료로 분류된다.
지금 이 순간, 커피가 간암을 치유하거나 병든 간을 호전시킨다는 의학적 보고는 없다. 단지 커피를 적절하게 마시는 것과 간암에 걸리지 않는 조사 결과 간에 연관성을 보이는 수준이다. 좋은 커피를 적절하게 규칙적으로 마시면 건강관리에 유익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커피가 암을 치료한다는 식의 커피만능주의는 국민건강을 되레 해칠 수 있다. 커피를 사랑하는 애호가일수록 커피의 역할을 과장되게 전파해서는 안 된다.
[사진설명: 커피가 건강에 좋다는 의학계의 보고가 이어지면서 커피열매에 깃들어있는 가능성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은 필자가 지난 12월 콜롬비아 킨디오주에 있는 라 모렐리아 농장에서 커피체리를 손수확하는 모습. 제공=커피비평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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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필자는 뉴욕 CIA 향미전문가, 프랑스 보르도 와인블렌딩, 일본 사케소믈리에, 이탈리아 바리스타. 미국커피테이스터, 큐그레이더 등 식음료관련 국제자격증과 디플로마를 30여종 취득한 전문가이다. 20여년간 일간지에서 사건 및 의학전문기자를 지냈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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