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뮤지컬배우 서지영이 그토록 기다리던 ‘뮤지컬 밑바닥에서’를 다시 만난다. 처음 무대에 서고 꼬박 10년을 기다렸다. 그간 다양한 뮤지컬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했지만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그녀에게 유독 기다려진 작품이다.
‘뮤지컬 밑바닥에서’(연출 왕용범)는 원작 희곡의 배경인 지하실에서 선술집으로 작품 배경을 바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풀어내는 작품. 서지영은 극 중 배경이 되는 선술집의 주인이자 페페르의 누나인 타냐 역을 연기한다.
10년 전 서지영은 ‘뮤지컬 밑바닥에서’에서 순수한 소녀 나타샤를 연기했다. 이번 시즌에서는 남모를 아픔을 간직하고 굴곡진 삶을 살아가는 타냐 역으로 분해 한층 성숙해진 연기력을 뽐낼 전망이다.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10년 동안 늘 하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운을 뗀 서지영의 얼굴에는 감격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10년간 대극장 무대에 주로 섰던 탓에 소극장에 대한 갈망도 많았고, 그 중에서도 작품에 대한 확신과 사랑이 있는 ‘뮤지컬 밑바닥에서’ 무대에 서고 싶었다.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모든 캐릭터의 깊이감이 달라요. 감정이 진짜 밑바닥까지 가거든요. 사실 배우들은 그런 감정들에 목말라 있어요. 아주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싶은 갈증이요. 그런 의미에서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그런 게 어느 정도 해소되는 작품이죠. 또 소극장 무대이다 보니 관객 앞에서 더 가까이 호흡을 주고 받을 수 있어 좋아요. 10년간 대극장 무대로 관객들을 만나다 바로 앞에서 만나려니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서기도 하지만 적응하면 정말 매력적일 거라는 걸 알아요. 그리워만 하다가 이번에 다시 출연하게 돼서 너무 기뻐요.”
소극장부터 시작했던 배우이기 때문에 10년만에 소극장 무대에 선 그는 한층 리프레쉬 되는 느낌을 받고 있다. “뮤지컬 하면서 20여년 경력이 되다 보니 항상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긴 해도 과거 막내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고 입을 연 서지영은 “요즘 소극장 뮤지컬 연습을 하다 보니 그 때 생각이 나고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 같다. 더 젊어졌다는 생각도 들고 해왔던 거지만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고백했다.
서지영은 ‘뮤지컬 밑바닥에서’와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때문에 더 작품에 대한 사랑이 깊어졌고 기다려졌다.
10년 전 ‘한국 뮤지컬대상시상식’에서 시상자로 나선 그녀는 소극장 뮤지컬인 ‘뮤지컬 밑바닥에서’가 다수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관심을 가졌다. 또 거기서 연출 파트를 시상하게 돼 “‘뮤지컬 밑바닥에서’ 왕용범 연출”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서지영은 이후 왕용범 연출과 결혼했다.
당시 왕용범 연출도 모르고 ‘뮤지컬 밑바닥에서’라는 작품을 처음 접한 그는 문득 이 작품이 너무 궁금해졌다. 그래서 작품을 찾아보게 됐고, 친구와 함께 관람까지 하게 됐다. 그 때 왕용범 연출을 만났다. 왕연출은 당시 인기 뮤지컬스타 서지영 등장에 팬임을 숨기지 않았다.
당시 공연을 본 뒤 서지영은 출연 배우들과 함께 뒷풀이 자리까지 함께 하게 됐고 그렇게 왕용범 연출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후 서지영은 ‘뮤지컬 밑바닥에서’ 출연 제의를 받게 됐고, 작품에 출연하고 이후에도 왕연출과 작품을 함께 하게 되면서 결혼까지 골인하게 됐다. 배우로서도 많은 감정을 해소하게 해줬다. 그러니 “운명적인 작품”이라고 말 할만도 하다.
