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식스센스’ 이후로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초자연적 세계 또는 현상에 깊은 천착을 드러냈다. 지난 몇 년간 그의 작품이 대중의 외면을 받았지만, 인간 정신의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23 아이덴티티’는 샤말란 감독의 건재를 알리는 스릴러이자, 향후 계획 중인 ‘샤말란 유니버스’를 향한 첫 출발점이다.
23개의 인격을 가진 남자 케빈(제임스 맥어보이)은 자신 안에서 언제 누가 등장할지 모르는 인격들 사이를 오간다. 케빈은 지금까지 등장한 적이 없는 24번째 인격의 지시로 3명의 10대 소녀를 납치하고 비밀스러운 일을 꾸미는 한편, 자신을 이해해주는 정신과 박사 플레처(베티 버클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1977년 강간, 납치 등으로 수감된 빌리 멀리건이 세계 최초로 24개 인격이 존재한다는 정신감정을 통해 최종 무죄를 선거받은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 영화는 인간 정신의 무의식 영역에서 작동하는 불가해한 인격 변화를 숨 막히는 심리 스릴러로 담아낸 작품이다.
어렸을 적 학대의 경험을 갖고 있는 케빈,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고 신중한 배리, 강박증을 갖고 있는 데니스, 미스터리한 패트리샤, 천진난만한 9세 소년 헤드윅, 플레처 박사를 신뢰하는 오웰, 당뇨병을 앓고 있는 제이드, 인간 이상의 존재 비스트 등 23개의 성격이 수시로 뛰쳐나와 10대 소녀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과정이 시종 섬뜩하게 펼쳐진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극중에 주로 등장하는 8개의 인격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괴물 같은 연기로 관객의 심리적 압박감을 높인다.
10대 소녀들의 탈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릴, 사건의 실마리를 풀려는 플레처 박사와 이를 막으려는 케빈과의 두뇌싸움 등이 신경세포를 자극하며 긴장감을 끌어 올린다.
미로 같은 지하공간의 폐쇄공포 속에 소녀들이 언제 어디로 끌려갈지 모르는 불안감을 녹여내는 솜씨는 여전히 샤말란이 스릴러의 거장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유년 시절의 아픔을 간직한 채 수시로 탈출 기회를 엿보는 케이시 역의 안야 테일러 조이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샤말란 감독은 극의 마지막에 우리가 모르는 초자연적 무의식의 세계를 불러내 자신이 과거에 만들었던 전작과 연결시키는 ‘샤말란 유니버스’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의 ‘센스’는 여전히 살아 있다.
[사진 제공 = UPI]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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