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
걸어가지 못하는 길을
나는 물이 되어 간다.
흐르지 못하는 길을
나는 새벽안개로 간다.
넘나들지 못하는 그 길을
나는 초록으로 간다.
막아도, 막혀도
그래도 나는 간다.
혼이 되어
세월이 되어.
정동묵 시인의 시 ‘꼭 가야하는 길’ 전문이다. 이 시는 꿈을 이루려는 화자의 간절함이 배어있다. 걸어가지 못하고, 흐르지 못하고, 넘나들지 못하는 길을 물-새벽안개-초록으로 뚫고 가겠다는 의지! 그래도 막힌다면, 혼이라도 되어 갈 것이고, 세월이 되어 도달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누구나 살다보면 길 위의 장애물을 만나고, 끊어진 길 앞에서 좌절하는 순간이 온다. 자신의 능력과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시대상황이 앞길을 막는다. 어떤 이는 우회로를 택하거나 되돌아간다. 어떤 이는 장애물을 치우고, 끊어진 길을 잇는다. 그렇게 해서 꿈을 이룬다.
영화 ‘히든 피겨스’의 세 흑인 여성은 이 시의 화자를 연상시킨다. 1960년대 초반 미국 남부에선 흑백분리정책이 시행됐다. 천부적인 수학 능력을 갖춘 캐서린 존슨(타라지 P. 핸슨), 흑인 여성들의 리더이자 프로그래머인 도로시 본(옥타비아 스펜서), 흑인여성 최초의 나사 엔지니어를 꿈꾸는 메리 잭슨(자넬 모네)은 비인간적인 인종차별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돌파하고, 전진한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수백 미터 떨어진 유색인종 화장실을 써야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중요 회의에 참석할 수 없고, 커피포트 조차도 백인과 다른 것을 사용해야하는 차별 속에서도 이들은 물, 새벽안개, 초록이 되어 앞으로 나아간다.
이 시는 2009년 나로호 발사가 실패했을 때,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임석희 선임연구원이 격려차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앞에서 낭독하면서 유명해졌다. 임석희 선임연구원은 막혀도, 막혀도 그래도 갔다. 결국 2013년 두 번의 실패 끝에 한국이 나로호를 우주에 쏘아올리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들처럼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영화제목 ‘히든 피겨스’는 중의적이다. 피겨(Figure)는 인물이라는 뜻도 있지만 숫자라는 의미도 있다. 세 여성은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선 발사에 큰 공을 세우고도 오랜 세월동안 철저히 잊혀졌다. 그들은 단지 ‘숨겨진 숫자들’에 불과했다. 데오도르 멜피 감독은 역사 속 숫자에 머물렀던 여성들을 중요한 인물로 스크린에 불러냈다. 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길을 만들어냈는지를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캐서린 존슨의 나사 최고 수학자, 도로시 본의 프로그래머, 메리 잭슨의 엔지니어는 모두 ‘꼭 가야 하는 길’이었다.
길은 당신을 기다린다.
[사진 제공 = 20세기폭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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