그렇다면 10년만에 다시 만난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어떤 느낌일까. 서지영은 “해봤던 작품이니 쉽지 않을까 했는데 내 안에 갇혀 있는 부분이 있어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10년 전에 봤던 타냐에 내가 갇혀 있더라고요. 당시 내가 했던 역할이 아닌데도 제 안에 나름대로의 타냐가 있었나봐요. 어느날 문득 연출님이 그 부분에 대해 꺼내주셔서 그 때 깨달았어요. 배우들은 캐릭터를 구축할 때 자기 자신에서부터 시작을 하거든요. 근데 저는 예전 타냐부터 시작했던 거예요. 그러니 감정이 내 것이 아닌 느낌이었던 거고요. 그런 부분을 깨닫고 나서는 다시 제 자신에서부터 시작했어요.”
10년 전 연기했던 나타샤와 현재 타냐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인물. 밝고 희망적이었던 10년 전 나타샤와 완전히 상반되는 타냐는 아픔도 많고 숨기는 것도 많다. 굴곡진 삶을 살아온 탓에 터프하고 강하게 보이려 하지만 사실은 연약한 인물이다.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올 수밖에 없다.
“타냐에게서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타냐처럼 누구나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잖아요. 타냐의 경우 굉장히 극단적인 것도 있긴 하지만 다 이해할만한 상처들이라 공감이 될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세상 풍파를 다 겪고 모든 걸 초월한 타냐를 보면서 또 한편으로 위로가 되길 바라요.”
확실히 10년이 흐르니 배우로서 느끼는 점도 다르다. 자신이 10년간 성장하고 성숙해졌다는 것을 많이 느끼는 요즘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뮤지컬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옛날 특유의 느낌으로 연기를 했었다”며 “왕용범 연출님을 만나 계속 공연을 하면서 많이 고치게 됐다”고 말했다.
“아직도 멀었지만 어느 정도 나를 좀 놓고 연기하게 됐어요. 나를 놓고 호흡도 놓고 힘을 빼게 된 거죠. 사실 힘 빼는 연기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데 어느 순간 조금씩 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연기가 편해지더라고요. 주위에서도 좋아졌다는 말을 듣게 됐고요. 또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연기적으로 굉장히 많은 도움이 돼요.”
인간 서지영에게도, 배우 서지영에게도 왕용범 연출은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남편으로서, 동료로서 참 많은 깨달음과 배움을 얻게 한다.
“일적으로 함께 할 때 왕용범 연출님은 중요한 포인트를 굉장히 잘 집어내서 좋은 연출이라는걸 많이 느껴요. 같이 계속 작품을 하는게 남편이라서가 아니에요. 왕연출님 만큼 배우를 많이 보여지게 하고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분은 만난적이 없어요. 그래서 같이 작업하는데 있어서 배우로서 너무 좋고 편하죠. 강압적이지 않고 자유롭게 놔두시거든요.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연출님이 말씀하신 의도대로 이해를 하게 돼요. 신기하죠. 남편으로서는 10년째 변함이 없어요. 무뚝뚝할 것 같지만 정말 제가 0순위라는 걸 느끼게 해줘요. 일할 때와는 완전히 달라요. 제 앞에서만 달라지죠.(웃음)”
왕용범 연출의 꽉 찬 사랑과 동료로서의 믿음, 또 배우로서 자긍심 덕에 서지영은 여전히 발전중이다. “한국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게 굉장히 힘들다”고 밝힌 서지영은 “이제는 정말 많이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고 털어놨다.
“나이도 들었고, 많은 일들을 겪어오면서 지금의 내가 됐어요. ‘뮤지컬 밑바닥에서’처럼 저 역시 밑바닥부터 배우 생활을 시작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많이 겪었거든요. 지금은 최대한 내려놓게 됐고,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려 해요. 지금은 ‘뮤지컬 밑바닥에서’에 집중해야죠. 저처럼 10년간 이 작품을 기다린 팬분들도 있으니까요.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내 삶은 그래도 희망이 있다. 그래도 한 번 살아보자’고 위안 받고 가면 좋겠어요.”
한편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오는 오는 3월 9일부터 5월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 블루에서 공연된다.
[뮤지컬배우 서지영. 사진 = 쇼온컴퍼니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